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6ㆍ25 39주년에 즈음한 통일논의]
<대구한의대학보 제60ㆍ61호 5쪽 : 1989.06.26.>
통일논의는 보수와 진보집단의 갈등문제
김주완(시인/철학과 교수)
전쟁세대와 전후세대로 구분함은 타당한가
통일을 <지상목표>로 설정하고 보수와 진보의 논쟁을 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무의미한 것
통일이란 갈라진 둘 이상의 것이 “하나로 합함‘이다.
그것은 화해와 양보의 지평 위에서만 가능
1. 들어가며
조국분단 45년에 접어든 지금, 통일논의와 운동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점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일방안에 대한 견해와 그 실천방향은 첨예한 대립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남과 북의 당국자는 각각의 통일정책을 수립하여 꾸준히 발표하여 왔고, 때마다 그것은 조금씩 수정되어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시대적 요청에 유연하게 부응하고, 격동하는 국제관계의 질서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는 명분이 언제나 그 전제였다. 그러나 실질적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통일논의는 그들 당국자에게만 허용되고 있으며, 우리는 통일을 향해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통일에 관한 한 상황은 아무것도 변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동성명 발표ㆍ이산가족 상봉ㆍ적십자회담ㆍ수재민 구호물자 원조 등 잠시 우리를 흥분하게 했던 일련의 접근시도들은 모두 일과성에 불과했다. 남과 북의 적대관계는 계속되고 있으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긴장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세워 왔던 통일정책들은 남이나 북이나 한결같이 화려한 선전용의 구호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통일에 관한 남북한 당국자들의 의식과 대응이 원천적 자기모순성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인가?
이러한 문제의 분석과 해명과 비판은 전문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들인 정치학ㆍ사회학ㆍ경제학 등에서 보다 철저히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그러한 사회과학의 도움을 받되, 이들 영역과는 다른 소박하고 평범한 상식적 원론의 범위 내에서 다소간의 철학적 방법을 원용하여 문제의 본질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2. 전쟁세대와 전후세대라는 개념 구분의 문제
통일에 관한 인식과 실천노선에 따라 <전쟁세대>와 <전후세대>로 구분함은 과연 타당한가?
이 구분은 흔히 <신중한> 세대와 <무분별한> 세대로 환치되기도 한다. 혹은 나아가서 <보수주의>와 <급진좌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구분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신중한> 현상유지 우선인가, 혹은 <무분별한> 통일 우선인가의 입장 구분이다. <신중함>이란 북한의 교묘한 선전ㆍ선동을 예의 경계하며 반공의 경각심을 드높임을 말함이고, <무분별함>이란 다소의 시행착오와 위험을 감내하면서라도 통일을 향해 과감히 나아가고자 함을 말함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입장의 차이를, 출생과 생존 년대를 기준으로 한 단순한 시간선상의 구분으로 파악하는 것이 결코 타당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전쟁세대 중에서도 통일 우선의 사고를 가진 자가 있을 수 있고, 전후세대 중에서도 현상유지 우선의 사고를 가진 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쟁세대>와 <전후세대>라는 구분 보다는, 오히려 <보수집단>과 <진보집단>이라는 구분이 더욱 적합하다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표상의 일반화(개념)는 그 쓰임에 의존한다는 것을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이론은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3. 통일논의의 갈등현상과 반성
대학생과 재야세력을 주축으로 한 일단의 민중세력인 진보집단은 통일논의를 개방하고 대북 접촉창구를 다원화하며 남북교류를 자유화하자고 한다. 이에 반해 보수집단은 혼란을 예방하고 북한의 통일전략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진보집단은 이른바 한국의 역사적 현실을 신 식민지적 구조로 파악한다. 이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 산물로서 경제적 종속관계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한국은 제국주의 미국ㆍ일본 등의 하부단위 성격으로서 정치ㆍ경제ㆍ군사 등 모든 면에서 그들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종속관계의 해체 없이는 민족통일의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은 자주ㆍ민주ㆍ통일의 기치를 내걸고, 한편으로는 민족문제의 이론 정립과 민중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 계몽에 나서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미ㆍ자주ㆍ민족통일의 실천적 운동에 나선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논문과 저서, 그리고 남북교류의 강행 및 각종 민간단체의 직접적 접촉 시도, 뿐만 아니라 남북학생회담과 7월에 개최되는 세계청년학생평양축전의 참가 결의 등이 바로 그러한 현상들이다.
보수집단은 경제발전과 안보와 사회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반세기를 일관해 온다. 북한을 닫힌 체제의 적대국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무력적화 통일의 야욕을 가진 전쟁광으로 규정하고 미국과 일본을 동반자적 선린우방으로 강조한다. 이 입장에서는 남북 대결 논리가 주종을 이룰 수밖에 없다. 북한에 뒤지지 않는 무력증강이 요구되고 더욱 앞서가는 경제발전이 중요시 되며, 평화 보장을 위한 미군의 계속적 주둔이 필요로 된다. 보수집단의 중심세력은 언제나 정치 권력자들이다. 이들은 통일논의의 창구를 일원화 시키고 통일문제의 주도권을 장악하여 국민 대중을 선도하고자 한다.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국가보안법의 적용 등 강권을 발동할 수가 있다. 이에 대한 현상은, 정가에서 발표되는 통일정책이나, 관제우익단체의 동시다발적 출현과 맞불작전의 대대적 궐기대회의 개최나, 언론의 맹목적 애국캠페인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갈등상황의 와중에는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 속에서 생겨난 희생은 어떠한가? 꽃다운 나이의 젊은 대학생과 경찰이나 군인의 아까운 죽음들이 바로 그 희생들이고, 정의와 양심의 길에 헌신하던 많은 재야인사와 작가ㆍ언론인ㆍ성직자ㆍ교수 등의 구속이 또한 그 희생들이며,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문익환 목사의 방북사건이 실정법 위반으로 끝내 구속되고 만 일 또한 그러한 희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와 같이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는 진보와 보수 두 집단 간에도 하나의 공통점은 찾아지고 있다. 그것은 통일을 <지상(至上)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은 진실로 우리의 지상목표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최고의 목표>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 아래 종속될 수밖에 없는 목표, 그 위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목표, 그것이 지상목표인 것이다. 따라서 최고목표의 실현을 위해선 그 아래의 모든 것은 오로지 방법과 수단의 위치에 머물러야 한다. 체제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와 같은 <최고의 위치>에 진실로 통일을 자리매김하고 있는가? 오히려 경제성장과 안보논리와 체제수호가 통일보다 상위의 가치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단적으로 말해서 보수집단은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고 진보집단은 체제를 초월하고자 한다. 보수집단은 분단의 영구화를 획책하는 민족분열세력이라고 공격받고, 진보집단은 좌경용공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 단지 그 진전 속도가 늦을 뿐 진실로 실질적 통일논의에 나서고 있다면 그러한 보수집단마저도 민족분열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까지도 부정하며 이를 초월ㆍ지양하려는 입장이 진보집단이라면 그러한 경우에도 좌경용공세력으로 볼 수가 있을까? 통일을 지상목표로 설정하고 본다면 이러한 논쟁은 오히려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국가와 민족의 안보가 아닌 정권과 권력안보를 위한 통일정책이 만약 아직도 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루빨리 버려야 할 낡은 유물이다. 우리가 <진보>를 <눈뜬 의식>으로 <보수>를 <눈 감은 의식>으로 규정한다면 이는 논리적 오류인가?
문익환 목사의 방북사건에 있어서 실정법 위배라는 논리문제도 우리는 새로이 파악해야만 한다. 실정법이 있고 거기에 위배되었다면 처벌을 기피할 방도는 없다. 그러나 법률적 정당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도덕적 정당성까지도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법 적용이 형평을 잃었을 때 법의 권위는 무너지고 만다. 아무도 그러한 처벌에 승복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도덕성의 근거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장으로서의 사회이고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민족이며 그들이 가진 정서이다. 먼 역사적 시각에서 뒤돌아보았을 때, 민족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얽어매는 그러한 법이라면 그것은 악법일 수밖에 없다. 실정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한 적용만이 능사일까? 아니면 시대에 부합하는 법률로 조속히 개정하는 것이 선결문제일까?
좌우이념논쟁 또한 그러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지배 아래서 재편된다. 열강의 이익분배의 산물이 한반도의 분단이다. 우리가 양대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은 일제 식민시대를 합하더라도 불과 70여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에 구속되어 있다.
인간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위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예속상태 아래 있어야 하는가?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방향에서 세계를 내다보는 편의적인 틀(형식)일 뿐이며, 역사진행이라는 토양 위에서 생겨난 시대의 아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데올로기는 언젠가는 소멸해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 시대에 있어 이데올로기 논쟁은 과연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느냐의 의문이 바야흐로 제기되고 있다. 이제 이데올로기로부터 인간이 해방되어야만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대중을 혼란 속으로 끌고 가고 있다. 대중의 호응을 요구하며 선도적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정부 당국자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누가 과연 이 시대의 위인들인가? N. 하르트만은 “위인이란 그 자신의 이념을 가지고 군중 앞에 나타나 그들이 하고자 하지도 않는 것으로 몰아가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그들이 현실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민중에게 말하여 줄 줄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4. 갈등 요인
이러한 갈등의 근본요인은 어디서 찾아질 수 있는가?
첫째, 권력의 도덕성 결여와 정치의 후진성
둘째, 자주성 확립의 미흡
셋째, 눈 뜬 세대의 양적 팽창
넷째, 시대에 뒤떨어진 반공교육
다섯째, 위기로서의 현대적 제 징후의 영향
등을 들 수 있겠다.
현실은 앞서 가고 정치는 뒤따라가는 상황 속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에 회의와 불신과 염려가 팽배하고, 북한 공산주의자의 생태와 6.25라는 가공할 전쟁경험이 차츰 퇴색해 감으로 해서 갈등은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험의 본질을 상대적ㆍ주관적인 것으로 본다면, 지금까지의 경험주의적ㆍ폐쇄주의적 반공 이데올로기가 문제파악과 해결에 더 이상의 보증은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5. 통일 전망
통일이란 <하나로 합함>이다. 갈라진 둘 이상의 것이 <하나 됨>이다. 그것은 화해와 양보의 지평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극단적인 두 입장이 각각의 방향에서 자기의 고유한 성질만을 고집할 때 그들은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하고 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처한 현실적 상황에서 통일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하나의 자기모순이 아닐까? 북은 <남이 북으로 편입됨>을 요구하고, 남은 <북이 남으로 편입됨>을 주장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통일은 화려한 환상인가?
통일의 실현문제는 주어진 현상으로 볼 때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주어진 상황에서는 실질적 통일이 불가능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혁명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실로 혁명을 바라는 자가 얼마나 될까? 그러므로 통일은 환상적 모습으로만 보일 수도 있다. 그러한 환상적 모습을 어떻게 현실적ㆍ구체적 모습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보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환상 자체에서 구상을 찾아내야 한다. 환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통일에 관하여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은 진실로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라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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