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근작시

[시] 석류 1 / 김주완 [2007.09.28]

김주완 2007. 9. 28. 09:38

[시]


      석류 1 / 김주완

 

 

가슴 저리게 긴 봄날

붉은 치맛자락 살포시 여미며

물오른 아랫도리 농염하게 비틀며

나부댔다


초록 숲 아무데나 선연한 미소

지천으로 뿌려대던

만록총중의 홍일점*

그년 불붙은 화냥기

봄부터 서성이며 동네방네

시퍼런 사내들 다 후렸다


온 몸 달구던 한여름 땡볕

속으로 속으로 빨아들여

염낭 같은 아랫배 불러오자

입술 앙다물며 익는 몸 도사렸다

눈물겹게 얼굴 하얀 배내 것들, 그때

투명한 양막 속에서

토실토실 몽롱하게 살 오르고 있었겠지


때 되어 부는 색바람에

가까웠던 것들 서둘러 떠나고

혼자 남은 그년

파리한 얼굴에 잔뜩 묻은 혼곤,

만삭의 뱃가죽으로

터실터실 실주름이 잡혀갔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산등성이 길

가붓한 억새꽃만 나부끼고 있었다


지친 그년

스스로 몸 터트려 붉은 속 열어놓고

‘먹어라, 먹어라’

먹히고 싶어 반짝이는 눈알같이

함초롬히 젖어있는 석류알들


한입 가득 머금었다가 와르르

쏟아낼 것 같은 달고 신 유리체액琉璃體液

군침 돌아 우물거리는

실속 없는 잡것들의 헛입질


* 萬綠叢中紅一點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송대의 문장가이자 학자인 왕안석(王安石)의 석류시(石詩) 중의 한 구절 / <온통 푸른 숲 가운데 빨간 꽃이 한 송이 있다>는 석류에 대한 비유적 표현

 

                                                                                                                                        <2007.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