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시집『어머니』(1988)]
회오悔悟 3 / 김주완
섣달그믐께
어머니가 손가락을 잃었네.
이불을 감고 앉은 어머니는
절절 끓는 구들방 아랫목에서
둥우리 속의 새처럼
훌쩍훌쩍 울고만 있었네.
등짐 추스르며
슬피 슬피 울고 있었네.
가난은 설 가래떡만큼이나 늘어지고
진일을 떠난 오른손 일곱 마디가
할머니의 가슴에 구멍을 뚫고
풀리지 않는 멍 한 점
아버지의 속에 찍어 놓고
가래떡 기계안의 허연 가래떡에 섞여
빙빙 돌아 묻혀 들었네.
어스름 겨울 작오산 언덕에는
녹슨 군용 야전삽 하나,
헌 신문지에 골라 싼
산 어머니의 죽은 손길을
속가슴에 품은 소년 하나,
입술 앙다물고 오르고 있었네.
마른 억새풀에 동강난 눈물방울
칼날 산바람에 결빙하고 있었네.
철탑을 당겨 쥔 전깃줄에선 휘어진
강안에서 달려 나온
바람의 울음소리가 아득하였네.
명주실꾸리처럼 질긴 가난은
강물처럼 절절히 이어지고,
부러진 가지로 수액 흘리며
눈부신 이승의 하늘이 피곤한
담 밖의 오동나무를 닮아가던
쉰 고개 어머니의 영혼,
그때 지나 지금껏
쩔컥쩔컥 떡방아 찧는 피댓줄 소리가
어디를 가나 따라 다녔네.
칭칭 소름 돋는 소리가 되어
전신으로 감겨져 왔네.
질척이는 생존의 저편
헤진 궁핍의 끄트머리를 빠져나간
어머니의 손가락은 자유가 되었을까,
흩어진 뼈와 뼈
떨어진 살과 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의 손길은
언제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사라진 손가락만큼
육신의 무게를 줄인 어머니는
그만큼 삶이 가벼워졌을까,
그것이
이날껏 풀리지 않는 숙제였네
몰려다니는 의문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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