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6 / 김주완
밤의 숲속에
목화처럼 하얀 꽃이
피고 있었다.
지상地上의 가장 낮은 곳으로
강이 흘렀고
조금 위에는 무명無明의 돌이 놓이고
그 위 엎드려 숨죽인 못을 지나
가파른 길의 몸부림이 놓이는 곳
숲은 그보다 더 높은 산 위에
뿌리박고 있었고
이것은
놀랍도록 평범한 질서였다.
필요한 만큼만 주고
받아들이는 이들
불멸의 조화 속으로
몇 가닥 강과
들과
산을
구름처럼 넘어 오는 아도의
귀기鬼氣 서린 옷자락이 펄럭이고
백자
물빛 생명이 불꽃으로 타오르는 시간
잡풀들의 수군거림, 밤과 숲의 위용에
멀리 멀리 따라 붙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평온의 시간
먼 산짐승의 숲을 가르는
뜀박질 소리도
한갓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원래元來의 소리
오염된 빛의
잔인한 시간대를 떠나
안온한 어둠의 껍질을 한 겹씩 벗기고
들여다보는 속 안엔
때깔 하얀 백자 맑음이 있고
자연 한 마당이 순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일정한 서로간의 거리를 사랑하여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강은 강대로
더도 덜도 아닌 알맞은 만큼의
바램만 가지고 이 밤을 지니며
더 이상의 단축과 이완도
힘겹게 요구하지 않으며
이미 흐르는 과정, 거대한 힘 아래
순응하는 강물이고자
꽃은
밤새 개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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