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제6시집]
[2016.09.24. 영양문학 기고]
겨울 일몰 7 / 김주완
어른거지 아이거지 남자거지 여자거지 떼거리 지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황량한 사방, 겨울 해가 떨어지면 마른 가시나무 울타리 곁 빈 밭에 자리를 잡았다 거적때기 깔고 덮으며 밤을 지낼 준비를 하였다 나뭇가지 세우고 큰 깡통 걸어 삭정이 불 피우며 둘러앉았다 얻어온 밥이며 반찬이며 국이며 한꺼번에 넣고 펄펄 끓였다
가운데는 건장한 왕초가 앉고 그 옆에 젊은 여자거지가 품에 안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젊고 얼굴 하얀 남자거지가 다가앉으며 왕초의 여자를 흘끔거렸다 왕초의 눈에서 번쩍하는 불길이 일면서 굵은 지팡이로 사내의 정수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뚝 지팡이가 부러져 나갔고 사내는 나무토막처럼 나동그라졌다 죽은 것 같았다 남은 거지들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꿀꿀이죽을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아침이 되자 나는 문고리 쩍쩍 들어붙는 방문을 열고 나와 낮은 울타리 너머 거지들의 거처를 건너다보았다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 쓴 그들은 동냥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왕초의 여자거지와 어제 밤의 젊은 남자거지가 보이지 않았다 포대기에 싸인 왕초의 아기만 사그라지는 화톳불 곁에 놓여져 있었다 벌겋게 눈에 핏발 선 왕초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다른 거지들은 슬슬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가시나무 울타리 어디서도 가시나무새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흐르는 붉은 피도 없었다 왕초의 여자와 젊은 남자거지는 야반도주를 하였다 매섭게 추웠던 겨울밤의 어둠이 그들의 도주를 도운 것이다 그 아침 어느 먼 수평선에서 그들은 불타는 태양으로 떠오르고 있었을까
<2008.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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