[시]
분꽃 일가 / 김주완
묵은 청태 낀 돌담을 돌아가면 울안이 있지
울안엔 붉고 흰 살을 붙인 일가붙이들이 살고 있어
마당가의 그들은
느지막이 핀 꽃이 아침까지 가는 것을 알았어
어두워지기 전에 저녁밥을 해먹고
허리가 긴 대숲 사이
달이 뜨면 수줍은 얼굴들에 생기가 돌았지
마당에는 모깃불 생쑥향 울컥울컥 솟아오르고
적삼에서 젖내 풍기며
마실 온 아랫집 아낙의 걸쭉한 입담에 거품 일면
감나무 두터운 그늘 아래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었지
밤 구렁이는 무섭지 않아, 어둠을 누르는 지킴이거든
긴 담뱃대 물고 앉은 할머니 같아
날 받아놓은 누나는 여울 같은 가슴이 회돌이 쳤을 거야
검게 여문 씨앗 하나 빈손으로 또르르 떨궈 보내는
어머니의 숨결에선 때 아닌 겨울바람이 일었겠지
한 가지에 피어 문득 먼저 진 분꽃, 노랑과 분홍 꽃잎들은 물결부전나비가 되었을까
도회로 나가 소식 끊긴 작은 아들은 변두리 인력시장을 배회하고 있는지
먼 길 오다 보면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법이지
분꽃 여리고 긴 줄기
지나온 고비들이 숨차 중간 중간 관절이 굵어진 거야
그래도 돌담 묵은 뼈대의
울안이라 그럭저럭 대를 이어가는 거지
수챗가에서도 참 용하게 살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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