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야기夜氣 5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 14:07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5 / 김주완


모례네 집 고공살이에

아도는 늘

숨찬 나날을 보내야 했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사람대접도 못 받는 신세에

신물이 났다.


아도는 밤을 기다린다


이슬처럼

풀잎처럼 살다 가는 이승의 생

영원 속의 한 점 구슬로 닦는,

모례의 힘이 닿지 않는 가슴 속

맑은 마음 하나 붙들고

고단한 하루 역겨운 빛을 피해

안온한 어둠의 밤을 기다린다.

어두워지면 어제처럼

키 큰 도공陶工의 시퍼런 혼이 녹아

빛을 담뿍 마신

백자 하얀 형광물질이 야광으로

야광으로 희뿌연 길을 밝히고

한 꺼풀 물욕의 티가 덮인 사람들의

눈과 입들이 따라 붙지 못하는

깊고 깊은 숲속의 공지로

아도는 또

휘적거려 떠 갈 것이고


나무와 나무들 사이에 이는 밤바람

솔잎은 연신 온 몸으로 시간을 태우고

두터운 숲의 성채로 무수히

질긴 목숨들의 새처럼

혹은 산짐승처럼 비눗물 같은 달무리

그늘로 순간의 안식을 사루며

이방의 질서를 이탈할 것이다.


흐르는 물을 막고 가둬 두지는 말 일이다.

어둠속에서 숨 가쁜 인륜의 계율을

벗어나는 지점, 백자 깊은 품속에서

비로소 아도는 또 한 번 사람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