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꿈의 의미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 13:16


[제1시집『구름꽃』(1986)]



꿈의 의미 / 김주완


고가古家의 식객으로 차지한 방은 늘 냉기가 돌았고 허울뿐인 사람들의 굳은 몸짓은 목을 조이고 낡은 목조의 크기만 한 집은 멀리 멀리 허전했다 나서자고 다지고 다지면서 언제나 일어나지 못했던 자리, 꿈속에서 생각해도 꿈속처럼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만치 갑자기 생겨나는 의연한 결단으로 나는 나서고 있었다. 그립고 그리웠던 곳, 가슴 곱게 설레는 사람이 있고 근엄하지도 경박하지도 퉁명스럽지는 더욱 않은 싱싱한 정의 생수生水에 적셔낸 온기 듣는 표정과 언어가 흐르는 방에 조용히 조심스레 앉는다. 너무 늦게 왔다고 너무 기다리게 했다고 저만큼 한 여인은 결 돋는 말로 돌아 서고, 자네 이름이 무엇인고? 중인中人*인 아버지의 물음이 있고 주섬주섬 흘려버린 나이를 엉뚱하게도 나는 줍고 있는데 갑자기 참으로 갑자기 앉아 있는 방의 천정 가까이 한 쪽 벽에서 오색 빛깔로 불타는 물살이 치솟는다. 만평 로터리의 굵은 분수 줄기처럼 온 방안에 물의 불꽃이 펑펑 쏟아져 내리는데 이상하게도 젖어야 할 옷이 젖지도 타지도 않는다.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아버지는 다락방으로 올라갔고 금방 부화한 새 몇 마리가 포륵포륵 뛰고 있는 위 뚫어진 기와 사이로 샌 물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 고여 다시 뚫어진 벽 틈으로 새어 나온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의 생각을 내가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만 볼 수 있는 구멍을 아버지가 막고 다시 그를 따라 내려온 방엔 여인이 성장을 하고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어 쪽을 짓고 있다. 왠지는 모르나 떠나는 내 곁에 재잘재잘 이야기를 해대며 쪽 지은 그녀는 따라 붙고 다 자란 새가 깃을 치다가 돼지가 되어 거위걸음을 걷고 점보 여객기가 무임 탑승을 하라고 절절한 방송을 하는데 짚신을 신고 산길을 걸으며 내가 찾는 그녀의 아버지 금방 있던 아버지는 어디에도 없는데


이것은 융의 리비도** 어느 부분쯤에서 자리를 잃고 뛰쳐나온 의식의 영향일까를 나는 실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 中人 : 양반 중인 상인 등 이조시대 사회계층의 하나

** 스위스의 심리학자 C.G. Jung이 주장한 "정신적 생명의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