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야기夜氣 3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 14:09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3 / 김주완


바다 같은 벌판이었다.


큰 강이 옆으로 눕고

젖을 품은 살 깊은 땅,

흐르는 푸름 속을 이탈하여

사람들은 외지外地로 떠나가고

귀 큰 도공陶工 한 사람 이곳에

남아 살았다.


억새풀 무성한 강변으로

아침마다 자욱한 안개,

가슴에 기둥 하나 세우고

휘 휘 저어 밀쳐 내며

일천 정성으로 백자 고운 살결을

빚어내고 있었다.


날마다 요란한 새떼들의

아우성에도 귀를 닫고

천만번민을 누르며

어둠속에 묻혀 진한

흙물로 인습의 때를

씻어내고 있었다.


굳은 인륜의 벽을 허물며

끊임없는 착오의 날들,

아린 아픔을 삭이고

두 사흘 지핀 불기 멎은 뒤

칠흑 가마에서

백자 꺼내던 날

"개천에서 용 났다, 개천에서 용 났다."

또 잡새들은 울어댔고

혼란한 소음과 질시를 마시며

백자는 자꾸 맑음을 더해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생활 속의 고단한 빛이

스스로 백자는 되어가고 있었고

백자 깊은 가슴 속으로

열나흘 달이 만월로

치닫고 있었다.


신라의 하늘 아래 한 가닥

바람 날리며 간 아도가

열기 한 덩이 안으로 삼키며

빛을 찾아 뒤뚱거리며

이제 다시 다가오고 있었고

이 새벽, 야기夜氣는 이 모두를

순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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