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성․사랑․결혼
김 주 완
3.1 성․사랑․결혼의 순결
3.1.1 순결의 본질 특징과 성․사랑․결혼
순결이란 깨끗함을 의미한다. 다른 것과 비교하여 그것보다는 깨끗하다는 것은 상대적 순결이다. 절대적 순결은 처음상태 그대로 있는 깨끗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보태어지지 않았음’, ‘새로운 어떤 것도 덧붙여지지 않았음’이 절대적 순결이다. 그러므로 순결의 대립개념은 불순이 아니라 충만이다.1) 우선 절대적 순결을 중심으로 순결의 본질과 현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순결과 충만은 양극의 관계에 있다. 순결만 가치가 있고 불순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순결은 ‘경험 없음의 미덕’이고 충만은 ‘경험 많음의 미덕’이다. 성이 순결은 ‘성적인 경험이 없음’이다. 성의 순결의 가치성은 그러니까 주어진 것을 잃지 않았음의 가치로서 예컨대 성직자, 동정녀, 동정남이 그들의 동정을 아직 잃지 않고 보유하고 있음의 가치이다. 사랑의 순결은 ‘아직 사랑해보지 않았음’이거나 ‘처음 사랑함’이거나 ‘한 사람만을 진심으로 사랑함’이다. 결혼의 순결은 ‘아직 혼인해보지 않았음’이다. 따라서 순결은 아직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에 ‘텅 비어 있음’이며, 하나의 가치에 저촉하는 모든 것을 배척하는 가치이다. 그러므로 순결은 궁극적으로 어린이의 덕(德)이다.
순결은 공적이 아니다.2) 왜냐하면 노력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주어진 것이며 저절로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적 경험 없음’이나 ‘아직 사랑해 보지 않았음’이나 ‘아직 결혼하지 않았음’은 노력하여 얻은 공적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것을 아직 그대로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더 오래 유지하거나 간직하기 위하여 노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높은 도덕적 성질을 가진다.3) 순결한 사람의 행위는 솔직하다. 때묻지 않아서이며, 따라서 숨길 것이 없음으로서이다. 순결한 사람은 순결한 사람을 쉽게 알아본다. 불순한 사람은 순결한 사람의 솔직함을 불신하기 쉽다. 왜냐하면 불순한 사람은 마음이 복잡한 사람이며, 순결한 사람의 단순함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순결한 사람은 남을 의심할 줄 모른다.”4) 사람은 누구나 착한 줄 알고, 남의 나쁜 짓도 선의로 해석한다. 성적으로 순결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음탕한 눈길로 바라보아도 눈치채지 못하고, 순결한 사랑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기를 정략적으로 대하더라도 그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순결하니까 나쁜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순결한 자의 이러한 신뢰는 유치하나마 하나의 힘을 가지고 있다. 불순한 다가 악에 영향을 미치듯이 순결한 자는 선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처음에는 재벌의 딸로 착각하여 정략적으로 접근했던 남자가 나중에 상대 여성의 순수한 사랑에 감복하여 참회하게 되고, 진심으로 상대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상대여성의 순진무구함과 진실함에 감화되어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던 타산적인 행위가 부끄럽다고 느낄 정도로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순진은 악을 방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악을 보고도 악인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순진은 “악에 대하여 외적으로는 무력하지만 사실은 가장 강하다.”5) 죄 있는 자가 도리어 무력하다. 죄 있는 자가 순결한 자의 시선에 마주치면 자기의 무력함을 느끼게 된다. 순결한 사람으로부터 선인(善人)으로 대접받으면 내적으로 무시되고, 심판 받고, 벌 받는다고 느끼게 된다.
“순결한 사람의 존재는 화육(化肉)한 선의 힘이다.”6) 불순한 자에 대하여 살아서 보행하는 양심이다. 예수의 눈앞에서는 약삭빠른 타산도 움츠려 들고 예수의 솔직함 앞에서는 간사한 재주도 침묵했다. 순결한 사람은 그 활동에 의해서 무엇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활동은 목적활동이 아니다. 그 자신이 경고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순결은 신성(神聖)에 접한다. 순결한 사람 중에서 위대한 자는 성인으로 존경받아 왔다.
순결한 사람도 충동을 가진다. 그러나 그 충동은 비뚤어지지 않게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보유한다. 성적으로 순결한 사람도 성욕을 느끼고 아직 사랑을 해보지 않은 자도 사랑하고 싶어지며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결혼하고 싶어진다. 욕구와 충동의 거부, 남용은 순결의 오염이 된다. 감성 권역에서의 순결은 예민, 정결, 수줍음 등이다. 순진한 사람에게 이것들은 감성적 충동 자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다. 이것들을 상실할 때 사람의 자연적 통일은 왜곡된다. 순결한 감성은 맑은 감성이며, 그것은 예술가들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순결한 영혼은 성직자, 지사(志士), 순수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서 발견된다.
충만과 순결은 서로 배제하면서, 요구한다.7) 그 가치성격이 하나는 가득 차 있고 다른 하나는 텅 비어 있는 그러한 배반관계이기 때문에 충만과 순결은 서로 배제한다. 그러나 충만은 순결을 요구하고 순결은 충만을 요구한다. 양자는 다같이 피차 상대방 없이는 불완전하다. 순결은 어느 단계가 되면 충만으로 나가고 싶어하고 충만은 또한 순결로 나가고 싶어한다. “충만에 달한 사람은 이미 잃어버린 순결을 동경한다.”8) 아직 순결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충만을 구한다. 예컨대 어른은 일반적으로 어린 시절의 천진 난만에 대하여 일종의 동경을 품고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상태를, 막연히 예상된 갈등, 책임, 인생의 비극을 동경한다. 순결한 사람의 충만에 대한 동경은 언젠가 충족시켜진다. 그러나 처음 꿈꾸었던 것과는 달리 충족시켜진다. 예컨대, 성적으로 순결한 소녀는 멋있는 첫사랑과 환상적인 첫 키스를 꿈꾸며 동경한다. 그때마다 그녀는 설레임 속에서 황홀해 한다. 그러나 막상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와 첫 키스를 하는 것은 그녀가 꿈꾸어 왔던 것과는 다르지 않게 되어 버리기가 쉽다.
이에 반해서 충만한 사람의 순결에 대한 동경은 충족시켜 질 수 없다. 그것은 영원한 동경에 그칠 뿐이다. 이미 성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은 그 이전의 동정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고, 이미 사랑을 해버린 사람은 그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충만과 순결의 내적 변증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순결에서 충만으로 향하는 일방로(一方路)만이 있다.”9) 이 방향은 거꾸로 되지 않는다.
순결의 특성은 구할 수 없으며 실현할 수도 없다는데 있다. 순결은 동경할 수는 있으나 지향의 목표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순결은 어떤 인격에 있어서 구현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구히 실현되지 않는다. “순결을 가진 사람은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고,, 가지지 않은 사람은 얻을 가능성이 없다.”10) 지금 보유하고 있는 순결의 소중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순결은 가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공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애써 획득된 것이 아니고 증여된 것이기 때문이다. 순결은 획득되지는 않더라도, 이것을 유지할 수는 있는 것이다.11) 순결은 갈등도 책임도 알지 못하는 어린이의 상태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인생의 길을 깊이 들어가서도 역시 유지될 수 있다. 왜냐하면 순결은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12) 그리고 절대적 순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순결은 단계별 순결이며, 상대적인 것이다. 순결 가치를 가짐이 적을수록, 사람들은 일층 더 많은 가치감을 그것(순결)에 대하여 가진다. 예컨대 죄의식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일층 더 많은 가치감(순결 가치)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불순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반대로 가치감이 감소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의 덕성 변화과정의 단계에서는 근사적으로 종합이 말해질 수 있다. 충만의 증대에 따라, 즉 순결이 자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할수록 하나의 덕성에 있어서의 이 종합이 일층 완성되는 것이다. 사랑의 경험 없는 순결 상태에 있는 사람은 사랑의 경험을 동경하고 희구한다. 그리고 마침내 첫사랑을 경험한다. 동시에 사랑의 경험 없는 순결상태를 상실한다. 그리고 마침내 상실한 순결의 상태를 동경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의 경험 없는 순결상태로 되돌아 갈 수는 결코 없다. 그래서 그가 대안으로 찾는 것은 아직 자기에게 남아있는 사랑의 순결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바로 첫사랑을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다. 변함없이 첫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그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경험 없음의 순결은 아니지만, 앞으로 어쩌면 하게 될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랑으로 인하여 생기게 될 상처 위의 상처나 딱지 위의 딱지가 아니라, 더 이상은 때묻지 않은 첫사랑의 순결을 유지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첫사랑이라는 (하나의) 덕성에 있어서 순결과 충만의 종합이 완성된다.
사람은 순결의 가치를 깊이 파악할수록, 천진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형이상학적 요구를 강하게 느낀다.13) 이러한 형이상학적 요구는 신앙이 해결해 준다. 神은 인간 대신에 고뇌하고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이다. 신의 용서를 받은 자는 죄가 사하여지고 구원된다. 다시 말해서 죄의 소멸로 정화됨(깨끗해짐)으로써 순결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순결은 신의 은총으로 되돌아 와 재생한다.14)
윤리학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순결은 유일의 가치도 아니고, 도덕의 중심적인 가치도 아니다. 순결을 유일한 가치로 보고, 도덕의 중심적인 가치로 보는 것은 극단적인 도덕적 비관설이다. “순결은 동등한 가치가 있는 가치대립의 일개 항에 불과하다.”15) 충만 또한 순결과 동등한 가치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구해져야 할 것, 달성되어야 할 것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3.1.2 혼전 순결과 성 의식의 이중성 문제
대구지역 대학생의 성의식에 대하여 1996년에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16)에 의하면, 조사대상자 중의 36%가 성관계 경험자였다. 이 중 남자가 51.6%, 여자가 13.2%이었다. 애인을 바꾼 사람은 44.8%로써 2명중 1명꼴이었으며, 네 번 이상 바꾼 사람도 14.2%나 되었다. 혼전순결에 대한 의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대구지역 대학생 성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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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혼전 순결 : ▷ 전혀 또는 거의 안 지켜도 된다 20.9% ▷ 그저 그렇다 29.0% ▷ 거의 지켜야 한다 30.9% ▷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 20.2% ㅇ 배우자의 혼전관계 : 용서하겠다 ------- 71.9% |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혼전 순결은 비교적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배우자의 혼전관계에 대해서도 상당히 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를 실시한 지역이 보수성이 강한 대구지역이었다는 점과 그 후 인터넷 보급 등이 빠른 속도로 보급됨으로써 성개방이 가속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성적 개방성향이 훨씬 더 확대되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다. 결과치나 추정치에 대한 해석이나 분석은 여러 가지로 가능할 것이다.
근원적인 문제는 한국사회에 있어서 성 의식의 이중성에 있다고 일반적으로 지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구되고 있는 윤리적 규범과 실질적 풍속도의 괴리가 심각한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 있어서도 성 문제가 실존적 문제가 되었을 때, 자기가 평소에 가져왔던 신조나 주장과는 달리 자기중심적이거나 보수적인 입장에서 문제에 접근하여 해결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성적 자유주의나 윤리적 상대주의 입장을 취하던 사람이 자기 배우자의 부정이나 부정한 과거에 대하여는 용납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 신혼부부 세 쌍중 한 쌍이 이혼하고 있고, 그 이혼 사유 중에서 배우자의 과거 부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한국사회에 있어서 성 의식의 이중성과 그것의 형성원인, 극복과제 등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양해림은 성에 대한 이중적인 성규범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17)
① 절대로 순결을 지켜야 한다. : 혼전의 성교는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남녀 모두 허용해서는 안 된다.
② 애정이 있으면 허용해도 좋다. : 약혼이나 결혼할 대상이나 사랑하는 사이에는 남녀구별 없이 허용해도 좋다.
③ 애정이 없어도 좋다. : 육체적 매력만 있으면 남녀구별 없이 허용해도 좋다.
④ 이중기준 : 혼전 성교는 남자에게는 괜찮지만 여자는 안 된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보통, 미혼여성은 혼전성교가 허용되지 않고 기혼여성은 혼외관계가 허용되지 않으면서 미혼남성의 혼전성교는 허용하고 있다.18) 이것은 여성에게만 ‘목숨보다 귀한 것이 정조’라는 순결이데올로기 내지 정절이데올로기를 전통적으로 지나치게 강조해 온 데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조선조 유교주의의 잔재라는 지적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남자의 경우는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질수록 능력 있는 남자로 비추어지는 반면에, 여자의 경우에는 정조를 잃은 여인은 가치가 없거나 매력이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여기에는 남녀에게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순결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지적될 수 있고, 절대적 순결만을 인정하고자 하는 독단적이거나 편견적인 순결이데올로기의 심각성이 지적될 수 있다. 혼전에는 순결, 결혼 후에는 일부종사라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한편에서는 건재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조금씩 변모되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 의식의 이중성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문화의 산물이며, 이러한 문화권 속에서 남자는 자연스럽게 거기에 익숙해져 있고, 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기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양해림은 성과 사랑에 대한 남녀의 서로 다른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제시함으로써 밝혀낸다.19)
[성과 사랑에 대한 남자들의 생각]
① 남자들은 성과 사랑이 쉽게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랑 없는 섹스가 가능해진다. 남자들은 그리하여 매춘의 고객이 될 수 있고 강간의 주범이 될 수 있다. 남자들은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② 남자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성과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을 여자보다 비교적 낮게 둔다. 남성들은 성과 사랑에 인생을 거는 것은 남성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성과 사랑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남성들은 사회적 성공이 중요하며 순결은 그리 큰 문제가 안되며 외도도 허용 될 수 있다.
③ 남자들은 공격적이고 주도적이며, 능동적이어야 남자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성들은 여성을 정복한다, 또는 성관계를 맺었다고 하는 고상한 표현보다 씹했다, 콩깟다, 먹었다, 혹은 따먹었다, 빠구리했다는 표현을 거리낌없이 쓴다. 이는 많은 자기 자신을 자랑할 만하다는 생각, 성적인 능력이나 정력은 남성성의 기준이라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④ 남자들의 여자들에 대한 일상적 생각에는 상호 모순적인 측면이 많다. 여자들은 성적 욕구가 그다지 없다고 보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무한한 성적 만족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또는 여자들을 신비로운 존재로 여기는 동시에 별 볼일 없는 하찮은 존재로 생각한다. 또한 여자의 성을 처녀성과 비처녀성이라는 양극단으로 나누어 등급화 한다. 그래서 성적인 유희의 대상인 여성과 결혼대상의 여성을 명확히 구분한다.
⑤ 결혼은 정숙한 요조숙녀와 한다. 결혼이란 남편이 원할 때 언제나 성관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획득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성적 독점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결혼은 성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야한 여자보다 정숙한 여자를 택한다.
⑥ 성관계에서 피임이나 임신은 여성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출산한 아이는 아버지의 소유이고 자기의 자식임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아내의 정절은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성과 사랑에 대한 여자들의 생각]
① 여성에게 있어서 성과 사랑은 대체적으로 분리시키기가 어렵다. 여성의 일차적인 행복이 가정에 있다는 통념은 가정이 여성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 때문이다. ‘여성은 사랑을 위해 살고 남성은 일을 위해 산다’는 말은, 여성은 남성에게 의존하여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모르게 암시한다. 여기서 자신의 인생을 걸 남자와의 관계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사랑이 없는 성은 생각할 수 없고 이상적인 사랑의 대상은 결혼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② 남성은 어느 면에서든 존경할 만한 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이나 경험도 많고 힘도 세고, 경제적 능력도 있고 체격도 크고 인격적인 면에서 이끌어 주는 남성이 매력적이다. 최소한 어느 하나라도 여자보다 나아서 존경할 만한 점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에서는, 여성이 사랑을 도구화하여 자기의 여성적 자질과 외모를 남성의 능력과 교환하는 식의 이해 타산적 사랑에 빠질 수 있다.
③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관계에서 친밀감과 결속이 더 중요하며 성적인 쾌감은 부차적이다. 사랑하는 남자의 성적 욕구를 거절해서 그 남자를 잃기보다는 붙잡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비록 여자 자신은 성적 욕구가 없다고 해도 자신을 통해 만족을 느끼는 상대방에 의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도 사랑하는 행위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④ 여자가 성적 호기심이나 관심을 갖거나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은 정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정숙한 여성을 원하면서 아내의 성적 답답함에 불만을 느끼는 현대 남편들의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여성을 혼란과 갈등 속에 빠트린다. 그리고 여자는 암시적이거나 반어적인 방법으로 성적 욕구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여자가 거절하는 것은 더 매력적이라고 여긴다.
⑤ 여자는 성관계를 두려워하고 성의 세계를 남성들과 같이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미혼여성은 임신에 대한 걱정으로 성관계를 두렵게 생각한다. 피임은 여자가 해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때 피해는 여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성관계를 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남녀의 성과 사랑에 대한 이중적 통념을 극복하기 위한 과제]
① 남성과 여성은 각기 다른 규범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같은 규범을 갖고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남녀의 사랑은 남성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주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성적으로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여야 한다.
② 여성들에게만 적용되는 ‘정숙’ 또는 ‘순결’의 기준이 여성들을 분리하여 불리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양자가 서로 인식하게 만들어야 한다.
③ 시장만능의 원리가 배제된 성과 사랑의 문화를 정립하여야 한다. 실용주의적 경제논리에서 본원주의적 인간논리로 성과 사랑의 문화를 바꾸어 가야 하는 것이다.
이들 세 가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앞(3.1.1)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잘못된 순결이데올로기를 혁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순결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며, 지나간 순결보다 다가오는 앞으로의 순결이 더욱 중요하며 가치롭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순결이란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잃어 가는 것이므로 매 단계 마다에서의 기간을 연장하거나 유지하려고 하는 노력이 순결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 의식의 이중적 구조 속에서 오늘도 여전히 혼전 성교의 문제라는 절실한 문제 앞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혼란과 갈등으로 방황하게 하고 있다. 그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될만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지침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성의 순결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의 충만도 가치가 있다. 어느 한 가치에만 극단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중점을 두었을 때 윤리적 기형 또는 장애인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충만의 증대에 따라 순결이 현 단계의 자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여 감으로써, 충만과 순결의 종합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혼전순결의 문제는 실존적 판단과 결단의 문제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와 더불어 혼전성교를 해야만 할 절실한 욕구나 사정이 쌍방간에 생긴다면, 먼저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의 관습 또는 외적․도덕적 요구와 잘못된 편견의 거대한 위력에 대한 인식과 거기에 대응할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인식과 각오가 이루어진다면, 몽롱한 의식으로서가 아니라 명철한 주체적 결단(자기 결정)에 의해 혼전 성관계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수에 후회하거나 죄의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후회한다면 자기부정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여야 하고 그럴 때 도덕적 자긍심이 생긴다. 자긍심을 가진다고 하여 만인 앞에 나서서 자기의 혼전성교 사실을 밝히라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실을 숨기는 것은 아니다. 침묵은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면, 사실대로 말하는 당당함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상대방에게 그것이 불쾌할 수 있는 그런 정황이라면 진솔하게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 또한 필요할 것이다.
3.2 성․사랑․결혼․이혼의 관계
3.2.1 사랑-성-결혼-이혼의 연쇄성과 비연쇄성
오늘도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서 사랑하고 섹스하고 결혼하고 이혼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다른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들에 몰두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장면들을 한꺼번에 비출 수 있는 화면이 있다면 그것은 거대한 영상 코미디가 될 것이다. 한 쪽에서는 사랑을 열망하면서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고, 그 옆에는 사랑하는 연인들이 뜨거운 키스를 나누며 섹스에 열중하고 있으며, 바로 그 앞에는 주례 앞에 선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할인점에서는 젊은 아내가 만삭의 몸으로 쇼핑을 하고 있고, 종합병원 산부인과 분만실에서는 또 다른 젊은 아내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면서 이마에 구슬땀을 흘려가며 해산을 하고 있다. 벌집 같은 구멍들로 빼곡한 고층 아파트의 몇몇 집에서는 남편의 외도 문제로 격렬하게 부부싸움을 하고 있고, 가정법원의 냉랭한 법정에서는 아직은 부부관계인 남녀가 이혼소송의 마지막 심리에 임하고 있다. 도시의 변두리에 있는 양로원에서는 부인과 사별한 남자 노인이 구석방에 앉아 침침한 눈을 비비며 라면으로 늦은 점심 끼니를 때우고 있다. 이 모든 장면이 같은 시간에 하나의 화면에 비추어지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다면 그것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코미디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아연실색하여 넋을 잃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적인 일들일 수 있다. 만약, 시간대를 한 순간이 아니라 40년간이나 50년간으로 늘린다면 그것은 한 사람이 걸어가야 할 인생의 행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사랑하는 자는 둘이 하나가 되고 싶어 안달하고 마침내 포옹과 키스를 거쳐 섹스에 이르며 종내는 결혼을 한다. 분통 같은 신혼살림을 차려놓고 아기자기하게 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가 시들해지고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어느 날 돌아서 헤어지고 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피할 수 없이 걸어가야 하는 인생의 길인가? 이제 우리는 지금부터 사랑-성-결혼-이혼이라는 고리들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연쇄인가, 아닌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사랑하게 되면 섹스하고 싶어지고, 섹스 하다보면 결혼하고 싶어지며, 결혼하여 살다보면 싫증나고 귀찮아져서 이혼하고 싶어진다. 이것은 욕구의 인과연쇄이다. 사랑 욕구가 원인이라면 섹스 욕구는 결과이고, 섹스 욕구가 원인이라면 결혼욕구가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결혼 욕구가 원인이라면 이혼 욕구는 결과가 된다. 왜냐하면 결혼 욕구가 없었더라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고,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혼 욕구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욕구의 인과연쇄는 사랑⇒섹스⇒결혼⇒이혼(이별)을 향해 나아가는 일방로 만이 있을 뿐, 그 이전이 단계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동물들은 이러한 인과연쇄의 지배를 전적으로 받는다. 동물의 경우, 욕구는 본능에서 나오고 본능대로 사는 것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동물들이 욕구의 인과연쇄에 갇혀 있다고 해서 이러한 과정을 필연적으로 걸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컷 원숭이가 암컷 원숭이에게 반해서 사랑하고 싶은 요구(원인)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암컷 원숭이가 응해주지 않는다면 섹스라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다. 그럼으로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끈질긴 노력과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도 성공하지 못하고 그 단계에서 중단되어 버리거나 좌절해 버리는 수도 있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남녀가 사랑한다고 해서 모두 섹스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편 또는 두 사람 모두가 혼전순결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사랑에서 섹스의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결혼의 단계로 넘어갈 것이며 섹스는 결혼 후에 하게 될 것이다. 혹은 사랑의 단계조차 성사시키지 못한 채 좌절할 수도 있다. 한 편은 사랑하는데 상대편 쪽에서 사랑이 생기지 않는 짝사랑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와는 달리 두 사람이 열렬하게 사랑하면서도 그 다음 단계인 섹스나 결혼의 단계로 나아가지 않고 그 단계에 머물러 버리거나, 사랑⇒섹스⇒결혼⇒이혼(이별)이라는 좌표계에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좌표계에서 사라져 버리는 경우는, 사랑하던 두 사람이 동반자살을 하거나 아니면 여행중의 교통사고로 같이 사망해 버리는 경우가 될 수 있다. 사랑의 단계에서 머물러 버리는 경우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각각 그 다음 단계인 섹스⇒결혼⇒이혼(이별)이라는 과정은 다른 상대와 치르면서 두 사람은 평생동안 그저 사랑만 하는 그러한 경우이다. 이러한 사랑을 문학에서는 ‘슬픈 사랑’이라고 하고, 도덕에서는 ‘순수하기는 하되 배우자에게는 배신감을 주는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섹스⇒결혼⇒이혼(이별)이라는 욕구의 인과연쇄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어쨌든 결혼의 단계에서 머무르는 것, 그리하여 ‘백년해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섹스⇒결혼⇒이혼(이별)이라는 욕구의 인과연쇄 과정에 이와 같이 언제든지 다른 요인들이 잠입하여 단계의 진전을 중단시키거나 좌표계에서 그들을 실종시킬 수 있다는 것은 욕구의 인과연쇄가 필연적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섹스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섹스를 했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혼했다고 해서 반드시 이혼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랑⇒섹스⇒결혼⇒이혼(이별)이라는 욕구의 인과연쇄는 필연적 인과연쇄가 아니라 우연적 인과연쇄이며, 절대적 인과연쇄가 아니라 상대적 인과연쇄이며, 그렇다고 하여 전적으로 개별적인 인과연쇄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과연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섹스⇒결혼⇒이혼(이별)의 욕구 인과연쇄에서 마지막 단계를 이혼이 아닌 이별로서만 상정시키고, 중간과정인 섹스와 결혼을 제외시키면 사랑⇒이별이라는 과정이 성립하게 된다. 바로 이것 즉, 사랑⇒이별의 연쇄는 욕구의 인과연쇄가 아니라, 자연적 섭리의 인과연쇄이며, 그것은 절대적․필연적 인과연쇄가 된다. ‘모든 사랑은 이미 이별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정 위에 인간의 자유의 여지가 열린다. 인간은 사랑⇒섹스⇒결혼⇒이혼(이별)의 각 단계마다 언제라도 자기의 의지를 개입시킬 수 있고, 그 의지 결단의 방향에 따라 그 단계에서도 정지할 수도 있고 다음 단계로 진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지하는냐, 진전하느냐 하는 바로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인 것이다. 절대적으로 부자유한 인간의 한계는 단지 그 이전의 단계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3.2.2 동서 결혼제도의 비교
‘결혼’이란 말 그대로 ‘혼인으로 묶음’을 의미한다. ‘묶음’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개체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붙어 있도록 하는 것이 묶는 일이다. 자연상태로 두면 인간의 성향도 동물과 다를 바 없이, 좋아지면 사랑하고 사랑하게 되면 섹스하고 싫증나면 돌아서 버릴 것이다. 사랑⇒섹스⇒이별이라는 자연과정에서 이별을 빼내 버리고 남녀가 사랑과 섹스를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든 인위적인 제도가 결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섹스⇒이별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별을 빼버리고 그 자리에 결혼을 끼워 넣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혼인’이란 ‘남녀간의 성적 결합관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도식은 서구적인 것이다. 동양적인 사고에는 원래 사랑이 출발점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근대 서구 문화의 전통이 만들어낸 신화이다.”20) 동양에서 결혼의 목적은 본래적으로 성적 독점권에 국한되어 있었다. “혼인의 두 가지 이유는 생식과 애정”21)과 있다고 하는 것은 서양적인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생식’은 자녀의 출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와 양육까지도 의미하는 것이므로 혼인에는 당사자 사이에 생기는 자식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수반된다.
그러므로 결혼은 곧 제도22)이다.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누가 만든 것인가? 제도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남녀간의 성적 결합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 우리는 먼저 마르크시즘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보자. 결혼제도의 발전 단계와 남녀 관계가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마르크시즘이 가장 자세히 다루고 있다. 마르크스나 엥겔스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하는 19세기말의 인종학자 모간(Morgan)은『고대사회』(Ancient Society, 1877) 2.3장에서 ‘가족개념의 발달’을 다룬다.
인간의 사회는 야생시대에서부터 야만사회, 문명사회의 순서로 발달하였다. 이들 사회에서 결혼의 발달사는 다섯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 단계가, 누이와 오빠가 결혼하고 삼촌 사이에 결혼을 하는 근친상간적 가족사회다. 물론 이 단계는 동물처럼 잡혼이 성행했을 것이다. 둘째 단계가 ‘퍼널류언(punaluan)’ 타입으로 근친결혼이 금지되는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한 부족과 다른 부족 사이에 짝을 짓는 ‘신자스미언(syndyasmian)’ 형태이다. 아내와 남편은 비교적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이것은 이런 유형의 가정이란 부족사회에 뿌리를 둔 집단결혼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그 다음 단계는 가부장적 결혼형태의 탄생인데 이런 사회는 사유재산 개념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 부족적 생활을 떠나 대가족을 이루고 가부장을 중심으로 아내와 자식들이 독립적인 공동집단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가장 발전한 단계가 일부일처주의이다. 각 개인의 이권과 개성이 존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일처제 속의 개인이란 사실 남성에게만 주어진 특권이고 여성이나 아이들은 오직 종속관계로 가담하고 있을 뿐이다.23)
민용태 교수는 “모간의 이러한 발전론적, 아니면 진화론적 결혼제도의 변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순 없다”24)고 하면서 모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모간의 설명을 남성과 여성의 입장에서 살펴볼 때 초기의 두 단계는 모계 사회적 성격을 띠면서 여성의 근친상간적 성향까지가 아직 미분별의 상태로 유지된다. 다음, 부족 단위 결혼제도는 플라톤이 제시한 집단 결혼론처럼 남녀가 동등한 이상적인 사회 단위라는 데 있다. 이때는 이미 자본주의적 일부일처주의 성향을 띠면서 주권은 완전히 남성에게로 넘어간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결혼제도가 발전을 하면서 소유권, 상속권이 존중되는 부르주아지적인 형태로 변해왔다는 이론이다. 여자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그들의 성적인 본능의 풍성함도, 자유와 권리도 완전히 남성의 속박에서 헤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된다고 주장한다.25)
민용태 교수는 “더더군다나 엥겔스의 변증법적 여성 종속론을 부르주아지 사회의 인간 소외현상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26)고 하면서, 제도나 사회의 “그 발전 단계 속에 어딘가 맥락으로 존재하는 구조 같은 것을 살펴보고 싶다”27)고 한다.
민용태 교수는 결혼제도의 역사가 일부일처제의 방향으로 진전되어 왔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세계의 결혼제도의 역사를 보면 그 효시가 어떤 형태였든지간에 모두가 일부일처제라는 결론을 향해 발달해 왔음을 볼 수 있다. 결혼의 원시적 형태는 동물과 비슷한 잡혼(promiscuity)으로 보는 것이 진화론 이후 통념이다. 그것이 모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일처다부적 성향을 갖는다. 그러나 농경사회의 정착과 함께 가부장적 권위가 대두되고 일부다처주의적 제도가 사랑 받는 것을 본다. 이런 발전 과정이 모든 인종과 사회에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사회가 한결같이 일부일처주의적 방향으로 진전되어 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28)
민용태 교수의 이러한 견해는,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징표’라고 하는 피셔의 주장과 유사하다. 피셔는 “우리는 남녀가 서로 유혹을 하고 매혹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는 결혼한다. 우리는 거의 모두가 한 번에 오직 한 사람의 배우자와만 결혼할 뿐이다. 일부일처제는 인간의 징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29)라고 말한다. 일부일처제의 진화론적 기원에 대한 피셔의 다음과 같은 설명은 더 많은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최초의 조상들은 붉은 여우들이나 미국 울새들과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인류의 요람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걸으면서 먹거리를 채집하느라 허기지게 뒤지면서, 그리고 계속 전진하면서 오래도록 살아 남았다. 열매들, 액과들, 과일들, 그리고 짐승의 고기가 초원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남성 유목민이 하나의 하렘을 유혹하기 위하여 충분한 먹이 자원을 모으거나 지킬 수는 없었다. 아니 생식하기에 알맞은 최상의 장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설령 한 남성이 한 무리의 여성들을 유혹했다 한들, 그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었겠는가? 사자들이 그의 ‘아내들’의 무리 곁으로 살금살금 접근해 오지 않을 때는, 젊은 미혼 남성들이 그의 ‘신부들’을 훔쳐 가기 위해서 등뒤에 숨어 있고는 했다. 정상적인 생활 환경 아래서는 일부다처제가 제대로 유지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남성이 한 여성과 단둘이서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그 남성이 발정기 동안의 그 여성을 다른 남성들로부터 보호해주고자 노력했으며 그녀가 아이들을 기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 이른바 일부일처제였다. ………
따라서 일자일웅의 관계가 여성들에게 ‘유일한’ 선택 ― 그리고 남성들에게는 생존에 적합한 선택 ―이 되면서 일부일처제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결혼제도의 역사가 발전하면서 일부일처제가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부일처제는 여러 가지 결혼제도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다시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혼인의 형태는 어떻게 나눌 수 있으며, 혼인의 제도는 어떻게 구분되며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혼인의 형태로서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족외혼인-족내혼인, 국내혼인-국제혼인, 약탈혼인-구매혼인-배상혼인, 중매혼인-계약혼인-자유(연애)혼인, 집단결혼-개인결혼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혼인의 제도로서는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다처다부제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결혼식의 종류로는 가정 결혼식(구식 결혼식), 신전 결혼식, 불전 결혼식, 교회 결혼식, 예식장 또는 기타 장소에서의 결혼식(신식 결혼식) 등을 들 수 있다. 혼인의 형태와 혼인의 제도, 결혼식의 종류 등은 각각 동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 섥혀 있다. 따라서 그것들은 그와 같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구분해 볼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동양과 서양의 결혼제도를 일부일처제,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 다처다부제 등과 연관시키면서 보다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30)
동양의 결혼제도는 일부다처주의와 일부일처주의가 공존한 형태이다. 서양학자들이 동양의 결혼제도를 일부다처주의라고 하는 것은 크리스티아니즘이 일부일처주의만을 인정하고 있는 사례에 비추어서 한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가부장적인 결혼제도가 대략 춘추 전국시대부터 발전돼 왔던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동양의 결혼제도는 일찍부터 오늘의 그것과 비슷하게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민용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함으로써, 동양의 결혼제도는 “여러 가지 결혼 제도의 난립 상태에서 가부장적인 시스템으로 점차 정착하기 시작했다”31)고 본다.
여성 중심의 결혼 상태도 있었고 남자 중심의 대가족 제도도 한 집단의 상류층에서는 있어 왔다. 하류층이나 중류층에서는 약탈혼이나 매매혼이 있을 수도 있었고 아무 데서나 그냥 적당히 만나 사는 수도 허다했다. …… 우리네 정월 대보름이나 정이월, 중국의 ‘중춘’에는 남녀의 만남을 말릴 수 없었다고 한는 걸 보면 옛부터 자유연애식 결혼도 많았던 모양이다. …… 즉 상류층에서는 곧 가부장제로의 결혼제도 정립이 이루어졌으나 민간에서는 아직 이런 복잡다단한 남녀관계에 의해서 가정이 이루어지곤 했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사회 각종에 걸쳐 다양한 결혼 방식이 음으로 양으로 자행되었음을 입증하기도 한다.32)
공자의 시대, 즉 기원전 5세기경부터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가 정립되었다. 부권의 강화에 따라 중국의 결혼제도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하여 일부다체제가 일반화된다.
중국과 비슷한 결혼제도와 여가를 가지면서도 좀더 일부일처제로 기울었던 것이 한국의 결혼풍습이다. 부여시대에는 일부일처제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일부다처제가 이루어졌으며, 투기하는 부인과 간음한 부인을 죽이는 습관이 있었다. 옥저에서는 여자가 10세기 되면 장차 남편이 될 소년의 집으로 데려가 그 곳에서 성장한 후에 일단 집으로 돌아와서 일정한 가격의 돈을 바치고 혼인하여 부부가 되는 매매혼에 의한 민며느리제였다. 삼한에서는 몇 쌍의 부부가 공동이 세대를 이루었다고 하는 바, 원시적인 공동생활이었음이 짐작된다.
신라와 백제에서는 일부일처제가 단연 우세했던 반면에 고구려에서는 일부다처제가 귀족층에서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유리왕과 산상왕, 중천왕에 대한 사적을 더듬으면 둘에서 넷까지의 첩을 두고 있다. 이는 물론 중국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이 꼭 영향이냐 같은 문화권 속의 우연의 일치냐 하는 점은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그것은 중국을 일부다처주의의 문화권으로 놓더라도 그것이 가난한 백성들은 불가능했을 것이 당연하듯이 한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적으로 한국이 중국보다 가난했던 나라이므로 일부다처제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대부분의 서민층은 일부일처제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33) 고구려의 혼인 풍속으로는, 신랑이 신부 집 뒤에 오두막을 짓고, 밤에 처가에 찾아가서 신부의 부모에게 유숙을 애원하여 허락을 받은 연후에 같이 거처하다가, 낳은 자식이 크면 비로소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는 모계씨족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다양한 결혼풍속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유교에 의한 윤리관에 의하여 통제를 받고 사례(四禮) 중의 하나로서 혼례가 정립되기에 이르렀다. 출가외인, 삼종지도, 칠거지악 등의 규범을 만들어 여성을 억압하고 남성 전횡의 혼인관이 강화되어 부유층에서는 축첩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 유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조선 말기 무렵부터 조혼제도가 유행하였다고 한다. 개화기를 맞아 혼인관은 새로운 사조의 영향을 받아 당사자의 선택권이 부모의 동의권에 앞서게 되었고 적극적인 연애혼인으로 바뀌어져서 사랑이 주체가 되는 서구적 혼인으로 변모하였다. 한국은 현재 법률상으로 일부일처제를 표방하고 있고 간통죄가 존치되고 있지만, 여전히 가부장적인 제도와 성윤리에 있어서 전통윤리와 성개방을 지향하는 현대윤리의 이중성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민용태 교수는 “서구의 결혼 전통에는 일부일처주의 외에 다른 제도가 없었다”34)고 하면서도, 크리스티아니즘 문화권의 결혼에 있어서 신(神)인 하느님 아버지의 개입 없이는 결혼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신이 남성이라면 한 여인은 이렇게 해서 항상 두 남자와 살아야 되는 숙명을 겪는 것이다”35)라고 한다. 그리하여 민용태 교수는, 서구의 결혼제도는 형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이며 내용적으로는 항상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이부일처제를 고집하고 있다고 지적36)하지만 광범한 동의를 얻어내고 있지는 못하는 듯 하다.
서구의 결혼제도의 근간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결혼윤리하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정액의 배출이 성교의 본질을 명확히 한다.
2) 성교의 유일한 도덕적 기능은 생식이다.
3) 생식은 자연적으로 성인의 세대에서 완성되어진다.
4) 성교에 참여하는 이들은 그들이 생식한 어떠한 생명체든지 기를 수 있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한다.
5) 간통 없는 일부일처제의 결혼이 자손을 성인이 되게끔 기르는 데 가장 좋은 것이다.
6)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
7) 남성은 결혼에 있어 여성의 지배자로서 행동한다.
8) 이혼은 그릇된 것이다.
이상과 같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결혼윤리를 민용태 교수는 규정하기를, “서구 결혼제도의 근간이 된 이상 8가지 성격을 종합하면 비생산적 성교 금지, 가부장적 일부일처제 옹호, 후손을 위한 양육조건 확립(출산준비 및 이혼금지 등을 통한)을 내세운다. 이 전통은 수세기를 두고 서구인의 결혼양식을 지배해온 기본 원칙이며 종교개혁 이후 신교에까지도 철저히 준수되어 온 법칙이다”37)라고 한다.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의 결혼윤리 중에서 페미니즘의 대두 이후 현대의 서구 사회에 아직도 효력을 가지고 있는 조항은 자녀양육조건의 확립뿐인 것 같다. 설사 전통적으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부장제의 기초 위에서 결혼제도가 확립되었고 남성우위의 사상이 지배적이었다고 하더라도, 현대에 와서는 여성해방운동이 각광 받으면서 가부장제와 남성우위의 사상은 조금씩 퇴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큰 힘을 얻어 여성해방이 가속화되리라고 본다. 그러나 명실상부한 일부일처제는 존속할 것이며, 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억압가설의 시대는 가고 복지가설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전망할 수 있을 것 같다.
3.2.3 이혼의 문제
2001년 기준 한국의 이혼율은 OECD 국가중 8위라고 한다. 당연히 미국이 1위이다. 신혼부부 3쌍 중 1쌍이 이혼하고 있는 실정인데 이는 일본, 프랑스 보다 높은 수치이다. 내용적으로는 30대 이혼과 노년(60-70대) 이혼이 주종을 이루며, 여성의 이혼요구가 더 많은 실정이라고 한다. 이혼의 원인으로는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지적된다.
[이혼율 증가의 원인]
○ 남성의 의식 변화가 너무 늦음
○ 남성의 부정과 폭력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음(아내 기준)
○ 여성의 부정도 많이 증가되고 있음
○ 성의 개방화 추세 증가 -- 반면에 의식은 폐쇄적, 보수적임
○ 여성의 자립능력 증가(옛날에는 이혼 후에 여자가 갈 곳이 없었음)
이혼의 결과로서 가장 고통받는 자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장래는 부모에 의하여 결정괴기 때문이다. 선의의 피해자로서 아이들이 받는 피해는 일생에 걸쳐서 영향을 준다. 따라서 이혼의 심각성은 더욱 증대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줄이기 위해서 제시되는 대안은 기껏 다음과 같은 대안 정도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많고 실질적인 정책대안과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여진다.38)
[이혼율 감소를 위한 대안]
○ 결혼 교육의 필요(준비 없는 결혼, 성급한 사랑 감정에 의한 결혼 지양)
○의식의 변화 필요(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같이 가는 길, 공동의 책임의식 필요)
여기서는 이혼문제에 대한 좀 더 본격적인 분석을 해 보고자 한다.
자연인류학자 피셔는 유엔의 인구통계연감을 분석하여 이혼의 양태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분류한다.39)
1) 이혼은 대개 결혼 초기 ― 결혼식을 올린 수 4년 전후 ―에 이루어지며 그 시기가 지나면서 이혼율은 점차 줄어든다.
2) 이혼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높다.
3)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한다.
이혼의 이유는 세계적으로 공통점이 있다고 하면서 피셔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40)
1) 공공연한 부정행위(특히 아내의 요란한 애정행각)
2) 불임
3) 남편 쪽의 학대
4) 배우자의 인간성과 행실
이 밖에도 격렬한 말다툼, 아내의 나쁜 성미, 질투심, 무자비한 말씨, 수다, 잔소리, 무례함, 게으름, 남편의 부양의무 불이행, 성생활의 태만이나 거부, 잦은 출타, 유머의 결핍, 텔레비전의 과다 시청, 상대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벽창호, 지나친 음주 등이 여러 가지 이혼 사유 중에는 포함되고 있다는 것이다.
피셔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관계란 그렇게 끊기 쉬운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혼 후에 겪게 되는 삼 단계의 심경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41)
제 1 단계(충격기) : 이혼 당한 사람이 처음에 느끼는 감정은 충격이다. 그 혹은 그녀는 너무 당혹해 하며 며칠, 때로는 몇 주일 동안 자기 억제의 반응을 보인다.
제 2 단계(과도기) : 이 무렵에는 시간이 유난히도 더디 간다. 일상 생활의 관습은 대부분이 소멸되고, 텅 빈 공허감으로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 아득하기만 하다. 그리하여 버림받은 사람은 남녀를 가릴 것 없이 분노, 고통, 후회, 자괴감, 절망 및 애 타는 슬픔에 휩싸이게 된다. 사람에 따라서 오히려 행복감과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즐거움은 오래 지속될 수가 없다. 일부는 알코올이나 마약, 스포츠나 친구들에게 의존하고, 다른 일부는 정신과 의사나 카운슬러, 혹은 자구책으로 독서에 의존하며, 그 밖의 대부분은 그저 침대에 누워서 눈물만 흘린다. 때로는 과도기의 단계가 한 해를 끌기도 한다. 자기 합리화의 실패나 새로운 애인으로부터의 거절과 같은 좌절감 때문에 고통을 받는 남녀는 잊어버렸던 분노에 다시 휩싸일 수 있다.
제 3 단계(회복기) : 그러나 그들은 점차 일관된 생활방식을 익힘으로써 회복 단계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들 버림받은 남녀는 차츰 새로운 자신, 어느 정도의 자부심,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관심사 및 어느 정도의 회복력을 얻게 된다. 이제 과거의 그 숨막히는 억압에서 풀려나고, 고통을 받던 남녀는 생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은 오늘도 여전히 사랑하고 결혼하며, 바람 피우고 이혼하고 재혼한다. 피셔는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모두 다 진화론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피셔의 말을 들어보자.42)
남녀의 사랑이 소중함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서로 헤어짐을 가슴 아파하는 것 역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만일 사랑이 우리 인류에게 다양성을 만들어 주기 위해 발달한 인간 두뇌의 주기적 반복과정(뇌 속에 분비되는 엠페타민과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이 만들어 내는 화학작용:필자)이라면, 낭만적인 열정은 강한 효력을 지님과 동시에 금방 사라지는 덧없는 것일 터이다.
피셔의 지적처럼 사랑⇒섹스⇒결혼⇒이혼(이별)이라는 일련의 연쇄가 자연의 섭리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연 필연성에만 지배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도덕적 당위성을 추구하고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실현하는 능동적 존재이기에, 문제를 문제로서 인식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그 해결방안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자유를 근거로 하여 성립하고 자유에 의하여 정체성이 확립되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인 것이기에, 사회제도로서의 결혼과 이혼을 자유라는 근간 위에서 처음부터 재점검함으로써 우리 시대에 맞는 대안을 모색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혼은 할만한 것이다’라거나 ‘이혼은 나쁜 것이다’라고 하는 흑백논리로 이혼을 규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혼에 이르기까지도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겠지만, 이혼 후의 삶에 대해서는 더 많은 함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혼이 가진 문제점이나 이혼 후에 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이혼이고, 이혼 후에는 예상된 어려움을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이혼 전보다 더욱 알차고 행복한 삶을 꾸려가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또한 그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둔다면 그러한 이혼은 성공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많은 조건들을 누가 대신해서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 그것은 오로지 당사자의 몫이다. 이혼이라는 일생일대의 중대한 변화가 성공으로 이를지, 더 나쁜 실패로 이를지를 예단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이혼은 가치 내재어도 아니고 반가치어도 아니라, 엄밀히 말해서 가치중립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변화라는 계기 없이는 발전이란 처음부터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1) Nicolai Hartmann, Ethik(1926), 4., unveränderte Auflage, Walter de Gruyter & Co., Berlin 1962.(이하 E.로 약기함) S. 407. 참조.
2) E. 413.
3) E. 407.
4) E. 409.
5) E. 410.
6) ebd.
7) E. 414. 참조.
8) ebd.
9) E. 415.
10) E. 413.
11) ebd.
12) ebd.
13) E. 415.
14) E. 416.
15) ebd.
16)「열린사회연구소」설문조사/96.7.19. 영남일보 31면.
17) 양해림․유성선․김철운,『성과 사랑의 철학』, 98쪽.
18) 같은 책, 98-99쪽. 참조.
19) 같은 책, 100-103쪽. 참조.
20) 민용태,『성의 문화사』, 서울:문학아카데미, 1997,(이하 민용태,『성의 문화사』로 약기함) 105쪽.
21) 필립 아리에스 외 지음, 김광현 옮김,『성과 사랑의 역사』, 서울:(주)황금가지, 1996, 144쪽.
22) 결혼의 제도(制度)와 결혼 의식(儀式)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의식이란 ‘예식을 갖추는 법식’을 의미하고, 제도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법칙’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제도는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생활을 다소의 강제성을 가지고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의식은 제도보다 덜 강제적이다. 장례를 할 때 매장을 하느냐 화장을 하느냐 하는 것은 일종의 관습적인 장례제도에 속하고, 발인제는 어떻게 지내느냐 혹은 노제는 지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장례의식에 속한다. 결혼은 제도이고 결혼식은 의식이다. 그러므로 제도에는 절차가 없지만 의식에는 절차와 순서가 있다. 따라서 제도가 먼저 있고 의식이 뒤따른다. 물론, 역으로 의식의 변화가 보편화되면 제도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말했을 때, 의식이 제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의식을 규정한다.
23) 민용태,『성의 문화사』, 140-141쪽.
24) 같은 책, 141쪽.
25) 같은 책, 같은 쪽.
26) 같은 책, 같은 쪽.
27) 같은 책, 같은 쪽.
28) 같은 책, 144쪽.
29) 헬렌 E. 피셔 지음, 김남경 옮김,『사랑의 해부학』, 서울:하서출판사, 1994,(이하 헬렌 E. 피셔 지음, 김남경 옮김,『사랑의 해부학』으로 약기함) 85쪽.
30) 이 항(3.2.2)에 있어서 이하의 논의는 민용태,『성의 문화사』, 148-178쪽을 주로 참조한 것임을 밝혀둔다.
31) 민용태,『성의 문화사』, 149쪽.
32) 같은 책, 같은 쪽.
33) 같은 책, 150-151쪽.
34) 같은 책, 152쪽.
35) 같은 책, 154쪽.
36) 이에 대해서는 같은 책 152-159쪽을 참조할 것.
37) 민용태,『성의 문화사』, 155-156쪽.
38) 이혼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한 연구로는 장(윤)필화 지음,『여성․몸․성』, 서울:도서출판 또 하나의 문화, 1999, 286-320쪽.(「결혼제도와 성」)을 참조할 것.
39) 헬렌 E. 피셔 지음, 김남경 옮김, 『사랑의 해부학』, 133-139쪽.
40) 같은 책, 124쪽.
41) 같은 책, 210-213쪽.
42) 같은 책,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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