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기夜氣 2 / 김주완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2 / 김주완 진한 어둠 속에서만 빛을 보는 눈은 열린다. 광명천지에서 포악을 부리며 이빨 갈던 맹수가 이 밤의 한 구석에서 잠들어 있고 모례*의, 모래알 같은 알곡들이 곳간에서 썩으며 악취 진동하는 만큼 풍요의 위력, 폭풍 같은 위세로 저승 길목으로 서린 달무.. 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2011.03.01
야기夜氣 3 / 김주완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3 / 김주완 바다 같은 벌판이었다. 큰 강이 옆으로 눕고 젖을 품은 살 깊은 땅, 흐르는 푸름 속을 이탈하여 사람들은 외지外地로 떠나가고 귀 큰 도공陶工 한 사람 이곳에 남아 살았다. 억새풀 무성한 강변으로 아침마다 자욱한 안개, 가슴에 기둥 하나 세우고 휘 휘 .. 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2011.03.01
야기夜氣 4 / 김주완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4 / 김주완 먼 땅 끝에서 바람 한 덩이 달려와 담 밖으로 서성대고 있다. "내 놓아라! 내 놓아라!" 이미 사라진 시간을 찾아 밀려가는 날들을 역逆으로 돌리려 바람은 진陳을 치며 기다리고 있는데 나서서 높일 수 없는 성벽, 정원의 하얀 꽃이 불안의 표정으로 개화를 .. 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2011.03.01
야기夜氣 5 / 김주완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5 / 김주완 모례네 집 고공살이에 아도는 늘 숨찬 나날을 보내야 했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사람대접도 못 받는 신세에 신물이 났다. 아도는 밤을 기다린다 이슬처럼 풀잎처럼 살다 가는 이승의 생生을 영원 속의 한 점 구슬로 닦는, 모례의 힘이 닿지 않는 가슴 .. 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2011.03.01
야기夜氣 6 / 김주완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6 / 김주완 밤의 숲속에 목화처럼 하얀 꽃이 피고 있었다. 지상地上의 가장 낮은 곳으로 강이 흘렀고 조금 위에는 무명無明의 돌이 놓이고 그 위 엎드려 숨죽인 못을 지나 가파른 길의 몸부림이 놓이는 곳 숲은 그보다 더 높은 산 위에 뿌리박고 있었고 이것은 놀랍도.. 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2011.03.01
땅강아지 / 김주완 [제1시집『구름꽃』(1986)] 땅강아지 / 김주완 이 가을은 비가 흔하다. 쉬엄쉬엄한 철 거른 9월 장마가 4일째 계속되던 퇴근 무렵이다. 내 무심한 발아래 어둡고 눅눅한 인조석 바닥 위로 땅강아지 한 마리가 기고 있다. 촘촘히 박힌 놈의 연한 털은 우기에 젖어 무척 습하리라, 오른쪽 중간 다리를 못 쓰.. 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2011.03.01
딸 자현慈炫에게 / 김주완 [제1시집『구름꽃』(1986)] 딸 자현慈炫에게 / 김주완 1 내 너에게 무슨 말을 하랴, 느끼면서 느끼지 못하면서 한 울안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의 질긴 혈연이 아니냐, 아버지와 딸이 한 가지 언어로 살아가면서 이제껏 말이 통하질 않았구나, 서로를 너무 몰랐구나, 내 너를 아는 듯, 너 나를 아는 듯 했지.. 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2011.03.01
그저나무 / 김주완 [제1시집『구름꽃』(1986)] 그저나무* / 김주완 이제 사람들은 신神도 돈으로 사 오는 때다. 나무란 나무 모든 나무를 다스리는 목신木神, 그저나무는 눈도 코도 입도 민듯한 허연 얼굴로 토끼길도 없는 깊고 깊은 산 속 양지 바른 중허리에 산다. 죄를 팔아서 모아들인 돈으로 세운 집일수록 비오는 날이.. 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2011.03.01
꿈의 의미 / 김주완 [제1시집『구름꽃』(1986)] 꿈의 의미 / 김주완 고가古家의 식객으로 차지한 방은 늘 냉기가 돌았고 허울뿐인 사람들의 굳은 몸짓은 목을 조이고 낡은 목조의 크기만 한 집은 멀리 멀리 허전했다 나서자고 다지고 다지면서 언제나 일어나지 못했던 자리, 꿈속에서 생각해도 꿈속처럼 스스로도 이해가 되.. 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2011.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