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구절초 / 김주완
부레끓던 화려한 날들 다 지나고
지상地上의 모든 끝물이 자취를 거둘 때
모진 세월 꺾이고 뭉개지며
호시절 한번 누리지 못한 어머니
홑적삼 여윈 얼굴 아련히
낮고 엷은 미소, 참 늦게도 짓는다
남들은 잘도 사는데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는 법인데
어머니 긴 긴 기다림이 허물어져
한숨으로 내려앉을 그때쯤
휘파람 소리 이는 갱도 깊은 가슴의 막장에서
삭아 문드러져 내린 주문呪文들
눈물 나게 흰 빛으로 떠올라
줄기 끝 한 송이씩 말갛게 피어나고 있다
자욱하니 가을산으로
소리 없이 퍼져 나가는 소리의 안개밭,
돌처럼 굳게 맺힌 한恨
마디마디 아홉이라도
얼싸안은 어깨 모이고 모여
천층만층 구만층이라도
이 땅의 어머니들 서럽지 않으네
된서리를 맞아도 지지 않을 것이니
첫눈 내려 천지간 온 몸 묻혀 들어도
이 미소 잃지 않고
언 땅 아래로 깊이깊이 숨어들어
새끼들 생명줄 거머쥔 채
긴 삼동 노지露地에서 월동越冬할 거니
쓰고 매운 맛 고이 품은 채
서늘하게
비어서 가득 찬 꽃눈으로 이어져
여러해살이 꽃으로 다시 필거니
<200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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