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밤참 먹는 남자 5 / 김주완
― 1950년대 한국 농촌의 겨울밤 풍경
삼동 내내 밤늦게까지 행랑방에선 새끼를 꼬았다 호롱불 심지 낮추어 가물가물한 방구석에선 메주 뜨는 냄새 같은 것이 났다 한 바람 한 바람 꼬인 새끼는 사래로 뭉친 타래가 되어 헛간에 하나씩 쌓여졌다
천것들은 새끼를 꼬면서 고릿고릿한 과부들 얘기와 어쩌다 장에 가서 듣고 온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낄낄거리며 나누었다 지난 봄 뒷들 보리밭에서 삔질이 놈이 따먹은 큰애기 바소구리 같은 방뎅이 얘기는 듣고 들어도 들을 때마다 전신이 지릿했다
배가 출출하면 무를 내어와 깎거나 생고구마를 깎아 먹었다 낫으로 석석 깍은 무 밑동과 생고구마에서 나오는 단내가 싸하니 방안을 맴돌았다 가마니 같은 손바닥에 묻은 고구마 진은 새끼 짚에 금방 닦여 나갔다 오독오독 밤이라도 깨물 때면 보늬가 낀 입 안이 텁텁하여 시장기가 오래 가시곤 했다 더러 건너뜸으로 가서 닭서리나 동치미서리도 했지만 그것이 말썽거리가 될 때는 없었다
<2008.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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