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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시] 젊은 철학도에게 / 김주완 [1989.04.]

김주완 2001. 1. 1. 16:09

[권두시]


 대구한의대학교 동양철학과 고접답사(1989.04.) 권두시

『달구문학』창간호 (1989.10.10.) 수록

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수록



    젊은 철학도에게


                    김주완


달구벌에 꽃샘바람 불면

칼바람에 복숭아꽃 분홍 살 떨면

아직은 저들의 계절,

흔들리면서 제 자리 지키는 뼈

하얀 뼈를 찾아가자,

능선마다 자욱한 안개의 물결

일어서는 미망迷妄의 비늘 털고

적소適所의 뼈 한 마디 발라내어

우리 시리도록 밝게 들여다보자,

심장에 심지를 꽂고 깊숙이

더운 불 밝히는

그대들

싱싱한 실천의 줄기에

하늘 밀려나 저만큼 가고

황폐한 역사는 껍질 벗는다,

그러나 봄비 오는 오후

우리

굳지는 말고 젖기만 하자,

아픔을 아끼며 눈물짓자,

한 장의 손수건으로 불완전 차단된

맵고 매운 역사의 후각 근처

그러나 우리는

청렬한 이론의 샘에 발 담그고

성숙한 지성의 꼭대기에

지지 않는 꽃 한 떨기 피우자, 고이

먼지랑 그늘이랑 남루襤樓랑

가장 미운 그것도 실은

가장 가까운 우리의 것,

삭막한 뼈마디의 반쪽임을

차마 안다는 게 슬픔이라도

밝게 밝게 들여다보자,

오늘은 어지러운 사랑이지만

그대들

물 올라 푸른 순수의 수액

오래 오래 안고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