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일식日蝕하던 날 1 / 김주완
터널을 뚫는 회전굴삭기처럼
사과벌레는 사과 속을 갉아 먹으며 집을 만든다
고물고물한 벌레똥으로 집 뒤쪽을 메우지만
둥근 사과 겉모양은 건드리지 않고 남겨 둔다
굵고 날카로운 부리의
떼까마귀가 사과밭 자욱이 내려와
움쑥움쑥 사과를 통째로 파먹고 가면
피농披農한 사과밭엔 상처 난 사과만 남는다
온전히 둥근 사과는 남아 있지 않다
먹고 먹히는
상처 내고 고통 받는 지상과는 달리
조금씩 먹었다가 겉도 속도 처음 모양 그대로 토해내는
품을 만큼 품었다가 황새 알처럼 쑥 내놓는
먹음새가 하늘에 있다
너무 뜨거워 베어 먹거나 갉아먹지 못하는 불덩이
눈이 부셔 바로 보지 못하는 잘 익은 사과
살짝 가렸다가 온전하고 얌전하게 내어 놓는
저기, 누구 손길이 있는가
<20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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