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석류 1 / 김주완
가슴 저리게 긴 봄날
붉은 치맛자락 살포시 여미며
물오른 아랫도리 농염하게 비틀며
나부댔다
초록 숲 아무데나 선연한 미소
지천으로 뿌려대던
만록총중의 홍일점*
그년 불붙은 화냥기
봄부터 서성이며 동네방네
시퍼런 사내들 다 후렸다
온 몸 달구던 한여름 땡볕
속으로 속으로 빨아들여
염낭 같은 아랫배 불러오자
입술 앙다물며 익는 몸 도사렸다
눈물겹게 얼굴 하얀 배내 것들, 그때
투명한 양막 속에서
토실토실 몽롱하게 살 오르고 있었겠지
때 되어 부는 색바람에
가까웠던 것들 서둘러 떠나고
혼자 남은 그년
파리한 얼굴에 잔뜩 묻은 혼곤,
만삭의 뱃가죽으로
터실터실 실주름이 잡혀갔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 산등성이 길
가붓한 억새꽃만 나부끼고 있었다
지친 그년
스스로 몸 터트려 붉은 속 열어놓고
‘먹어라, 먹어라’
먹히고 싶어 반짝이는 눈알같이
함초롬히 젖어있는 석류알들
한입 가득 머금었다가 와르르
쏟아낼 것 같은 달고 신 유리체액琉璃體液
군침 돌아 우물거리는
실속 없는 잡것들의 헛입질
* 萬綠叢中紅一點 :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송대의 문장가이자 학자인 왕안석(王安石)의 석류시(石榴詩) 중의 한 구절 / <온통 푸른 숲 가운데 빨간 꽃이 한 송이 있다>는 석류에 대한 비유적 표현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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