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야기夜氣 6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 14:05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6 / 김주완


밤의 숲속에

목화처럼 하얀 꽃이

피고 있었다.


지상地上의 가장 낮은 곳으로

강이 흘렀고

조금 위에는 무명無明의 돌이 놓이고

그 위 엎드려 숨죽인 못을 지나

가파른 길의 몸부림이 놓이는 곳

숲은 그보다 더 높은 산 위에

뿌리박고 있었고

이것은

놀랍도록 평범한 질서였다.


필요한 만큼만 주고

받아들이는 이들

불멸의 조화 속으로

몇 가닥 강과

들과

산을

구름처럼 넘어 오는 아도의

귀기鬼氣 서린 옷자락이 펄럭이고

백자

물빛 생명이 불꽃으로 타오르는 시간

잡풀들의 수군거림, 밤과 숲의 위용에

멀리 멀리 따라 붙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평온의 시간

먼 산짐승의 숲을 가르는

뜀박질 소리도

한갓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원래元來의 소리


오염된 빛의

잔인한 시간대를 떠나

안온한 어둠의 껍질을 한 겹씩 벗기고

들여다보는 속 안엔

때깔 하얀 백자 맑음이 있고

자연 한 마당이 순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일정한 서로간의 거리를 사랑하여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강은 강대로

더도 덜도 아닌 알맞은 만큼의

바램만 가지고 이 밤을 지니며

더 이상의 단축과 이완도

힘겹게 요구하지 않으며

이미 흐르는 과정, 거대한 힘 아래

순응하는 강물이고자

꽃은

밤새 개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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