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5 / 김주완
모례네 집 고공살이에
아도는 늘
숨찬 나날을 보내야 했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사람대접도 못 받는 신세에
신물이 났다.
아도는 밤을 기다린다
이슬처럼
풀잎처럼 살다 가는 이승의 생生을
영원 속의 한 점 구슬로 닦는,
모례의 힘이 닿지 않는 가슴 속
맑은 마음 하나 붙들고
고단한 하루 역겨운 빛을 피해
안온한 어둠의 밤을 기다린다.
어두워지면 어제처럼
키 큰 도공陶工의 시퍼런 혼이 녹아
빛을 담뿍 마신
백자 하얀 형광물질이 야광으로
야광으로 희뿌연 길을 밝히고
한 꺼풀 물욕의 티가 덮인 사람들의
눈과 입들이 따라 붙지 못하는
깊고 깊은 숲속의 공지로
아도는 또
휘적거려 떠 갈 것이고
나무와 나무들 사이에 이는 밤바람
솔잎은 연신 온 몸으로 시간을 태우고
두터운 숲의 성채로 무수히
질긴 목숨들의 새처럼
혹은 산짐승처럼 비눗물 같은 달무리
그늘로 순간의 안식을 사루며
이방의 질서를 이탈할 것이다.
흐르는 물을 막고 가둬 두지는 말 일이다.
어둠속에서 숨 가쁜 인륜의 계율을
벗어나는 지점, 백자 깊은 품속에서
비로소 아도는 또 한 번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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