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구름꽃』(1986)]
땅강아지 / 김주완
이 가을은 비가 흔하다.
쉬엄쉬엄한 철 거른 9월 장마가 4일째 계속되던 퇴근 무렵이다. 내 무심한 발아래 어둡고 눅눅한 인조석 바닥 위로 땅강아지 한 마리가 기고 있다. 촘촘히 박힌 놈의 연한 털은 우기에 젖어 무척 습하리라, 오른쪽 중간 다리를 못 쓰고 있다. 다쳤나 보다. 놈의 다리는 여섯이다. 뒤뚱거리며 다섯 개의 다리로 놈은 잘도 긴다. 앞으로도 기고 뒤로도 긴다. 놈이 뒤로 길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신기하다. 3센티미터 가량의 몸 앞대가리에 깨알만한 눈이 두 개 박혀 있을 뿐인데, 놈의 짧은 촉각은 눈 옆에 겨우 꼼지락 거릴 뿐인데 놈이 뒤로도 기어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고역이다. 혹 가다 놈은 데굴데굴 옆으로도 구른다. 놈의 두엄 빛 몸에 비해 그래도 흰 축에 드는 뱃바닥을 위로 쳐들며 그렇게 굴러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가련하다.
내 기억에 의하면 놈은 비행할 수도 있다. 어린 날 밤 모깃불 자욱한 공중을 뚫어 대청마루 내 숙제장 4각의 울안에 놈은 푸득거리며 하강하기도 했었지, 그 때도 놈의 각질판 홑눈은 어둡게 간혹 반짝였고 놈의 촉각은 쉼 없이 꼼지락 거렸었지, 놈의 속은 오리무중이었지,
- 침침한 책상 밑에서 왜 놈은 지금 맴만 돌고 있을까?
놈이 날지 않는 것은 단순한 습기 때문만일까?
단지 다리 하나의 기능 마비가 저처럼 흉용한 몸부림을 앓게 하는 것일까?
조직 속의 부분으로 갇힌 내 곡진한 이탈 염원과는 얼마만큼의 상사相似로 마주서는 것일까?
나는 지금 놈의 속셈을 모른다.
어렵고 새로운 숙제 하나가 하루의 마지막 시간을 갉아 내고 있다.
꽁꽁 묶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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