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구름꽃』(1986)]
야기夜氣 4 / 김주완
먼 땅 끝에서
바람 한 덩이 달려와
담 밖으로 서성대고 있다.
"내 놓아라! 내 놓아라!"
이미 사라진 시간을 찾아
밀려가는 날들을 역逆으로 돌리려
바람은 진陳을 치며 기다리고 있는데
나서서 높일 수 없는 성벽,
정원의 하얀 꽃이 불안의
표정으로 개화를 미루고 있다.
훌훌 떠나보내며 가슴에 구멍만 느는
도공陶工은 가마 곁에서
큰 키의 높이만큼 아득한 곳
백자 찬란한 빛으로
승천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들여다보면 훨훨 자유의 몸,
갇힐 이유도 굴종의 의무도
없는 백자는
열기 솟던 그 해 여름
처음 가마를 나선 날 이후
홀로 투명한 빛살
세상을 밝히는 빛일 뿐이다.
몇 날 며칠째
어둠의 외줄을 타는
가파른 사랑의 벼랑,
한 점 의식은 남아도
떨어지면 모두가 부서지는 이치,
자신의 힘에 자신이 없는
아도는
숨겨진 진통을 또 한 번
외지外地에서 앓아야 한다.
과정이 힘들수록
한계의 안팎을 넘나들수록
뒤에 얻는 보람이 차질 수 있어
"안 된다, 안 된다." 짝진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픔,
무색無色 무안無眼의 마음으로
참아야 하는 오늘
백자 맑은 빛살을
품속 깊이 감추고
아도는 자꾸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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