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야기夜氣 1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 14:12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1 / 김주완


어둠 속에 몸을 묻고

늘 움츠려 살아온 자세로

엎드린 먼 마을과

일찍이 있은 꿈처럼

깜박이는 불빛을 본다.


잃어버린

어디선가 떨어뜨린 이름을

다시는 찾지 못하고

하루만의 존속을 위하여

한정된 시간을 자꾸만

갉아 먹고 있는 하늘소,

딴딴한 각질

타원의 돔*이 내려앉고 있다.


거대한 철골의 구조물

한켠의 가는 나사못 하나가

조금씩 풀려 나오며

관계와 그리고 역할,

미세한 후방을 돌아보고 있다.


검은 새의 둥지가 있는 언덕 아래

호수의 빙판은

밤새 짐승의 울음을 울고

바람이 떨며 떠나간

벗은 고목 마른 가지에

눈물 같은 꽃이 반짝이며

하나씩 떨리고 있다.


어둠이 실어온 태조산

깜깜한 흙을 뭉개는 지금

이 시간,

이미 떠나온 곳

이방의 일상을 간추리고

열하루 달 떠오는 남방에

안개꽃 자욱한 백자,

아직은 여리고

작은 빛살이 일어서고 있다.


조용히 나부끼는 풀꽃처럼

조선 여인의 몸짓으로

조금씩 스며오는 작은

빛살의 걸음걸이,

깊은 어둠 속에서만

불어오는 따스한 미풍

한 가닥 일고 있다.


* 夜氣 : 깊은 밤 事物에 接하기 전의 깨끗한 마음의 기운(孟子)

* Dome : 여기서는 반구형의 언덕을 말함.



'제1~7 시집 수록 시편 > 제1시집 구름꽃[198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각自覺 / 김주완   (0) 2011.03.01
송년送年 / 김주완   (0) 2011.03.01
야기夜氣 2 / 김주완   (0) 2011.03.01
야기夜氣 3 / 김주완   (0) 2011.03.01
야기夜氣 4 / 김주완   (0) 2011.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