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어머니』(1988)]
다음 다음 그 다음 날 / 김주완
1
새벽녘에 싸락눈 조금 내리고
얼어붙은 겨울 끝에서 아침이 옵니다.
쫓기는 절차에 어머니는 순순히
범어동 골목길을 나서고
꽃상여차가 뒤를 따릅니다.
매달려 가며 떨군 우리의 눈물이
벌판 끝에서
간밤의 싸락눈으로 결빙하고 있습니다.
백운사 주지 스님의 독경 소리로
청아한 향연이 피어납니다.
2
상여 끝에 구름꽃을 달고
문득 반짝이는 지화紙花 펄럭이며
상두꾼 뒤뚱거리는 앞소리에 끌려
좁은 산길을 눈 밟으며 오릅니다.
어머니 생전의 손때로 자란
밤나무 자욱한 잔가지들이 한사코
상두꾼 목덜미를 붙들어도
저만큼 저승길을 건너가는 어머니,
헛딛는 발들이
밤숲 사이 산길을 뒤따라 오릅니다.
3
언 땅을 파고
형님의 광목 두루마기 몇 줌 흙으로
우리의 처음인
어머니를 우리가 묻습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리사바하」
낙동이모의 신기神氣 오른 독경이
주절주절 푸른 하늘로 퍼져가고
굵은 외삼촌의 눈물이 후둑후둑 떨어집니다.
차가운 잔술 봉분에 뿌리며
언 땅에서 마지막
동사凍死하는 이별이 이루어집니다.
아버지의 가슴 무너지는 소리가
이만큼 땅에서 울려오고,
천상天上 어디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비파 소리가
간간 들려옵니다.
4
겨울 산에 어머니 묻고
남은 사람들은 서둘러
저물녘 산길을 내려옵니다.
어스름 산록 어디에도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돌아보며 돌아보며
가슴 빈 우리는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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