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어머니』(1988)]
다음 날 1 / 김주완
아버지가 글씨를 씁니다.
금박물병 자형이 흔들어 들고
아버지의 만취가 휘청대는 붓끝으로 글을 씁니다.
빠져나간 아버지의 정신이
붓끝으로 살아나 펄펄 뛰며
어머니를 나무랍니다.
칠흑 옻칠 올린 관 위로
흔들리는 남은 자의 슬픔,
아버지의 노여움이
한 점 한 획 정성으로 굳어집니다.
칠십 년의 노고 끝으로
은정 몇 개 꽝꽝 박히고
맨 정신 때보다 더 힘찬 아버지의
열 자 글씨로 어머니의 일생이 마감됩니다.
일흔 두 해 어머니의 각고가
자욱한 금가루로 내려
초롱초롱 별이 되어 빛을 냅니다.
십이 년 전 먼저 가신 할머니가 굽은 허리로
어디선가 어머니를 마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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