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 『우방』1989. 11/12월호 (1989.11.01.) 권두시
주)우방이 후원한 <1989 히말라야 초요유 원정대 등정 성공 축시>
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1994) 수록
[권두시/축시]
山
김주완
누가 오만할 수 있는가
이 거대한 침묵 앞에서
누가
고단하고 숨찬 노년기의 지상의
굳어 빠진 이름
가진 위에 가지고 또 가지던
육중한 헛이름을 벗지 않으며
휘두르던 힘 내려놓지
아니할 수 있는가
아득히 비어있는 순결한 산상山上으로 오르는
눈밭에 눈目 찌르는 햇살 튀고
투명한 빙벽의 심장 가까이
얼어붙은 시생대의 기억 온전한
이리 큰 시원始原의 사랑 앞에
홀홀하게 벗은 가장 사람다운 사람만이
저리 큰 걸음을 딛는 것을
차디찬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가련한 한계를 넘어
높은 품을 향하여 묵묵히 오르는
신중한 실천의 든든함이 있는 것을
진리의 건축학은 포섭하느니
펄펄펄 순백의 바람 앞에 나서
오래 출렁이는 깃발 하나 내거는
여리다 여린 그러나 강인한
의지 하나 하늘로 세우는 한님의 아들
조선족의 아름다운 후예가 있느니
사람이 밟고 사람이 밟히는 어지러운 시대
잠든 날들의 울창한 시간을 지나
더러 눈뜬 자 능선으로 나가 길을 내며
부서지는 눈물 뿌리는 이 땅의 역사
그래도 아직은 꿈꾸는 영혼이 있어
산정山頂은 저기 저렇게 손짓하고 있느니
수만 수억의 연륜을 건너
말보다는 차라리 몸짓으로
넘어섬이 있다면 바로 여기리니
삶의 가슴 저린 그리움이여
암묵暗黙하는 태허太虛의 우주 앞에
한 점 티끌의 겸허로써 오늘은
수굿하고 크나큰 꿈으로 안겨
지상의 헛된 이름을 벗고
불 지핀 속의 화롯불 낮게
낮게 줄여
山의 소리
진리와 화평과 열락과 포용의 가르침에
귀 잠잠히 기울이자
고단하고 숨찬 노년기의 지상이
그래도 아직은 우리가 살 곳이리니
살아가야 할
가장 넉넉한 이웃이리니
<198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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