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근작시

[시] 구절초 / 김주완 [2007.09.14.]

김주완 2007. 9. 14. 23:18

[시]


        구절초 / 김주완

 

 

부레끓던 화려한 날들 다 지나고

지상地上의 모든 끝물이 자취를 거둘 때

모진 세월 꺾이고 뭉개지며

호시절 한번 누리지 못한 어머니

홑적삼 여윈 얼굴 아련히

낮고 엷은 미소, 참 늦게도 짓는다


남들은 잘도 사는데

살다보면 좋은 날도 오는 법인데

어머니 긴 긴 기다림이 허물어져

한숨으로 내려앉을 그때쯤

휘파람 소리 이는 갱도 깊은 가슴의 막장에서

삭아 문드러져 내린 주문呪文

눈물 나게 흰 빛으로 떠올라

줄기 끝 한 송이씩 말갛게 피어나고 있다


자욱하니 가을산으로

소리 없이 퍼져 나가는 소리의 안개밭,

돌처럼 굳게 맺힌 한

마디마디 아홉이라도

얼싸안은 어깨 모이고 모여

천층만층 구만층이라도

이 땅의 어머니들 서럽지 않으네


된서리를 맞아도 지지 않을 것이니

첫눈 내려 천지간 온 몸 묻혀 들어도

이 미소 잃지 않고

언 땅 아래로 깊이깊이 숨어들어

새끼들 생명줄 거머쥔 채

긴 삼동 노지露地에서 월동越冬할 거니


쓰고 매운 맛 고이 품은 채

서늘하게

비어서 가득 찬 꽃눈으로 이어져

여러해살이 꽃으로 다시 필거니

 

                                                 <2007.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