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시 해설/기념시(기념시·인물시·축시·조시 등)

[인물시] 사진인 趙文浩 형 / 김주완 [1989.11.]

김주완 2001. 1. 5. 19:36

[인물시]


 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수록



사진인 趙文浩

    

                                                                                                                 김주완

 


내가 알기로, 사진인 조문호* 형은 남이 입을 때 벗고 산다, 묻혀서 산다, 거치적거리는 거처보다 사진기 몇 대 더 소중히 붙안고 산다, 맨몸으로 산다, 양지와 음지, 살아있는 색들로 가득 찬 네안데르탈인의 흉용한 눈길, 기인奇人이라 해도 아니라고 하는 그의 결 고운 머릿결로 안개망울 내리고, 불혹을 살며 어디든 간다, 순간에 삭는 세상의 부스러기를 잡으러 바다로 공장으로 시장통으로 잘못 살아있는 정신을 죽이고 잠든 정신을 살리러 간다, 산 것은 변하고 죽은 것만이 한결로 하나이거니, 오래 살아야 할 것만이 남아야 하거니, 프리랜서로 사진기자로 편집장으로 배고픔은 접어두고 사진을 찾아 오만 군데 간다,


배고픈 눈으로만 보이는 것, 포만한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 박쥐의 날개그늘 아래 묻혀 신음하는 웃음 같이, 공단지역 굴뚝 끝으로 피는 까맣게 눈물 서린 꽃구름 같이, 빈 가슴으로만 보이는 지상의 아름다움, 사랑 같은 걸 영혼 같은 걸 눈만이 아니라 손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가슴을 찍어내는, 신神 같은 사람, 온몸으로 줄줄 귀기 서린 재주가 흐르는 그가 넉넉한 온정으로 기계를 찍으면 기계가 말을 한다, 검고 찬 쇳덩이도 이웃이 있고 몸과 맘을 당겨 인정을 나눈다,


길을 가다 보면 그가 생각난다, 차가운 괴물에 불어넣던 뜨거운 숨결, 묘혈 같은 눈에 담긴 마산 앞바다, 그런 것들이 두런두런 떠오른다, 가슴 꽉 메는 절절한 전율이 서러운 그의 사진이 떠오른다, 가진 것 다 버리고 깊이깊이 사진에 묻혀 사는 그의 외길이 부러워진다,


* 사진인 조문호는 90년대 이후부터는 한국불교사진에 전력을 쏟고 있다.


                                                                                                        <198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