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2 / 김주완
진한 어둠 속에서만
빛을 보는 눈은 열린다.
광명천지에서
포악을 부리며 이빨 갈던
맹수가
이 밤의 한 구석에서 잠들어 있고
모례*의, 모래알 같은 알곡들이
곳간에서 썩으며
악취 진동하는 만큼
풍요의 위력, 폭풍 같은 위세로
저승 길목으로 서린 달무리
꿈속을 헤매며
자꾸 식은 땀 흘리고만 있다.
산짐승의 은폐된 굴 안에서
헤진 옷을 여미며
아도**가 걸어 나온다.
몰아의 시간대를 떠나
한 가닥 실존을 찾아 휘적휘적
아도는 걸어오고 있고
우리를 감싸 모두의 갑옷으로
모두를 보호하며
속의 자기自己가 되게 하는 어둠 아래
백자 하나 얌전하게 웃으며
진한 향기 뿜어 오고 있다.
어둠 밖으론
먼 서산에 구름덩이
빨갛게 불타며 울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없었음이 차라리
있음보다 나았을 날들,
돌아보지 말고
백자 작은 항아리에
들풀 같은 혼을 묻으며
마지막 빛살을 소중하게 아끼는
바람처럼 형체 없는
알 수 없는 깊이의 아도여!
사방이 창인
작은 집에서 내다보는 하늘엔
진한 어둠속의 까만 나뭇가지 끝으로
보석 같은 별들이 달린다.
* 모례 : 아도가 처음 신라 북서지역(현재 선산군 도개면)에 들어와 고공살이를 했다는 집의 주인.
** 아도 :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래한 사람으로서 일명 묵호자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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