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시]
무채색의 낮은, 그러나 굳건한 길
― 경북대학교 철학과 50년사 간행에 부쳐
김주완
언제, 철학이 화려한 적이 있었던가
언제, 철학이 환영받고 대우받은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우리는
‘철학한다’는 자긍심으로
멀리 반세기를 걸어왔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서로 다른 일들을 수행하면서도
우리는 일마다 남들과는 달랐다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얼음같이 투명한 이성의 분별과
눈 뜬 의식의 자부심으로
때마다 고개를 들어 푸른 안광으로
우주와 미래를 내다보며 살아왔다
자유와 정의와 평등과 순수의
펄럭이는 이념의 푯대 가슴 높이 세우고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현실은 저만치 언제나 앞서 가고
철학은 늘 뒤따라가는 정리작업이거니
근원 중의 근원을 찾는 무채색의 메마름이더라도
낮은 데로, 더 낮은 데로 임하여
거기 사는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돌밭길이거니
일청담 주변으로 거닐던 시간과
숨결 맑은 젊은 날, 날밤 새던 담론들
지금도 그리워라
연륜만큼 절절이 그리워라
다시 오는 오십년도
우리는 그와 같이 살 것이니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무채색의 낮은, 그러나 굳건한 그 길을
소리 없이 끝도 없이 걸을 것이니
영원이 있다면 바로 거기리니
<2002.10.30.>
'시 · 시 해설 > 기념시(기념시·인물시·축시·조시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시] 이용원 박사 진주교대 총장 취임 / 김주완 [2004.01.16.] (0) | 2004.01.16 |
---|---|
[여는 시] 경산대학교 문화학부 2003 고적답사 / 김주완 [2003.10.01.] (0) | 2003.10.01 |
[축시] 이용원 경산대학교 총장 퇴임 / 김주완 [2002.06.28.] (0) | 2002.06.28 |
[축시] 백승균 교수 정년퇴임 / 김주완 [2001.08.31.] (0) | 2001.08.31 |
[인물시] 자조-철학자 이윤복 박사 / 김주완 [1996.11.15.] (0) | 2001.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