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1시집 구름꽃[1986]

그저나무 / 김주완

김주완 2011. 3. 1. 13:18


[제1시집『구름꽃』(1986)]



그저나무* / 김주완


이제 사람들은 신도 돈으로 사 오는 때다.


나무란 나무 모든 나무를 다스리는 목신木神, 그저나무는 눈도 코도 입도 민듯한 허연 얼굴로 토끼길도 없는 깊고 깊은 산 속 양지 바른 중허리에 산다.


죄를 팔아서 모아들인 돈으로 세운 집일수록 비오는 날이나 달 없는 밤엔 더 청승스럽게 지잉지잉 운다고 한다.


그런 집에 사는 사람일수록 쌓여서 누렇게 뜨는 돈으로 건장한 사내들을 사서 산 속으로, 산 속으로 보내고 그저나무 허연 줄기를 허리춤쯤 동강이 내어 더러운 때가 번쩍이는 그들의 집으로 옮기고 기둥이란 기둥의 모두와 모든 서까래들의 울음을 다스려 영원을 살겠다고 중량 무거운 대들보 위 마룻대(龍·某年某月某日某時立柱上樑·虎)에 얹어 동인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며 언제나 망각하고 있는 죽음이란 게 그렇게 멀리만 있는 게 아닌데 돈이 전부이고 돈이면 모든 것이 되는 줄 아는 귀신도 돈으로 사오는 사람들, 그들의 시간도 이미 한정되어 있고 그들의 돈도 이미 흘러가도록 예비되어 있고 세상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실존實存의 길을 홀로 저만큼 거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 자작나무의 다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