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야기夜氣 2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 14:10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2 / 김주완


진한 어둠 속에서만

빛을 보는 눈은 열린다.


광명천지에서

포악을 부리며 이빨 갈던

맹수가

이 밤의 한 구석에서 잠들어 있고


모례*의, 모래알 같은 알곡들이

곳간에서 썩으며

악취 진동하는 만큼

풍요의 위력, 폭풍 같은 위세로

저승 길목으로 서린 달무리

꿈속을 헤매며

자꾸 식은 땀 흘리고만 있다.


산짐승의 은폐된 굴 안에서

헤진 옷을 여미며

아도**가 걸어 나온다.


몰아의 시간대를 떠나

한 가닥 실존을 찾아 휘적휘적

아도는 걸어오고 있고


우리를 감싸 모두의 갑옷으로

모두를 보호하며

속의 자기自己가 되게 하는 어둠 아래

백자 하나 얌전하게 웃으며

진한 향기 뿜어 오고 있다.


어둠 밖으론

먼 서산에 구름덩이

빨갛게 불타며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없었음이 차라리

있음보다 나았을 날들,

돌아보지 말고

백자 작은 항아리에

들풀 같은 혼을 묻으며

마지막 빛살을 소중하게 아끼는


바람처럼 형체 없는

알 수 없는 깊이의 아도여!

사방이 창인

작은 집에서 내다보는 하늘엔

진한 어둠속의 까만 나뭇가지 끝으로

보석 같은 별들이 달린다.


* 모례 : 아도가 처음 신라 북서지역(현재 선산군 도개면)에 들어와 고공살이를 했다는 집의 주인.

** 아도 :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사람으로서 일명 묵호자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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