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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통일시대의 예술 / 김주완

김주완 2001. 1. 1. 23:06

이 논문은

1997.05.31~06.1. 부산대에서 개최된

 [통일시대의 철학]이란 주제의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하였으며,

『철학연구』 제60집, 대한철학회, 1997.05.31. 293~322쪽.에 수록되었음


통일 시대의 예술


김주완(경산대학교)


1. 문제의 제한


‘통일 시대의 예술’이란 말에서 ‘통일 시대’는 분단 시대에 대비되는 용어로서 그것이 현재 남북의 2국가 체제로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가 언제가 맞이할 것으로 보는 1국가 체제로 전환하는 시대를 의미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통일 시대의 예술’이라고 했을 때 이 말이 함의하는 바는 ‘그러한 것’으로서의 통일 시대의 예술이 어떠할 것이며 또한 어떠해야 할 것인가 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통일 시대의 예술은 분단 시대의 예술과는 다르거나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으며, 분단 시대의 이질적 예술이 통일 시대에는 동질적 예술로 통일될 수 있다는 것이 암묵리에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자에 있어서는 다시 시대와 예술의 상관성에 있어서 ‘시대가 예술을 산출한다’고 하거나 또는 ‘예술은 시대의 아들’이라고 하는 시대적 상황이 예술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논리가 그 바탕에 도사리고 있으며, 후자에 있어서는 ‘통일이란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라는 유일에 대한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요구가 그 저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예술은 단순히 시대를 반영하기만 하는 시대의 아들이기만 한 것인가’하는 의문과 ‘통일은 글자 그대로 하나라야만 하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이 여기서 대두된다. 예술에는 시대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지만 이와는 달리 현실을 초월하여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전혀 별개의 세계를 창조하는 측면도 있고 이상적인 미래형을 제시하고 그 미래형을 향해 도리어 현실을 끌고 가는 측면도 있다. 그리고 통일의 문제에 있어서도 국가 체제의 통일과 예술의 통일은 반드시 그 외연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적 경향과 취향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통일될 수도 있으며 이 때의 지역은 하나의 국가 단위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의 단위일 수도 있다. 예컨대 스위스 산악 지방의 민요인 요들(Jodel)이 한 때 극동 아시아의 한 나라인 남한에서도 애창된 적이 있으며, 첨단 예술의 한 분야인 비디오 아트는 그 영향권이 가히 범세계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성과 자율성을 그 본질 특징으로 하는 예술 그 자체는 결코 통일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예술의 통일을 굳이 말한다고 하더라도 그 때의 예술의 통일은 하나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다양성이 다양성으로 상호 공존하는 여럿으로서의 통일이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 체제의 통일’과 ‘예술의 통일’이라는 말에서의 통일 개념은 외연뿐만 아니라 그 내포까지도 전혀 다른 별개의 개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또한 ‘통일 시대’를 ‘분단 시대’의 대립어라고 했을 때, 그 대립 관계는 모순 대립 관계인가 반대 대립 관계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먼저 모순 대립 관계라고 보면 분단 시대와 통일 시대가 명확히 구분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이 그와 같이 칼로 자르듯이 양단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이와는 달리 이들의 관계를 반대 대립 관계로 보면 분단 시대와 통일 시대 사이에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과도기가 자리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잇는 고리가 설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과도기를 통일 준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광의로서의 ‘통일 시대’의 개념에는 ‘통일 준비 시대’와 ‘통일 이후의 시대’라는 두 시대가 공속하게 된다. 이 논문에서는 ‘통일 시대’라는 용어를 이러한 광의의 의미로 쓰고자 한다.


‘통일 시대’란 말을 광의로 쓰고, ‘통일 시대의 예술’을 통일 준비기의 예술은 어떠해야 하며 통일 이후 시대의 예술은 어떠할 것이라는 소박한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통일 시대가 어떠한 시대인가라는 시대의 내용적인 문제이다. 통일 시대의 내용은 통일의 방법론과 연관된다. 다시 말해서 통일의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이 어떤 방법으로 통일할 것인가에 따라 통일 시대의 내용은 달라질 것이고 거기에 따라서 통일 시대의 예술 또한 달라질 것이라는 말이다.


통일의 방법에 대한 지금까지의 전망적 논의에서 나타난 견해는 대개 네 가지로 정리된다. 북한 측의 내부 갈등과 경제 악화 등으로 인한 급속한 자연 붕괴에 따라 남한 측이 북한 측을 흡수 통합해야 한다는 견해, 체제를 불문하고 무조건적 통일을 주장하는 견해1),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하여 점진적인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견해, 궁지에 몰린 북한 측의 전쟁 도발에 따른 결과적인 통일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북한 측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실행 방법은 위의 견해들 중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 정부는 ‘냉전 구조의 산물인 적대와 불신 관계를 청산하고 신뢰 속에서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발전해 가는 단계’를 ‘남북 연합’과 ‘통일 국가’로 이어질 3단계 통일 과정의 제1단계로 설정하고 있으며, 공존 공영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한 체제의 와해를 전제로 한 흡수 통일을 반대한다’고 공식문건(통일원: 「김영삼 정부의 3단계, 3기조 통일 정책」, 1993. 10)에서 밝히고 있다”2)는 점을 감안하면 무리한 통일이 급속히 진행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아직은 “통일의 방법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3)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어떤 누구도 통일의 방법을 섣불리 예단할 수가 없다. 특히 철학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철학은 미래학도 아니고 예언학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의 방식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한 당위적 천명은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바람직한 통일의 방식은 “한 쪽 체계가 다른 한 쪽을 흡수 통일하는 방식이어서는 안되며, 각각의 체계가 지닌 장단점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또 그중 서로의 장점을 결합시켜 도달해야 할 민족상을 정립해야 한다는 것”4)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이와 같이 바람직한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그 의미 내용을 가지는 ‘통일 시대’와 ‘통일 시대의 예술’이라는 말을 받아들여 사용하기로 한다.



2. 통일 논의와 민족적 동질성 회복의 문제


지금까지의 통일 논의에서 선결 문제로 대두된 것은 ‘민족적 동질성 회복’과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 회복’5)에 대한 필요의 절실성이었다. 분단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사회 체제와 환경 속에서 서로간의 교류나 접촉이 단절된 채 생활해 왔으므로 이질적 문화가 형성되고, 공통의 역사를 소유한 동일 민족이면서도 서로 다른 의식 구조와 가치관을 가지게 되어 상호 이해가 불가능하고 모든 면에서 이질감을 느끼고 있는 현실이므로 민족의 동질성 회복은 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통일된 이후 민족적 화합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며6) 민족적 동질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강경한 정치·군사적 대치에 비하여 우선 남북이 접근하기 쉬우며, 유연성을 띤 문화·예술 교류를 통하여 편협한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 선결적으로 요구된다7)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 해결하여야 할 여러 가지 난관들 중에서 가장 시급하고도 필수적인 문제가 동질성의 회복 문제이며 “민족의 동질성이란 결국 문화의 동질성을 의미한다”8)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남북 문화 교류의 일차적인 목적이 동질성의 회복에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9)는 것이다.


통일을 위한 이러한 논의와 노력들에는 찬사를 보내면서도, 우리는 여기서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개념과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 회복’이라는 개념 및 ‘민족의 동질성이란 결국 문화의 동질성을 의미한다’는 명제에 대한 철학적 검토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민족의 동질성이란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 동어반복이 아닌가?”


“민족의 동질성이란 것이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것은 ‘회복’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 또한 동어 반복이 아닌가, 그것 역시 ‘회복’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민족의 동질성은 실로 문화의 동질성을 의미하는 것인가, 민족 권역과 문화 권역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인가?”


민족의 개념을 한 마디로 규정짓기는 어렵지만 많은 민족 이론들10) 가운데서 거의 일치하고 있는 민족의 구성 요건은 ‘공동성’이다. 이 때의 ‘공동성’은 곧 공로서의 ‘동질성’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민족이라는 말이 이미 공동성을 내포하고 있고 그 공동성이 동질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민족이라는 말은 곧 동질성을 의미하게 되고 따라서 ‘민족적 동질성’이란 ‘공동의 공동’이란 의미가 되어 동어반복이 되고 마는 것이다.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이란 말 또한 마찬가지이다. ‘문화적 동질성’이 ‘민족’의 본질이 되므로 이 또한 동어 반복에 불과하다 하겠다. 따라서 ‘민족적 동질성’이나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이란 말은 설사 그것이 소박한 표현으로서의 동어반복이기는 하더라도, ‘남북이 한 민족으로서 가졌거나 또는 가져야 할 공통한 정신적 개성’을 강조하는 말로서 결국 ‘민족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리라고 보여진다.


다른 민족들과 대비되는 어떤 민족의 민족적 특성이 곧 그 민족의 ‘민족정신’인 것이며, 민족정신은 객관적 정신의 일종으로서 그 시대의 법률, 관습, 언어, 정치생활, 신앙, 도덕, 지식, 예술 등의 역사적 정신의 전 내용 영역을 포섭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정신은 언제나 시대정신과 역사적으로 겹쳐지며 이것들은 각각 일정하게 형성된 공동 정신이 된다.11) 공동 정신으로서의 민족정신인 “객관적 정신은 역사를 가지며, 일정한 시간 안에 현존을 가진다. 그것은 나타나고, 발전하고, 그리하여 역사적 스크린에서 다시 사라지고 만다.”12) 어떤 시대에 유효한 시대정신으로서, 그 시대의 모든 것을 결합시키는 공동 정신으로서 민족정신의 역사적 현존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 속에 그의 시초를 가지듯이 그의 종말을 가진다.”13) 이미 종말을 고한 민족 정신을 임의로 소생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잠자고 있는 정신이나 묻혀 있는 정신은 아직 살아 있는 정신이다. 그것은 살아 있되 잠자고 있거나 묻혀 있는 것이므로 깨우거나 파내어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정신이다.


표현상의 문제점은 위에서 이미 지적되었지만 ‘민족의 동질성’과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이란 말을 소박하게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민족의 동질성은 민족의 본질성이 아니며 문화의 동질성 또한 문화의 본질성이 아니다. 민족의 동질성이나 문화의 동질성은 역사성을 가지지만, 그것들의 본질성은 역사성을 가지지 않는다. “본질성은 역사를 갖지 않으며, 아무런 시간적 존재도 갖지 않는다. 본질성은 모든 때에 그것인 바의 것이며, 더구나 그것이 그 자체로서 무시간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14) 따라서 민족적 동질성과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은 일정한 시간 안에 역사적 현존을 가짐으로써 생성하고 소멸하게 된다. 만약 민족정신이 동질성을 상실하여 이질화되고 민족의 문화가 동질성을 상실하여 이질화되었다면 그 이전에 그가 가졌던 동질성은 소멸한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민족과 민족문화의 동질성의 <회복>이란 가능한 것인가?’ 라는 우리의 물음을 환기할 때가 되었다. ‘회복’이란 ‘달라진 것을 달라지기 이전의 상태와 같이 되도록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족적 동질성 회복’이나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 회복’이란 이미 이질화되어 버린 현실에서 이질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자는 것인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미 소멸한 동질성을 어떻게 되살린다는 말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여기에 주어진 것들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거나 새로이 만들어 내는 것이지 이미 사라져 버린 것을 되가져 오는 것이 아니다. 민족의 동질성을 말하든지 문화의 동질성을 말하든지 간에 그것들이 소멸하여 이미 이질화되었다면 결코 그것들을 회복시킬 수는 없다. 사라져 버린 민족성과 사라져 버린 문화는 지금은 없는 것이며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정신으로서 죽은 정신이기 때문이다. 다만 잠자는 민족 정신이나 민족문화가 있다면 그것을 깨울 수 있고, 그것들이 어디엔가 묻혀 있다면 우리는 다만 그것들을 캐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부분적으로나마 남과 북에 남아 있는 민족정신과 민족문화를 찾아내고 거기에다가 잠자고 있거나 묻혀 있는 민족정신과 민족문화를 깨우고 발굴하여 추가하고 그것을 강화함으로써 민족의 동질성과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뿐이다. 다시 말해서 남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동질성을 ‘새로이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민족의 동질성이란 결국 문화의 동질성을 의미한다”15)는 명제의 타당성 검토이다. 이 문제는 비교적 간단히 해결된다. 문제 해결의 핵심은, 민족과 문화는 그 권역이 일치할 수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하나의 문화권이 여러 민족에 걸쳐 형성될 수도 있고 한 민족에 한정하여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의 문화(문화의 동질성)가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문화만으로 민족이 구성되는 것(민족의 동질성)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민족의 동질성이란 결국 문화의 동질성을 의미한다”는 명제는 일면적으로만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경우에 있어서 문화의 동질화가(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추구되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은 통일 시대의 한반도에 유효한 시대정신이 될 것이고 또한 통일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민족 공동의 민족정신이 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러한 문맥 내에서의 명제의 의미내용 전달에는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 분단 시대의 예술


1) 북한의 예술 상황


북한 예술의 경향은 ‘주체 사실주의’로 집약된다. 주체 사실주의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16)를 주체 철학의 용기에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담는 북한의 독특한 그릇으로서의 ‘주체 철학’이란 무엇인가? 주체 철학은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의 원칙을 주장하는 주체 사상”17)의 철학이다. ‘주체 사상’은 북한에 있어서 ‘주체 철학’과 동일한 의미로 쓰여진다. 그것은, 사회 발전의 중심적 역할을 인간이 하고 그러한 인간의 발전에서는 사상과 지식의 발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는 그들의 입장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주체 사상이란 1950년대 중반에 제기된 이래 북한을 유지·발전시킨 기본적인 동력”18)으로서 1970년대에 김정일에 의하여 정식화되었으며 1990년대라는 변화된 현실적 상황에서는 주체 사상의 강화를 통하여 체제 유지의 방편으로 삼고 있다. 즉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한 것은 사회주의 건설을 다당제나 사회 경제적 토대의 완성 등에서 찾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곧 주체 사상에 기초하지 않음으로써 그들 국가가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좌절인 것이고, 북한은 이전부터 주체 사상에 기초했던 만큼 북한식 사회주의는 ‘필승 불패’일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는 것이다.19) 한마디로 주체 사상은, 김정일이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우리 식대로 살아 나가자!’, ‘사상도 기술도 문화도 주체의 요구대로!’ 등의 구호에서도 보여지는 바와 같이 적어도 표현상으로는 인민 대중 즉 사람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사회학 연구소의 류제근은 주체 철학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주체 철학은 ……사람과 세계의 호상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새롭게 제기하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새로운 철학적 원리를 밝힘으로써 인간이 세계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세계 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견해와 관점을 확립하였으며 세계의 본질과 그 변화 발전의 합법칙성을 인간의 운명 개척의 보편적 길과 하나로 통일시켜 명시한 새로운 철학이다.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은 인류 사회와 력사에 구현되어 주체의 사회력사관으로 구체화되며 주체의 사회력사관은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회의 본질과 그 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힘으로써 사회와의 관계에서 인간의 운명 개척의 길을 명시한다.

……사람의 집단인 사회는 사람들과 그들이 창조한 사회적 재부와 그것을 결합시키는 사회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주인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

사회가 사람, 재부, 사회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큼 사회가 발전하기 위하여서는 이 세 구성 부분이 다같이 발전하여야 하며 그러자면 자연개조사업, 인간개조사업, 사회개조사업을 다같이 밀고 나가야 한다. … …

자연개조, 인간개조, 사회개조의 사회적 운동은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인간에 의하여 일어나고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동력으로 하여 추진된다. 이것은 사회적 운동의 주체가 사람이며 사회를 발전시키고 력사를 전진시키는 사회적 운동, 력사의 주체는 인민 대중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20)


그러니까 ‘사람 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인 주체 철학은 ‘인간의 본질과 진보에 대한 새로운 리해’이며, ‘인간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본성으로 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과 ‘인간의 진보는 자연 개조, 인간 개조, 사회 개조의 통일적인 관련 속에서 이루어진다’21)는 주장으로서, 이러한 주체 철학에 바탕 하여 ‘온갖 비사회적 및 비인간적 잔재를 숙청하고 인류의 협력과 단합을 새로운 단계에로 제고해야 할 21세기의 진보 과정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인간존중, 정신수양, 정신적 부의 가치에 대한 자각, 근검절약, 집단 및 민족 의식에 대한 자각, 환경 애호와 같이 우수하고 합리적인 사상’22)을 지침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23)


이러한 주체 철학의 원리를 구현하는 예술 창작 방법이 곧 주체 사실주의이다. 김정일의 저서로 되어 있는 『주체 문학론』에서는 주체 사실주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주체 사실주의는 위대한 주체 사상의 원리를 문학예술 창작에 구현하는 과정에 형성된 우리 시대의 가장 올바른 창작방법이다. 주체 사실주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현실을 보고 그리는 창작방법이다.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방법인 주체 사실주의는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에 기초하여 인간과 생활을 보고 진실하게 그려냄으로써 문학예술로 하여금 인민 대중에게 참답게 복무할 수 있게 한다. 주체 사실주의와 선행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근본적인 차이는 사람을 어떤 견지에서 보고 그리는가 하는데 있다. 선행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서는 주로 인간을 사회적 관계의 총화로 보고 그리었다면 주체 사실주의에서는 인간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로 보고 그린다. 관점상의 이러한 차이로 하여 두 창작 방법에는 인간을 보고 그리는 데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게 된다.24)

사람, 인민 대중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와 현실, 사회와 역사를 보고 자주성을 기본 척도로 하여 전형화와 진실성의 원칙을 고수하는 여기에 주체 사실주의의 본질적 특성이 있다.25)


여기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이 자주성의 원칙이다. 주체 사실주의의 본질적 특성이 자주성을 기본 척도로 하여 사람을 전형화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창작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에 의거하면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하는 인민들은 자주성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옹호하여 투쟁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되며 지주, 자본가를 비롯한 착취자들은 자주성을 무시하고 짓밟는 반동의 전형으로 된다”26)는 것이다.27) 이와 같이 자주성을 옹호하여 투쟁하는 인간의 전형이 설정되면 다음으로 그것을 표현할 예술적 형식이 요구된다. 그러한 예술 형식은 “우리의 것”28)인 민족적 형식 가운데서 찾아진다. 주체적 예술 형식으로서 우리 것을 찾는 북한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민족적 형식 가운데서 낡고 진부한 것을 버리고 진보적이며 인민적인 것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끊임없이 발전시키면서 새 시대, 새 생활이 요구하는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여 나가는 것은 우리 당이 시종일관하게 견지하고 있는 원칙적 입장이다. 우리는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출발하여 오래 전에 이미 가극분야에서 《피바다》식 가극형식, 연극분야에서는 《성황당》식 연극형식을 창조하였으며 음악분야에서는 민족적 선율을 바탕으로 한 작곡법과 우리 식의 창법, 민족악기의 고유한 특성을 살린 연주법을 창조하였다. 미술분야에서는 조선화를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실주의 화법을 개척하고 무용분야에서도 전통적인 조선식 춤가락과 율동을 현대 미감에 맞게 발전시킨 우리식 무용형식을 창조하였다. 문학분야에서도 언어를 구사하는 데서 외래어와 한자말을 없애고 고유한 조선말을 기본으로 하여 인민이 이해하기 쉽고 늘 쓰는 생활언어를 더욱 아름답게 다듬어 쓰고 있다.29)


이상에서 미루어 보았을 때,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예술을 「사회주의적 내용과 민족적인 형식을 가진 예술」로 정의할 수 있다면, 북한의 주체 사실주의 예술은 「주체 철학에 기초한 자주적 인간의 내용과 북한식의 민족적 형식을 가진 예술」로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자주적 인간이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하는 인민 대중들을 지칭하는 것이며, 북한식의 민족적 형식이란 결국 민족 구성원 전체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정서와 감정에 맞는 형식이 아니라 오로지 인민 대중의 그것들에 맞는 형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 사실주의는 곧 주체 문학론의 기본 골격이 된다. 북한의 예술론이 이와 같이 문학에 주로 초점을 맞추게 된 이유는 “북한 노동당이 모든 예술 장르 중에서 영화 및 혁명 가극과 더불어 대중성이 강하고 인민 교양 및 선전·선동 효과가 뛰어난 장르로 문학을 중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예 정책의 기조를 형성하는 문예 이론이 가장 발달되어 있는 분야로서 여타 분야 문예 이론의 원류를 형성하고”30)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와 같이 주체 사실주의에 입각한 주체 문예 이론은 북한에 있어서 모든 예술 이론의 원류가 되며 또한 잣대가 된다. 왜냐하면 “주체적 문예 이론은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기 인민의 이익과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게 자체의 힘으로 풀어 나갈 주체 사상의 요구를 구현하여 자기 나라 인민과 자기 나라 혁명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문학, 예술을 발전시켜 나갈 방향과 방도”31)이기 때문이며, 문학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인 당의 유일 사상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수령에 의해 이룩된 혁명적 문예 전통을 전면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며 문학예술 사업에 대한 당의 영도를 확고히 보장해야 하며”32), 문학예술에서 당의 유일 사상 체계를 확립한다는 것은 “예술적 형상에 의해 당의 유일 사상인 수령의 혁명사상과 그에 기초한 당의 노선과 정책을 정확히 반영한다”33)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체 문예 이론은 “이 이론 자체가 결국은 김일성 우상화를 위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34)는 지적을 받게 된다.35)


주체 문예 이론이 현실적인 예술 창작에 적용될 때 요구되는 실천 강령으로서의 세부적인 창작 원칙에 대한 이론들로서 「종자론」「속도전 이론」「전형화 이론」「통속 예술론」「군중 예술론」「반추상주의」「체험론」「영생주의 예술론」등이 있고, 문예 이론의 차원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북한의 예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는 「혁명적 낙관주의」「혁명적 낭만주의」「혁명적 대작주의」등이 있지만36) 하나 같이 북한 사회의 유일 사상 체제와 김일성·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한 세부적 구체적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주체의 문예 이론이 유일한 예술 이론으로 존재하고 기능 하는 북한에 있어서의 현실적 예술 상황은 어떠한가? 북한에도 명목상으로는 예술의 자유가 보장된다. 개정(1992년 4월)전 북한 헌법 제60조에서는 “공민은 과학과 예술 활동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었던 바, 개정 헌법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37) 그러나 헌법상의 규정은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하며, 북한의 현실적인 예술 창작의 자유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고 있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입장에서 볼 때 문학예술의 창작의 자유란, 작가·예술인들이 사람의 자유성을 짓밟는 착취계급에 반대하여 정의의 필봉을 높이 들 수 있는 자유, 혁명과 건설의 주인인 인민 대중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역사적 위업에 복무하는 혁명적 문화 예술을 창작할 수 있는 자유이다.”38)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북한의 작가·예술인들에게 허용된 자유의 범위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혁명 원리에 국한되며 사회적 기능 역시 혁명화의 무기 이상일 수 없다”39)는 것이다.


북한의 문화예술관련 기관과 단체로는 정부 기관으로는 노동당 문화예술부, 정무원 문화예술부, 대외 문화 연락 위원회가 있고 사회단체로는 조선 문학예술 총동맹(문예총)과 문예 소조 등이 있는데 이들은 횡적·종적으로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고 창작 활동을 통제하여 당의 노선에 따르도록 강제하는 역할들을 분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문학예술사전』에 의하면 문예총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에 의하여 이룩된 혁명 문학 예술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하며 그이의 주체적인 문예 사상과 그 구현인 우리 당 문예 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40)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문예총은 노동당 문화예술부의 정책 집행기관 내지 작가·예술인들을 지도·통제·감독하기 위한 행정 기구의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국가 배급과 작품 발표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가입이 의무화되고 맹원은 공무원의 신분을 갖게 된다.41) 문예총의 산하 단체인 작가 동맹은 「창작 지도」라는 명칭의 사업을 통해 작가 개개인의 창작 생활을 검열·통제하고, 맹원의 가입·축출과 식량·의복 배급 권한을 가진다. 작가 동맹원들은 소속 작가 동맹 창작실에서 8시간 일상 근무하며 일과 종료 후에는 2시간의 사상 학습과 1일 사업총화 토론을 거치게 되어 있다.42) 문예 소조는, 여러 가지 문학예술 활동에 참가하기 위한 노동자, 농민, 인민 군대, 청년 학생들의 자원적인 대중 조직으로 문학 소조, 연극 소조, 무용 소조 등 장르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노동당의 정책 노선을 일반 인민 대중에게까지 파급, 확산시키는 유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43)


북한의 예술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혁명적 위업에 복무하는 혁명적 문화 예술’이므로 당의 정책에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다. “북한에 있어 문화 예술은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 대중에 대한 정치·사상적 세뇌의 수단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문예 정책은 당의 통치 정책에 예속된 하위 정책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으며, 정치·사상적 이데올로기가 문예 정책의 동인이자 환경으로 작용하므로 이것이 변할 때 문예 정책이 뒤따라 변하지 않을 경우 정책의 적실성에 문제가 야기된다.”44) 뿐만 아니라 북한의 예술은 “체제 유지를 위한 유일 사상적 통치 내지 정권 세습을 위한 우상화 수단으로서의 존재 의의가 더 강조”45)되며, 예술가는 당과 인민에 대한 복무가 그 근본 사명이 되고 작품 창작과 발표의 전 과정에서 확인 점검과 통제를 받게 되므로 “결국 작가 예술인들은 자유 직업인들이 아니라 공산 정권에 고용된 선전 요원으로서 존재하며, 당적 통제하에 계획적인 작품 활동에 종사”46)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따라서 체제 비판적인 작품이나 순수 예술 작품은 전혀 생산될 수 없는 환경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에 대한 실질적 확인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형편이다. 북한의 문화 예술은 한마디로 “폐쇄성과 경직성”47)으로 특징화되고 “국수주의적 성향”48)이라고 지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남한의 예술 상황


흔히 ‘남한은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 말하여진다. 남한의 예술 현장에는 잡다한 예술 조류들이 공존하고 있고 또한 대중 예술은 장르와 그 지배 영역을 넓혀 가면서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남한에는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이 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특히 남한 헌법 제22조의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 저작가·발명가·과학 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는 명문 규정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 문예 정책의 근본 목표와 실천 목표가 이상적으로 설정된다. 오양열은 남한 문예 정책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남한의 문예 정책이 개개인의 내적 욕구에 의한 미적 가치의 창조, 예술적 정서 생활을 통한 인간 삶의 질적 향상, 민족문화와 전통예술의 창조적 계승·발전 등을 근본목표로 하고, 이를 위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이상으로 하는 예술창조지원, 국민의 문화향수권 신장을 위한 고급문화의 대중화와 지역 문화시설의 확충, 유형·무형의 전통문화재 보호관리와 전승 등을 실천목표로 하고 있다.”49)


그러나 이들 목표가 그대로 수행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술은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에 밀려 언제나 그들의 시혜를 기다리는 형편이며, 국민이 스스로 예술적 정서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자신의 삶이 끊임없는 질적 향상을 하고 있다고 의식하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며, 예술가가 그의 창조 작업에 있어서 정부나 사회단체로부터 지원 받는 자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그러한 통계를 본 적도 없고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 진보적 성향의 작가는 이적물 시비에 휘말리든지 아니면 음란물 시비에 끌려들어 간혹 철퇴를 맞는 것을 우리는 보아 왔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몽롱함 속에서 더러 심약한 예술가들은 사건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위축되어 스스로 창작의 방법과 범위를 조절하고 축소시킨다. 각 지방마다 있는 지역 문화원이 얼마의 예산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며, 전통 예술의 창조적 계승·발전은 고사하고 “전통 예술의 형식들은 그 원형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변형되어 있고 부분적으로만 박제화되어 관광 상품으로 전시되고 있다.”50) 예술의 자유가 헌법상에 보장되어 있는 개방적 자유주의 체제인 남한에서 예술의 영역이 정치 영역이나 도덕의 영역과 충돌했을 때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민감한 반응과 언제나 예술의 패배로 끝나고 마는 경기의 종료를 보면서 예술의 자유가 가지는 제한적이며 유동적인 외연에 우리의 정서적 수용 기준은 그 때마다 조절되어야만 한다.


한마디로 하여, 북한의 예술이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에 종속되어 있듯이 남한의 예술은 남한식 자본주의 이념과 자본주의가 가지는 자기 질서에 예속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남한의 예술을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특징화할 수 있다.


첫째, 남한의 문화 정책은 정책 우선 순위에서 항상 밀리고 있고 그나마의 문화 정책에도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 잔존하고 있으며 예술의 자율성 신장은 방임과 통제의 일관성 없는 반복으로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정부의 예산 편성 과정에서 총예산의 몇 프로가 문화 영역에 배정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고 정부 부처의 위계 서열에서 문화 관계 부처가 어디쯤 위치하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거의 없다. 군사 독재 정권의 “권위주의 시대에는 문화 정책의 기본이 억압과 통제였다. 따라서 정권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는 관변인사들이 문화 예술계를 주도하였고 민족과 민중의 고통에 아픔을 느끼는 진정한 예술가들은 주변으로 밀리거나 심지어 박해를 받기까지 하였다.”51) 그러나 군사 독재 정권이 끝나고 문민 시대가 시작된지도 수년이나 지난 지금에 있어서도 여전히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로서 행정 만능의 습성들이 남아 있다. 각종 예술 단체들이 정부 기관으로부터 다소의 예산 지원이라도 얻어내려면 여러 차례의 방문을 하여야 하고 까다로운 절차와 복잡한 서류들에 진땀을 빼야 한다. 각종 시설을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시혜하는 자는 고자세이고 시혜 받는 자는 저자세일 수밖에 없다. 예술가가 창작의 자유를 누리고 법률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분쟁의 가까이에 가지 않고 말썽이 생길 소지가 적은 적당한 작품이나 창작하고 있어야 한다. 이적성, 금서, 판매 금지, 출판 금지, 공연 금지, 상영 금지, 전시 금지 등 예술의 금기 사항이 많은 그만큼 예술의 자유는 위축되고 있다.


둘째, 남한의 예술은 이미 상업주의의 막강한 시장경제 논리에 정복당해 버렸고, 예술가도 향수자도 어느새 생산-소비 체제의 냉엄함에 순응하는 체질로 바뀌어 버렸으며 대중문화의 맹목성만이 범람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예술의 상품화 현상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돈이 되는 예술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으로 예술의 장르들이 양분되고 돈이 되는 예술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들이 양분되어 예술의 영역 전반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됨으로써 가진 자는 교만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비굴해지는 실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광고의 조명등이 쏘는 현란한 불빛에 이끌려 돈이 되는 작품들에 대해서는 가수요와 투기 바람까지 일고 있다. 현란한 대형 광고의 프리즘과 고도로 발달한 언론과 방송이 합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단명의 우상들, 베스트 셀러 작가, 인기 예술인, 인기 연예인들에게 잠시 집중되었다가 곧 망각해 버리는 비정한 소비자의 관심과 애정, 대형의 문화 시장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비인간성뿐이다. 이러한 세태를 걱정하여 순수 예술을 고집하며 지조를 지키는 예술가가 있다면 그가 받을 보상은 배고픔을 조건으로 한 공허한 자부심과 자기만족뿐이다.


그러나 더 큰 물결로 시대를 뒤덮고 있는 대중문화의 맹목성은 어떤 대안의 모색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끝없는 과소비와 향락을 부추기며 광란의 도가니로 대중을 내몰아 절제와 자중과 사색이라는 인간의 정신 기능을 마비시킨다. 외국 유명 가수의 내한 공연장에 열광하며 운집하는 젊은 청중들은 그러한 행사에 수반되는 몇 명의 압사라는 인명 피해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선조의 사진이나 초상화 하나 걸려 있지 않은 그들의 방엔 전지 크기의 연예인 사진으로 사방의 벽이 도배되어 있다. 멀쩡한 청바지를 찢어 입고 화면에 나타난 연예인을 따라 수백만장의 청바지가 찢어지는 사태를 보면 대중문화가 창조하는 유행의 위력이 차라리 공포스럽다. 남한의 자본주의는 천민 자본주의이며, 남한의 대중문화는 그러한 천민 자본주의의 소산이다.52)


셋째, 남한의 예술 현장은 예술의 만국박람회장을 방불케 한다. 예술의 경향에 따른 분류로서 인간주의, 자연주의, 사실주의, 추상주의, 낭만주의, 실용주의, 표현주의, 형식주의, 소재주의, 문화주의, 환경주의, 비판주의, 회의주의, 향락주의, 퇴폐주의 등등을 열거할 수 있고, 예술의 성격에 따른 분류로서 순수 예술, 대중 예술, 민중 예술, 응용 예술, 상업 예술, 공연 예술, 무대 예술, 영상 예술, 행위 예술, 현장 예술 등등을 열거할 수 있다. 물론 이것들이 현재의 남한에 있는 예술의 경향과 성격을 모두 열거한 것은 아닐 것이며, 뿐만 아니라 이러한 예술의 분류는 분류 기준에 따라 수없이 나누어질 수 있고, 그러한 모든 예술들이 남한의 예술 현장에는 부분적으로나마 공존하고 있다. 여기에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서양의 첨단 사조인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수입되어 가세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세계화·국제화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수년 내에 예술 시장이 개방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각종 예술 경향들은 물론 잡다한 문화가 유입될 것으로 보이는 바 남한은 말 그대로 예술과 문화의 만국박람회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와중에서 남한 예술의 고유한 색깔이 (지금 현재도 그런 것이 있는지 의문시되지만) 과연 존속할 수 있을 것인지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고 오히려 예술의 무국적화·몰개성화가 초래되리라고 보여진다.


3) 남북한 예술에 대한 상호 몰이해성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 예술이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에 종속된 상태로, 남한의 예술이 남한식 자본주의 이념과 천민 자본주의가 전개하는 자기 질서에 예속된 상태로 상호간에 높은 벽을 쌓고 분단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각각의 예술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굳어지고 서로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어 극단적으로 이질화됨으로써 이제 서로는 상대방의 예술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물론 그 동안에 비록 단발성으로 끝나긴 했지만 제한된 범위의 문화 교류가 있었고, 빈약한 자료를 근거로 해서일망정 상대방의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도 일부 수행되어 오기는 했지만, 남북한 주민의 정서적 차원에서의 상호 이해는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서는 그 동안에 있었던 남북한 예술단의 상호 방문 공연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남북한 예술에 대한 상호 몰이해의 정도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53)


먼저 1985년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쌍방간에 이루어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의 동시 교환 시 우리측의 평양 공연에 대한 북한 측의 반응을 살펴보자. 9월 21일-22일에 평양 대극장에서의 서울 예술단 공연 중 개막 무용 <태평성대>와 현대 무용 <2000년대를 향하여>에 대한 『조선예술』에 실린 평가는 다음과 같다.


그런가 하면 민속무용 <태평성대>에서는 지난 시기 궁중의 봉건통치배들의 놀이판에서 수십 명의 기생년들이 흉물스럽운 몸짓과 몸맵시 자랑으로 간사스럽고 구역질나게 행동하는 것을 얼굴표정으로 보여주었다.

놈들은 바로 <태평성대>를 통해서 온갖 모순과 사회적 불안으로 가득차 있는 남조선사회가 이른바 <태평>하다는 것을 선전하려고 하였다. (중략)

그런가하면 양키들의 구미에 맞게 고안해 낸 <모던댄스>(<근대무용> 혹은 <신흥무용>이라는 뜻)를 바탕으로 하여 만든 <2000년대를 향하여>에서는 벌거벗은 35명의 젊은 녀자들이 나와 미국식 음악에 맞추어 엉뎅이를 휘둘러 대는 추태를 부리게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팔과 다리를 내뻗치며 광란을 부리게 하였다. (중략)

이러한 퇴폐적인 반동 무용들은 미제침략군을 상대로 하는 <쟈즈악단>과 각종 <유흥장>을 통하여 남조선에 급격히 파급되었다. (《조선예술》85년 11월호)


남한측 공연을 보고 북한 측이 남한의 전통 예술을 ‘복고주의’라고 비난하고 현대 예술은 ‘미국식’이며 ‘추잡’하고 ‘퇴폐적’이라고 비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조선의 예술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소위 <전통 음악>과 <전통 무용>이라는 딱지를 붙인 고리타분하고 시기도 명백치 않은 복고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소위 <현대 음악>과 <현대 무용>인 <미국식 모단 바레>의 재현이다.

한 무대에서 1부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연주가들이 올방자를 틀고 앉아 옛날 그대로의 삼현륙각에 맞추어 다 쉰 목소리를 가지고 판소리와 단가를 부르는가 하면 2부는 벌거벗은 남녀들이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그런 추잡한 춤과 몸을 비틀며 소리지르는 소위 현대판 류행가를 부르고 있는 극치의 란무장인 것이다. (중략)

남조선예술단의 공연은 남조선괴뢰도당들이 지난날의 <전통문화>를 마치도 <귀중히> 여기는 듯이 보이면서 복고주의 길로 나가고 있는 한편 온갖 퇴폐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음악들을 끌어들여 민족음악을 양풍화하기에 미쳐 날뛰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조선예술》86년 1월호)


다음은 북한 예술에 대한 남한 측의 평가를 살펴보자. 1985년 8월 제9차 적십자 회담 때 평양 2.8문화회관에서 공연된 북한측의 예술 중에서 칼춤을 보고 난 남한측의 한 공연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평을 하였다.54)


“암흑 속에서 불꽃이 튈 때 그들의 호전성에 전율을 느꼈다”


1970년대 후반 국토통일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북한 음악을 연구한 남한의 한 국악 학자는 북한 음악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55)


“(북한 음악은; 필자) 민족주의를 강력히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음악·악기·이론 등 모든 것이 비민족적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남한에서는 많은 국악 학자 및 국악 예술인에 의하여 국악 이론이 체계화되어 가고 있는데 반하여, 북한에서는 양악가 중의 일부가 의무적으로 민족 음악에 손을 대고 있다. 따라서 그 체계는 다분히 양악적인 해석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56)


1985년 5월 9~10일 양일간 국토통일원이 개최한 ‘통일 문화 창조 분위기 선도를 위한 통일 논단’ 심포지움에서 한만영은 북한 예술의 창작 방법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북한 예술의 창작(필자) “방법론으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금과옥조로 내세워서, 모든 대중이 알 수 있는 것이라야 하며 새로운 난해한 현대 기법은 배제되어야 한다. 예술의 대중화는 집체적인 창작 활동을 가져와서 개인 창작에서 오는 개성을 말살시킨다. 그 결과 소설에서는 아첨과 욕설이 난무하고, 시는 구호가 되었으며, 음악은 창작조·군가조·민요조만 쓰이게 되었고 무용은 전통적 우아함 대신에 러시아 춤의 영향과 함께 살벌한 전투나 기계의 흉내를 내게 되었다. 또 연극은 신파조의 매너리즘에 빠졌으며, 영화는 사회주의 도덕 교과서로서 기법도 낙후해 버렸고, 미술은 간판 그림에서 조금 나아진 듯한 것이 되고 말았다.”57)


남북한은 원래 한 민족 한 나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먼 나라가 되어 버림으로써 이와 같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와 비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체제 경쟁적 입장에서 나온 발언과 거기에다 적대적 감정까지 개입된 발언이라고 보여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북한이 서로의 예술에 대하여 내리는 서로 다른 이러한 평가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우리는 어떻게도 따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보았을 것이고 본 것을 본 대로 평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객관적 정신의 토양에서 그들이 섭취한 예술적 경향에 그들의 시력이 익숙해져 있는 것이고, 낯선 것에 대하여 낯설어 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남북한의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문제는 그들과 우리의 관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관점이 발딛고 서 있는 남북한의 객관적 정신의 극단적 이질성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질성의 극복은 서로간에 낯선 것이 서로간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데서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견과 고정관념의 껍질을 깨고 양측의 관점을 상호 이동시켜 차츰 근접하게 하고 그 중간 지점에서 마침내 하나로 만나 어우러지도록 하여야 한다.


예술의 통일은 곧 시야의 통일이며, 그것은 예술적 선호의 통일을 의미한다.



4. 통일 시대의 예술


예술에 있어서 통일 준비 시대와 통일 이후 시대의 구분은 앞절(문제의 제한)에서 언급한 바에 따랐을 때 별다른 의미가 없다. 예술의 통일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기에 통일 준비 시대의 예술이나 통일 이후 시대의 예술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예술로 통일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 준비 시대와 통일 이후의 시대라는 시대적 구분에서 의미를 가지는 통일은 결국 정치·경제·사회적 통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치·경제·사회적 통일은 전체로서의 통일이거나 그것들 각각에 있어서의 통일이거나 간에 일정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하나로 합쳐짐’으로서의 통일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시대 구분을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는 통일은 국가 통치 체제가 하나로 합쳐지는 정치적 통일일 것이다. 물론, 정치적 통일 준비 시대와 정치적 통일 이후 시대는 통치 체제와 통치 이념 및 통치자가 다를 것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이들이 가진 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예술은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통일 준비 시대의 예술’이라는 말은 ‘정치적 통일 준비 시대의 예술’이라는 의미로, 그리고 ‘통일 이후 시대의 예술’은 ‘정치적 통일 이후 시대의 예술’이라는 의미로 쓰여진다.


1) 통일 준비 시대의 예술


통일 준비 시대는 말 그대로 준비 기간이므로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 시대는 연장될 수도 단축될 수도 있다. 통일 준비 시대에 예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며 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과 북의 예술적 현실 상황은 극단적으로 이질화되어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의 예술은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58) “지금처럼 남북의 주민들이 전혀 다른 생활 감정과 예술 취향 속에서 살아가는 상황이라면 북쪽 사람들은 북쪽 예술에, 남쪽 사람들은 남쪽 예술에 박수를 보낼 것이 분명하다.”59)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다가 아무런 준비 없이 통일 시대를 맞았을 때 남북한 예술은 충돌과 반목과 갈등을 심각하게 치루어야 할 것이고 이에 따른 남북한 주민간의 상호 이질감과 적대감은 통일 속의 새로운 단절의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진통을 겪고 난 뒤에는 어떻게든 다양성의 공존으로서의 예술의 통일이 이루어지겠지만, 그러나 그 희생과 고통이 너무 클 것이기에 통일의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의 교류가 강조되어 온 지 이미 오래인 것이다.


이러한 때에 문화·예술 분야의 교류 필요성에 대한 남북 정부의 공동 인식이 이루어져 1992년 2월에 발효된 남북 기본 합의서60) 제16조에 “남과 북은 과학·기술, 교육, 문학·예술, 보건, 체육, 환경과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 보도 등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문화·예술 분야 관련 조항이 탄생되었다. 그러나 그 후 북한 핵 개발 문제, 김일성 사망, 북한 잠수함 동해안 침투 사건에 이어 최근에는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 망명 사건 등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남북 기본 합의서는 휴면 하게 되고 남북 교류는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이는 북한 쪽에도 그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문민정부 출범 당시의 의욕적이었던 남한 정부의 통일 의지가 후퇴 내지 실종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문화적 교류가 상호 연결되어 움직이는 구조를 염무웅은 연동 구조라고 명명하면서 실질적인 남북 교류를 위한 진보적인 주장을 다음과 같이 한다.


그 동안의 남북 교류가 정치적 상황에 종속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내외의 정치 군사적 상황이 얼어붙으면 그것에 연동되어 인도적, 문화적 교류마저 얼어붙는 이 연동구조의 단절, 즉 문화교류의 상대적 독자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다시 말해 남북 상호접근의 비가역적 구조화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필자의 생각에,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의 현재의 체제 자체가 좀더 비정치화, 탈군사화해야 하고 남북교류 역시 좀더 민간화해야 한다. 아마 이것은 남쪽보다 북쪽 당국이 받아들이기 더 어려운 사회의 질적 전환의 요구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쪽이든 북쪽이든 사회체제의 근본적 개혁 없이 통일을 외치는 것은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 우리가 기대하는 통일이 일방에 의한 타방의 흡수통일이 아니라면, 그리고 현실적으로 남북이 엄청나게 이질화되어 있음이 인정된다면 통일은 남북 양쪽의 기득권세력 모두에게 일정한 양보와 희생을 강제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대북 교류창구의 단일화를 명시한 남북교류 협력법은 전향적으로 수정되어야 하고, 남북교류의 정신에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국가보안법은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마땅하다.61)


연동 구조를 단절하려면 남북한의 현 정치체제가 좀더 비정치화, 탈군사화해야 하고, 남북 교류 역시 좀더 민간화해야 한다는 이러한 해법 이외에는 어떠한 대안도 없는 것이다.


통일로 가기 위한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서 예술 교류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장은 대개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된다. 하나는, 강경한 정치·군사적 대치에 비하여 유연한 예술 교류를 통하여 남북한 주민들이 상호 이해하고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됨으로써 민족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므로 무엇보다 예술 교류를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예술 작품들의 경우에는 이념성을 가질 수가 있고 따라서 체제 경쟁을 부추길 염려가 있으므로 예술 중심의 교류보다는 갈등의 소지가 적은 생활 문화 중심의 교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62)이다. 그러나 이 두 입장 모두 자세히 보면 남북한의 일대일 교류를 전제하고 있다.


남북 교류는 반드시 일대일의 교류라야만 하는가?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하여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남한이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폐쇄적이고 배타적이어야 하며 양보 없는 타산으로 일대일의 교류를 고집해야 하는가? 그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먼저 문을 열고 “좀더 관용으로 대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63)한 것이다.  적어도 예술에 있어서만 이라도 남한이 먼저 문을 열고 과감하게 조건 없이 북한을 받아 들여야 한다. 경제 성장을 자부하고, 이미 만국의 예술이 들어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세계 속의 남한이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동등한 주고받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남한이 먼저 북한의 예술을 받아들이고64) 그들의 작품을 많이 감상하고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면서 “북한의 자기 자랑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아량으로”65) 그들의 작품을 사 주고 더불어 즐겨 줌으로써 남북한 주민의 정서적 공감대는 확장될 것이고 나아가 그것은 통일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의 북한에 대한 남한의 선 개방, 이것은 통치 권력과 기득권 층의 허용 아래서만 가능한 것이다.  예술과 예술인들은 통치 권력의 시혜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남한의 예술가들은 우선, 민족의 문제와 통일의 문제를 그의 작품 속에서 가장 절실한 삶의 문제로 다룰 수 있고, 통일을 향해 우리가 기울여야 할 노력들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다. 물론 감상 일변도의 작품은 경계되어야 하겠지만 진지하고 설득력 있게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작품들이 많이 생산되고 발표될수록 국민들의 관심이 제고되고 통일 열망이 결집될 것이다. 나아가 그것이 하나의 큰 통일 의지로 성장하게 되면 통치 권력도 자기의 통치 지속을 위하여 자기네를 위협하는 정도가 덜한 부분에서부터 점차적으로 북한에 대한 남한 예술 시장의 개방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곧 여론의 힘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영원히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통일 준비 시대에 기울인 모든 노력들은 무용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통일을 기다리며 그것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에서 우리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며, 언젠가 통일은 될 것이라고 믿는 남북한의 국민적 신념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리는 없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2) 통일 이후 시대의 예술


통일의 당위성은 통일의 가치 지향성에 있다. 본래가 한 핏줄이며 한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혈연주의에서 발원하는 감상주의적 당위성이지, 합리주의적 당위성은 아니다. 통일 후의 시대가 분단 시대와 다름없거나 혹은 분단 시대보다 더 많은 모순과 질곡을 가져오는 시대라면 통일은 설정되고 추구되어야 할 목적이 아니라 피해 가야 할 장애물이 된다. 통일이 지향하는 가치는 남북 양 체제가 지닌 모순이 상호 보완되어 극복되고 남북의 잠재적 역량이 하나로 모아져 확대·실현되는 것이고, 민족 구성원 개개인의 삶이 양적 질적으로 보다 풍요로와지는것이어야 한다. 통일의 가치가 이러할 때만 통일의 당위성은 합리적으로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향하는 가치는 지향되는 가치가 아니다. 그러므로 통일 이후의 시대가 민족적 발전의 시대일 수 있는 것은 가능성으로서의 그러한 시대이지 필연성으로서의 그러한 시대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통일 후의 시대가 어떠하리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적 지평에서 예견할 수 있는 통일 이후 시대의 여러 가지 문제들의 경우의 수를 찾아내고 그것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일 뿐이다. 그것도 여기서는 우리의 논의 영역인 예술 세계에 한해서만 그러한 것이다.


통일이라는 기점을 계기로 하여 남북한 예술은 총체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예술은 통일 준비 시대라는 완충 지대를 넘어왔을 것이므로 그들의 만남이 생경한 맞부딪침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예술들은 새로운 이념(국가 이념 또는 통치 이념) 아래서 다시 적자 생존의 힘든 길을 걸어가야 할 운명이 된다. 왜냐 하면, 앞절(문제의 제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술이 아무리 미래지향적 측면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또 예술의 통일이 아무리 다양성의 통일이라고 하더라고, 정치·사회적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통일 이후 시대의 통치 체제가 어떻게 수립되고 정치·사회적 이념이 어떻게, 무엇으로 형성되느냐에 따라 그 시대의 예술 또한 거기에 맞추어 정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 이후의 시대에 수립될 통치 체제와 그 이념을 가정하여 상정하고 거기에 따른 예술의 변화를 예상하여 논의한다는 것이 그렇게 용이한 일도 아니고, 또 노력에 상응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남북한 예술이 서로 만나 어떤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일반적으로 논의하는 방법을 취하고자 한다.


통일 이후 시대의 예술의 원리는 북한의 주체 사실주의와 남한의 자본주의적 자유주의의 대립의 종합일 것이다. 이것은 헤겔의 지양66)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변증법적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지양은 새로이 형성된 통치 이념과 사회 환경이라는 지반에서 일어나는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에 있어서 주체 사실주의(주체 문예론)에서는 우상화라는 독소 부분이 제거될 것이 분명하지만, 만약 그 자리에 전통성과 민족성의 강조가 놓여지게 되면 국수주의로 경도될 염려가 있으며 이와는 반대로 그 자리에 자본주의의 장점, 예컨대 자율성, 개방성, 생산성 등이 놓여져 주체 문예론이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던 금욕주의적 절제와 희생, 규율, 책임성 등의 요소와 조화롭게 합성될 때, 그러니까 남한 예술의 자본주의적 장점과 북한 예술의 주체성이 우성결합을 하였을 때 이상적이면서도 개성적인 민족 정체성이 새로운 모습으로 발현될 것이며, 이리하여 새로이 발현될 민족 정체성은 예술의 무국적 시대의 국제무대에서 우리 예술이 종래에 가졌던 문화 종속적 입장을 벗어나 우리 것을 지켜 나가는 긍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확실히 자기 자리를 찾게 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 예술가들이 우리 민족이 가진 특수한 역사적 체험을 생생하게 살린 깊은 예술로 형상화하였을 때 세계적 수준의 예술 작품 생산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두 경우에 있어서 후자는 이상적 지양임에 틀림없으며, 전자는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래도 긍정적 지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부정적 지양도 제3의 경우로서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예술의 시장 경제 논리가 그의 강력한 소화액으로 저항력이 약한 북한 예술을 용해시켜서 점차적으로 황폐화시킴으로써 주체 문예 이론이 가지고 있던 인간중심주의를 말살하고 맹목적 세계화와 국제화를 추구하게 되어 마침내 거대한 세계 자본주의의 질서에 편입되고, 그리하여 예술의 대외 종속적 성격이 더욱 강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남한의 천민 자본주의67)가 만들어 낸 대중 예술의 맹목성이 그 위력을 발휘하여 이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되는 경우를 가장 나쁜 지양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불행하게도 지금으로 보아서는 이 방향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아니할 수 없다.


그와 같이 극단적인 경우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독일 통일의 예나 경제 중심으로 진행하는 세계적 추세로 보아 남한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어쨌든 북한으로 진입할 것이고 북한의 모든 구조를 재구성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며, 북한의 주체 사상은 우상화의 독소를 빼고 남한으로 유입되어 국적 상실 상태의 남한 정신문화에 최소한의 반성적 계기는 만들어 주리라고 보여진다. 이에 따라 예술계의 각종 단체들도 새로이 개편 정리될 것이고 예술인들도 자신에게 적합한 지역 시장을 찾아 대이동에 나서게 될 것이며 시장성 확보를 위한 예술들의 경쟁이 본격화 될 것이다. 북한 예술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만나 그 경향성의 부분적인 유사성에 의해 설사 그것이 장기적이지는 못할지 몰라도 집단 창작과 작품의 대형화 추세가 유행의 물결을 탈수도 있겠다.


논의의 끝 부분에서 우리는 다시 근원적인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통일 시대의 예술은 어떤 예술이어야 할 것인가? 가장 이상적으로 보았을 때, 그것은 다양성이 다양성으로 공존하는 예술의 통일이어야 할 것이며 또 그러한 통일 예술일 것이다. 예술적 진리에 의해 예술이 예술 그 자신에 의한 규제는 받되 부당한 외적 통제나 조종이 없는 자율성의 예술일 것이며 또 그러한 예술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남북의 잠재적 역량이 하나로 모아져 확대 실현되고 개개인의 삶이 풍요해진 가운데 높은 문화적 수준에서 민족 정체성이 발양되는 그러한 예술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럴 리는 없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예술의 다양성이 자율적인 상호작용을 통하여 하나의 이념 또는 경향으로 모아진다면 그 때 그것은 통일 시대의 예술이 아니라 통일 시대의 예술의 통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예술의 개념과 다른 의미를 가지는 예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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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상천, 「북한의 문화 정책과 남북 문화 교류의 방향」, 문예진흥원 문화 발전 연구소, 1993, 62쪽 참조.


2) 염무웅, 「남북 문화 교류 정책의 이념과 전망」, 『북한 문화 연구』, 문예진흥원 문화발전연구소, 1993, 172쪽.


3) 박상천, 위의 논문, 145쪽.


4) 박상천, 같은 논문, 34쪽.


5) ‘민족적 동질성 회복’과 ‘문화적 동질성 회복’에 대한 주장들은 다음과 같은 논문들의 기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


박상천, 「북한의 문화 정책과 남북 문화 교류의 방향」, 문예진흥원 문화발전연구소, 1993.

염무웅, 「남북 문화 교류 정책의 이념과 전망」, 『북한문화연구』 문예진흥원 문화발전연구소, 1993.

윤내현, 「민족사 인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통일예술작업」, 『객석』, 1988년 8월호, 특집--남북통일을 위한 예술활동 어떻게 할 것인가-- (남과 북, 그 뿌리의 동질성).

이상일, 「성숙한 의식과 변모, 그리고 유연성」, 같은 책, 같은 호, 같은 특집(동서독 예술교류를 통해 본 문화예술정책).

박용구, 「우열을 가리기 전 아량을 갖고 시작」, 같은 책, 같은 호, 같은 특집(이제는 대결에서 교류로).

정광열, 「타산적·우월감 따위를 버리고 접근」, 같은 책, 같은 호, 같은 특집(문화예술계 주변의 통일논의).

이상면, 「문화적 주체성의 회복,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책, 1990년 8월호, 특집 --한반도, 통일예술을 모색한다--

신대철, 「대응 논리를 지양, 순리와 합의도출」, 같은 책, 같은 호, 같은 특집(전통음악).

이강렬, 「민족의식의 극대화로 상호의존도 확인」, 같은 책, 같은 호, 같은 특집(연극).

김채현, 「자세전환과 세밀한 분석이 선결과제」, 같은 책, 같은 호, 같은 특집(무용).

오문숙, 「북한 음악 연구; 남북 문화예술 교류의 관점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원 학위논문(석사), 1995.


6) 박상천, 위의 논문, 9쪽 참조.


7) 이상일, 위의 논문 51쪽 참조.


8) 박상철, 위의 논문, 9쪽. : 오문숙, 위의 논문, 7쪽.


9) 박상천, 같은 논문, 82쪽.


10) 대체로 ‘언어·생활 양식·심리적 습관·문화·역사 등을 같이 하는 인간 집단’을 가리켜서 민족이라고 하는데, 민족의 개념에는 두 가지가 있다.


 * 고대 민족 : (인종적 개념) 한 조상에서 유래하는 순수한 혈연 단체로서의 민족.

 * 근대 민족 : (역사적 개념) 순수한 혈연 단체로서의 한 종족만이 하나의 민족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연관과 연대에 따라 이루어진 일종의 복합체로서의 민족.


근대 민족의 본질에 대한 학설은 대체로 셋으로 구분된다.


1. 객관설 : 민족의 본질을 객관적 요소 가운데서 구하는 학설.

         a) 혈연 공동체설

         b) 지연 공동체설

         c) 문화·언어 공동체설

         d) 운명 공동체설


2. 주관설 : 민족의 본질로서 주관적 요소 즉 <민족의식> 또는 <민족정신> 가운데서 구하려는 설.


3. 절충설 : 객관설과 주관설을 절충한 학설.


* 절충설에 따라 근대 민족을 정의한다면

<민족은 객관적 요소 (토지·혈연·언어·종교·정치·경제·역사적 운명의 공동)를 구비하고 있으며, 이것에 의하여 규정되는 주관적 요소(민족의식)를 다시 가지는 의식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서관, 『세계 대 백과 사전』 제8권, 1986, 304-305쪽.)


11) 니콜라이 하르트만 저, 하기락·이종후 역,『정신철학원론』,이문출판사 1990, 251-257쪽 참조.


12) 니콜라이 하르트만 저, 하기락·이종후 역, 같은 책, 261쪽.


13) 니콜라이 하르트만 저, 하기락·이종후 역, 같은 책, 263쪽.


14) 니콜라이 하르트만 저, 하기락·이종후 역, 같은 책, 261쪽.


15) 박상천, 위의 논문 9쪽. : 오문숙, 위의 논문, 7쪽.


16) 사회주의적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는 1934년 구 소련 작가 동맹이 규정한 창작 슬로건으로, 종국에는 공산권 국가의 중심적인 문예 창작 이론으로 정착된 것이다. 구 소련 국가 정치 서적 출판사가 간행한 「막스-레닌주의 미학원리」(1960)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을 「사회주의적 내용과 민족적인 형식을 가진 예술」로 정의(홍기삼, 『북한의 문예이론』, 서울:평민사, 1981, 31쪽에서 재인용)하고 있는데, 인민 대중이 선호하고 각 민족의 구미와 정서에 맞는 고유한 형식에 혁명적이고 계급적인 사회주의 이념 내용을 담는 것을 말한다.


북한의 한 문학개론서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주장을 이어받아 「전형적 환경에서 전형적인 성격을 역사적인 구체성과 혁명적 발전 과정 속에 진실하게 묘사하되 공산주의적인 긍정적 주인공을 주도적인 입장에 세워 형상화하는 창작 방법」(정석홍, 「북한의 문화 예술 정책」, 서울: 국토통일원, 1986, 9쪽에서 재인용)이라고 하여 이를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예술 창작 방법상의 요건으로는 당성, 계급성, 인민성 이라는 세 가지가 거론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북한 문예 이론에서는 계급성을 특히 노동계급성이라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당성(黨性)이란 일반적으로 사회주의적 경향성 내지 이념성, 즉 당 노선과 정책에 입각하여 작품의 소재를 선택하고 사회의 발전과 생활의 근원을 당 정책과 관련시켜 묘사하고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계급성은 가장 선진적, 계급적인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옹호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계급성으로 발현된다.(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편), 『주체 사상에 기초한 문예 이론』, 서울:인동, 1989, 100쪽.) 이러한 노동계급성은 문화의 계급투쟁에 대한 무기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에서 노동계급성을 철저히 구현하여 문학예술을 근로자들에 대한 혁명 교양, 계급 교양의 힘있는 무기로 만들자면 먼저 작가, 예술인들이 노동계급의 입장과 관점에 튼튼히 서서 생활을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편), 같은 책, 같은 쪽.)


또한 노동계급의 입장과 관점을 고수하는 것과 함께 그에 기초하여 각 계급과 계층들은 전형적 형상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노동계급을 비롯한 근로 대중의 투쟁을 그리는 것과 함께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 본성과 지주, 자본가 계급의 착취적 본질, 자본주의 제도의 반동성과 부패성을 예리하게 폭로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의 노동계급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나서는 중요한 문제이다.(과학 백과사전 출판사(편), 『문학예술 사전』, 평양:과학백과사전 출판사, 1979, 144쪽.)


인민성은 사회주의 문학예술은 공산주의를 완성하는데 이해관계를 가진 인민 대중의 이익을 반영하고 인민에게 복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니까 인민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고 이에 복무하여 인민을 공산주의적 인간으로 형상화하고 혁명과 건설에 궐기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인민성은 또한 예술의 특질, 이념적인 요소, 사회적 기능이 함께 만나는 지점이며 사회주의 문예의 본질적 부분으로서 통속 예술론이나 군중(집단) 예술론 정립의 단서(端緖)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인민이 이해하지 못하므로 해서’ 추상화는 자취를 감추고 ‘인민이 좋아하지 않으므로 해서’ 수묵화(전문 미술인들 사이에서 기량 전시 방식으로만 소개된다)는 일반에 전시되지 않으며, 예술 무용 외에 여흥 무용이라는 군중 무용이 보급되는 등 이 이론을 반영하고 있는 예술 정책의 예는 많다. --- 오양열, 「북한의 문학 예술 정책」, 『문화예술』 1992년 9월호, 63쪽 : 오문숙, 위의 논문, 36-37쪽. ---


17) 오양열, 위의 논문, 63-64쪽.


18) 박상천, 위의 논문, 42쪽.


19) 박상천, 같은 논문, 43-44쪽 참조.


20) 류제근(사회학 연구소), 「철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 숭실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국제고려학회 아세아 분회 공동 주최 국제 학술 토론회 “코리아학 연구의 현황과 전망”, 1996. 8. 19~20, 중국 북경.


21) 조호동(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체과학원 연구사, 박사), 「21세기 동북아세아의 문화 발전 전망과 인간 중심의 철학적 사고방식」. 경희대학교 아시아·태평양 지역 연구소, 중국 요녕대학교 공동주최 국제학술회의, “21세기 동아시아 사회와 문화”, 1996. 8. 2~3, 중국 심양, 참조.


22) 조호동, 같은 논문, 참조.


23) 주체사상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여러 가지가 있어 왔지만 박상천은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한다.


“주체사상은, 사상체제 그 자체를 놓고 보자면, 과학적인 인식체계를 갖춘 것이 아니라 주관적 관념론에 닿아 있으며(정용진, <유물론적 인간론과 주체사상의 인간론>,《주체사상비판 1 》, 벼리, 1989. 참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금욕주의와 자기희생에 가까운 절제 그리고 목적성, 규율, 책임성 등과 같은 여러 이질적인 특성이 특수하게 결합된 것’(F.샤브시나, <한반도의 현실과 소련의 남북한 현대사 연구>, 《역사비평》, 1990년 가을호, 65면)이다.” -- 박상천, 위의 논문, 45쪽. --


24) 김정일, 『주체문학론』, 조선 노동당 출판사, 1992. 7. 100쪽, --박상천, 위의 논문, 53-54쪽에서 재인용.--


25) 김정일, 같은 책, 106쪽, --박상천, 같은 논문 54쪽에서 재인용--


26) 김정일, 같은 책, 106쪽.


27) 박상천, 위의 논문, 54쪽.


28) 김정일, 위의 책, 76쪽, --박상천, 같은 논문, 55쪽에서 재인용.--


29) 김정일, 같은 책, 115쪽, --박상천, 같은 논문, 57쪽에서 재인용.--


30) 오양열, 위의 논문, 62쪽.


31)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편), 『주체 사상에 기초한 문예 이론』, 서울, 인동, 1989, 7쪽, --오문숙, 위의 논문, 40쪽에서 재인용.--


32)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편), 같은 책, 32쪽.


33)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편), 같은 책, 21쪽.


34) 오양열, 위의 논문, 64쪽.


35) 홍기삼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예 현상을 지적함으로써 주체 문예 이론을 비판한다.


 

첫째, 모든 문예 작품과 이론엔 김일성의 주장이나 모습을 어떤 형태로든지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대적인 요청이다. 따라서 북한 문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창작 비중은 김일성에 대한 칭송과 예찬을 위해 바쳐진다.


둘째, 김일성의 절대화, 우상화에 따라 그의 가계(家系)전체도 마찬가지로 신성한 차원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이다. 「조선 문학사」는 「…위대한 혁명적 가정(家庭)에 대한 빛나는 형상」이라는 항목을 설정하여 40면이 넘게 그 일가의 생애를 신성화, 우상화한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


셋째, 김일성주의에 철저히 귀의, 순응, 복종, 실천하는 인간상의 구현이다. 모든 인간과 사회현상은 김일성의 의지대로 이루어져야 하고 김일성과 똑같이 생각하여야 하며 「그이의 심려를 덜어 드리기 위하여」살아가야 한다는 등등의 표현은 가장 자주 쓰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홍기삼, 위의 책, 47-48쪽, --오양열, 위의 논문, 64쪽에서 재인용.--)



36) 이러한 구체적 차원의 문예 이론들에 대해서는 홍기삼, 위의 책, 오양열, 위의 논문, 오문숙, 위의 논문들에 상세히 소개되고 있음.


37) 오양열, 위의 논문, 62쪽, 참조.


38) 사회과학원, 『주체 사상에 기초한 문예 이론』, 평양: 사회과학 출판사, 1975, 42쪽.


39) 오양열, 위의 논문, 62쪽.


40) 사회과학원, 『문학예술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2, 696쪽.


41) 오양열, 위의 논문, 66쪽.


42) 오양열, 같은 논문, 67쪽.


43) 오양열, 같은 논문, 같은 쪽 참조.


44) 오양열, 같은 논문, 68쪽.


45) 오양열, 같은 논문, 같은 쪽.


46) 오양열, 같은 논문, 71쪽.


47) 박상천, 위의 논문, 145쪽.


48) 염무웅, 위의 논문, 176쪽.


49) 오양열, 위의 논문, 68쪽.


50) 염무웅, 위의 논문, 173쪽.


51) 염무웅, 같은 논문, 176쪽.


52) 문성학은 남한의 자본주의를 ‘천민 자본’으로 규정하고 남한의 대중문화를 네 가지로 특징화한 후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인간적 자본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서구 자본주의는 이러한(자본주의의 본래적 속성인; 필자) 비윤리적 경향성을 종교적 분위기로 어느 정도 중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로 들어올 때는 서구 자본주의의 성립 모태인 칼빈주의 예정론과의 관계는 단절된 채로 이식된다. 이리하여 자본주의가 그 내부에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비윤리적 경향성을 중화시켜 주는 기제를 상실하고 자본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자본 그 자체를 하나님으로 삼는 천민 자본주의가 되어 버린다.” (문성학, 『철학, 삶 그리고 윤리』, 형설 출판사, 1996, 322쪽.)


     “한국 대중문화의 특징은

     첫째로 체제정당화의 성격을 갖고 있다.

     둘째로 향락 지향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셋째로 소비 지향적 성격이 특히 강하다.

     그밖에 문화 종속적 성격이 있다.”(문성학, 같은 책, 355쪽.)


한국의 대중문화가 안고 있는 병폐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 인간형을 그 중심에 두는 자본주의, 자본중심주의적인 자본주의가 아닌 인간중심적인 자본주의, 일러서 인간적 자본주의가 필요하다.”(문성학, 같은 책, 355쪽.)


53)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박상천, 위의 논문, 66-76쪽, ‘남북 문화 교류에 대한 상호 평가에 대한 검토’를 참조할 것.


54) 노동은 「상호 신뢰성을 회복하는 연습부터」, 『객석』1990년 8월호, 특집 --한반도, 통일 예술을 모색한다/음악--, 104쪽에서 재인용. 여기서 노동은은, 남한측 공연 전문가의 이러한 평가는 “바로 냉적전 사고의 극치였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55) 노동은, 같은 논문, 같은 쪽.


56) 그러나 북한 측에서는 자신들의 음악이, 민족 전통 음악에 바탕을 두고 북한식 주체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재래 악기를 개량하고 발성법을 민족의 감미에 맞게 고치는 등 민족 음악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켜 왔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박상천, 위의 논문 76쪽; 노동은 같은 논문, 같은 쪽. 참조.)


57) 한만영, 「통일문화 시각에서 본 북한의 문화예술」, --이강렬, 위의 논문, 55쪽에서 재인용 정리.--


58) 오양열, 위의 논문, 71쪽.


59) 염무웅, 위의 논문, 174쪽.


60) 남북 기본 합의서는 남북 고위급 회담의 산물이다. 남북 고위급 회담은 쌍방 총리를 수석대표로하여 1990년 9월 서울에서 처음 열렸다.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 기본 합의서)는 제5차 회담(‘91년 12월, 서울)에서 채택되었으며 제6차 회담(’92년 2월, 평양)을 통해 발효되었다. 이 남북 기본 합의서의 ‘제3장 교류·협력’부문을 구체적으로 이행해 나가기 위한 협의 기구로서 교류·협력 분과 위원회를 구성하여 12차례에 걸친 회의와 접촉을 거친 뒤 제8차 남북 고위급 회담(‘92년 9월, 평양)에서 남북 기본 합의서의 제3장 교류·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 합의서(남북 교류·협력 부속 합의서)를 채택, 발효시켰다.(박상천, 위의 논문, 19쪽.)


61) 염무웅, 위의 논문, 175쪽.


62) 박상천, 위의 논문, 123쪽 참조.


63) 정광열, 「타산적·우월감 따위를 버리고 접근」, 『객석』, 1988년 8월호, --특집, 남북통일을 위한 예술 활동 어떻게 할 것인가--, 63쪽.


64) 이것은 독일 통일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독일의 통일 준비 과정에서, 서독은 자기네들 극단은 동독에 못 들어가면서도 동독의 극단은 서독으로 나오게 하였으며, 문화 예술 전반에 대한 동독의 서독 진출만이 아니라 자유 진영 진출마저 측면 지원함으로써 그 결과 동·서독의 인적 왕래가 잦아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상일, 위의 논문, 50쪽 참조.)


65) 박용구, 위의 논문, 62쪽.


66) 지양(止揚, Aufhebung)은 보존(Erhaltenbleiben)과 극복(Erhebensein)과 종합(Synthese)을 함의한다.


67) 주 5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