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근작시

[시] 2003년 6월에서 8월 사이 / 김주완 [2003.08.18.]

김주완 2003. 8. 18. 15:59

[시]

 

          2003년 6월에서 8월 사이



                                                          김 주 완


잊지 말자,

2003년 6월에서 8월 사이


우리는 보았다

자주, 비가 오는 것을

하늘 땅 자욱하게

썩은 흙비 어둡게 내리는 것을


그것은 비의 배반이었느니,

지성과 진리가 살 곳에서

서식하던 곰팡이들의 모략,

엉성하게 짜여진 조작의 음모였느니

이 때, 그곳은

천지조화가 온통 그들 손에 있는

배리의 절대 왕국이었으니


그러니

어찌하겠느냐,

이미 더럽혀진 채로 내리는 비와

땅위의 진흙덩이가

곰팡이의 썩은 냄새를 풍기며

얼싸안고 뒹굴면서 몸을 섞어

벌건 탐욕의 얼굴을 쳐들고

도도한 흙탕물로 쏟아지는 것을


여린 풀잎이 뿌리째 쓸려간다고

누가 연약함을 나무라겠느냐

버티어라, 버티어라

받쳐준 사람이 어디 있었더냐

불쌍하도록 그들은

힘든 싸움을 외롭게 하였다,


정의는 참혹한 시체가 되었고

귀곡성 음산한 성벽 위에서

찢겨진 깃발이 되어

진리와 자유는 갈기갈기 흩날려 갔다,


그래도

풀잎의 순교는 성스러웠느니,

꺾인 허리와 목 줄기로

낭자한 선혈 뚝 뚝 흘리면서도

그들은 변절하지도 굴종하지도 않았느니

타협을 허용하지 않았느니

흙탕물에 젖어들지 않았느니,

죽은 정의의 시신을 들쳐 메고

슬피 슬피 울면서

힘겹게 언덕을 오르고 있었느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손놓고 바라본 우리의 무력함을

가슴 치며 탄식하는 일

잃어버린 우리들 넋을 동정 받는 일

건너지 못하는 절망의 늪을 애도하는 일

이뿐이니,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다시는 이곳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이다


2003년 6월에서 8월 사이

불의가 하늘을 뚫고, 배신이 땅을 가르던

이 여름의 처참한 기억을

곰팡이가 된 사람들의 행위를


                                                    <2003.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