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블로그

제기차기 7 초와 / 김주완 녹다 만 겨울 눈밭에서 작은 은어 한 마리 튀어 오른다 바닥으로 떨어지다가 다시 뛰어 오르며 나비같이 나풀거리거나 새처럼 폴짝거린다 겨울 한가운데 실금이 생기면서 어렴풋하게 봄이 오는 소리, 멀리서 다가온다

제기차기 6 초와 / 김주완 잡것 없는 공중에서만 머물러라 땅에 떨어지면 흙 묻고 먼지 쌓여 더럽혀진다 힘들어도, 주저앉고 싶어도 훨훨 날아 공중에만 있거라 꿈은 높은 곳에 있다 아이야 위로, 위로 올라 그 꿈을 잡아라 거기서 거처居處를 정하여라 날밤 새워 기도하는 어미 마음 너를 받치는 구름..

제기차기 5 내가 너를 차는 건 돌아올 줄 알기 때문이다 땅을 굴리는 것은 언 땅을 콩콩 굴리는 것은 함박눈꽃송이처럼 내려앉을 너의 자태를 알기 때문이다 너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고는 못 배기는 너의 성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기차기 4 초와 / 김주완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진 땐 오래 걸린다 자연의 이치다 물가가 오르고 주가가 오른다 큰손이 쳐올리면 오르고 빠지면 내린다 한 순간에 빠지면 급속하게 추락한다 시장의, 인간의 이치이다 놀고 있다 자연도 인간도 놀이를 하고 있다 자연의 놀이에는 승자勝者가 없지만 인..

제기차기 3 초와 / 김주완 내가 툭툭 뱉어버린 말言 잠시 뒤에 내게로 되돌아옵니다 나를 던져주세요 나비처럼 날아올랐다가 꽃잎처럼 떨어지며 당신을 기억할게요, 처음인 곳을요 기억은 보복이며 제 자리로 돌려주는 힘입니다 >

제기차기 2 초와/ 김주완 나를 올려 주어요 내 몸을 통통 건드려 자꾸 위로 올려 주어요 오르면서 금달래*처럼 머리카락 산발하여 날으고 떨어질 때는 가지런히 조신하게 내리고 싶어요 더 높이, 아주 까마득히 올라 아찔한 황홀을 느끼고 싶네요 내 몸이 지금 무척 간질간질하거던요 * 금달래 : 1950대 ..

제기차기 1 초와 / 김주완 동네 앞 공터에서 아이들이 삼동三冬 내내 제기차기를 합니다 추위가 저만큼 물러서고 놀이는 아이들의 언 몸을 덥힙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둘이서 짝을 지어 놉니다 차 주면 받고 받으면 차 주고 더 받거나 덜 주는 일이 없습니다 너만 재미있고 나는 재미없는 그런 일..

눈 오는 밤 8 초와 / 김주완 하늘 가득 눈 오는 밤이면 밤을 새워 눈길을 걷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보드득보드득 신발 끝에 눈 밟는 소리를 달고 몸에서 푸른 향기가 나는 지상에서 가장 맑고 예쁜 소녀와 함께 먼 벌판 끝으로 하염없이 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검정 큰 우산을 소녀 쪽으로 기울여 주면..

눈 오는 밤 7 / 김주완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포옹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 밖에서는, 깜깜한 하늘에서 내리는 희고 부드러운 몸짓이 눈부시지 않은 채 은은하게 어둠을 밀어내면서 어둠 속에 안기고 있다 어둠은 눈빛을 받아 어둠에서 벗어나고 눈빛은 어둠에 안겨 밝음을 빨아낸다 빛과 어둠이 서..

눈 오는 밤 6 초와 / 김주완 어느 별에서 오는 것인가 어둠 속으로 황홀하게 다가오는 저 무수한 신호 사월 사근사근한 밤하늘에서 가슴 설레게 쏟아지는 벚꽃 같다 오래 전에 떠난 여인 얼어붙은 들판 끝에서 기척도 없이 돌아오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