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근작시

[시] 일식하던 날 1 / 김주완 [2008.02.01.]

김주완 2008. 2. 1. 17:06


[시]


      일식日蝕하던 날 1 / 김주완


터널을 뚫는 회전굴삭기처럼

사과벌레는 사과 속을 갉아 먹으며 집을 만든다

고물고물한 벌레똥으로 집 뒤쪽을 메우지만

둥근 사과 겉모양은 건드리지 않고 남겨 둔다


굵고 날카로운 부리의

떼까마귀가 사과밭 자욱이 내려와

움쑥움쑥 사과를 통째로 파먹고 가면

피농披農한 사과밭엔 상처 난 사과만 남는다

온전히 둥근 사과는 남아 있지 않다


먹고 먹히는

상처 내고 고통 받는 지상과는 달리

조금씩 먹었다가 겉도 속도 처음 모양 그대로 토해내는

품을 만큼 품었다가 황새 알처럼 쑥 내놓는

먹음새가 하늘에 있다


너무 뜨거워 베어 먹거나 갉아먹지 못하는 불덩이

눈이 부셔 바로 보지 못하는 잘 익은 사과

살짝 가렸다가 온전하고 얌전하게 내어 놓는

저기, 누구 손길이 있는가

 

                                                     <2008.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