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야기夜氣 4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 14:08


[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4 / 김주완


먼 땅 끝에서

바람 한 덩이 달려와

담 밖으로 서성대고 있다.


"내 놓아라! 내 놓아라!"

이미 사라진 시간을 찾아

밀려가는 날들을 역으로 돌리려

바람은 진을 치며 기다리고 있는데

나서서 높일 수 없는 성벽,

정원의 하얀 꽃이 불안의

표정으로 개화를 미루고 있다.


훌훌 떠나보내며 가슴에 구멍만 느는

도공陶工은 가마 곁에서

큰 키의 높이만큼 아득한 곳

백자 찬란한 빛으로


승천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들여다보면 훨훨 자유의 몸,

갇힐 이유도 굴종의 의무도

없는 백자는

열기 솟던 그 해 여름

처음 가마를 나선 날 이후

홀로 투명한 빛살

세상을 밝히는 빛일 뿐이다.


몇 날 며칠째

어둠의 외줄을 타는

가파른 사랑의 벼랑,

한 점 의식은 남아도

떨어지면 모두가 부서지는 이치,

자신의 힘에 자신이 없는

아도는

숨겨진 진통을 또 한 번

외지外地에서 앓아야 한다.


과정이 힘들수록

한계의 안팎을 넘나들수록

뒤에 얻는 보람이 차질 수 있어

"안 된다, 안 된다." 짝진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픔,

무색無色 무안無眼의 마음으로

참아야 하는 오늘

백자 맑은 빛살을

품속 깊이 감추고

아도는 자꾸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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