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김주완
기사입력 | 2010-03-11
도로 옆으로 우뚝 솟은 못둑길 지나
자욱이 내려앉은 찔레꽃 덤불 있었다.
마른버짐 덮어쓴 어린 연화누나
홑치마는 찔레꽃 냄새 흩뿌리며 펄럭였다.
역한 노린내가 진동하는 양계장에선
날마다 계란이 소쿠리 째 나왔지만
남김없이 매상 장으로 가져갔다.
닭의 내장을 노리는 족제비는
찔레꽃 덤불 아래서 밤을 기다렸다.
소복 입은 청상과부들 창백한 맨 얼굴로 길가에 나앉았다.
솟는 성욕 푸른 피 흘리며 꾹꾹 눌렀다.
나른한 춘궁이 느리고 느린 속도로 지나가던
1950년대, 가물가물한 5월 어느 날.
<감상> 바야흐로 꽃들의 계절, 숱한 꽃들이 저마다 색향을 뿜어대며 다투어 필 것이다. 수많은 꽃 중에서 가장 토속적인 꽃은 무엇일까? 문득 코를 찌르며 떠오르는 꽃은 바로 '찔레꽃'! 이 시에서 회상의 매체로 등장하는 '찔레꽃'은 한 많은 여인들의 운명을 묘사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쑥쑥 알 낳는 닭, 그 내장을 노리는 족제비, 푸른 정염 눌러대는 청상의 애화(哀話)를 적절히 암유(暗喩)하며 나른하게, 아니 짠하게 들려주고 있다. (김종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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