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갈피끈 / 김주완
그가 떠나면서 보내온 책
닳은 자주색 가죽 표지의 성경, 가운데 보다 조금 앞과 뒤에
선홍빛과 황금빛 두 개의 갈피끈이 끼워져 있다
지게에 얹혀 첩첩산중으로 실려 가는 어머니, 마른 솔가지처럼 늙은 손으로 청솔가지 꺾어 산길 군데군데 뿌렸다 아들 돌아갈 때 산중에서 길 잃을라
끝내 책갈피를 펼쳐보지 못한 나는
가을강으로 나가 상처 난 그의 일대기를 하얗게 빨아 버렸다
무덤은 파헤쳐도, 건드려도 안 되는 것
나는 이제 아무 것도 받지 않았다 되돌아갈 곳이 없어 앞으로만 간다 갈피끈을 끼울 데가 없어 주춤거리지 않을 수 있다 깃털처럼 몸이 가벼워진다 가름끈이 없는 가을강의 누렇게 뜬 강물이 된다 흐르는 대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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