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구름꽃』(1986)]
그저나무* / 김주완
이제 사람들은 신神도 돈으로 사 오는 때다.
나무란 나무 모든 나무를 다스리는 목신木神, 그저나무는 눈도 코도 입도 민듯한 허연 얼굴로 토끼길도 없는 깊고 깊은 산 속 양지 바른 중허리에 산다.
죄를 팔아서 모아들인 돈으로 세운 집일수록 비오는 날이나 달 없는 밤엔 더 청승스럽게 지잉지잉 운다고 한다.
그런 집에 사는 사람일수록 쌓여서 누렇게 뜨는 돈으로 건장한 사내들을 사서 산山 속으로, 산山 속으로 보내고 그저나무 허연 줄기를 허리춤쯤 동강이 내어 더러운 때가 번쩍이는 그들의 집으로 옮기고 기둥이란 기둥의 모두와 모든 서까래들의 울음을 다스려 영원을 살겠다고 중량 무거운 대들보 위 마룻대(龍·某年某月某日某時立柱上樑·虎)에 얹어 동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며 언제나 망각하고 있는 죽음이란 게 그렇게 멀리만 있는 게 아닌데 돈이 전부이고 돈이면 모든 것이 되는 줄 아는 귀신도 돈으로 사오는 사람들, 그들의 시간도 이미 한정되어 있고 그들의 돈도 이미 흘러가도록 예비되어 있고 세상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실존實存의 길을 홀로 저만큼 거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 자작나무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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