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54)>
나팔꽃 1
가파른 외줄을 타고 밤새워 올라왔는데
살이 파이도록 감고 감으며 올랐는데
뽀샤시한 얼굴 활짝 열고
이른 새벽부터 환하게 기다렸는데
부~부~ 소리 없는 나팔 불며 신이 났는데
막상 그대 오시면
펄펄 끓는 불덩이로 다가오시면
나는 배배 시들고 마네요
사랑 한번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초라한 몰골이 되어 버리네요
― 졸시, <나팔꽃 1> 전문
♧ 하늘을 향한 외줄을 타고 나팔꽃 줄기는 위로 오른다. 똑바로 뻗쳐오르지를 못하고 다른 것을 감으며 오른다. 남들이 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존이며 의탁이다. 첫새벽이 되면 꽃잎을 열고 피어난 맨살에 이슬방울들을 달고 나팔을 분다. 소리 없는 소리들이 공중으로 퍼져 나간다. 뜨거운 사랑을 기다리는 모습 같다. 순한 빛깔의 얼굴에 생기가 넘친다. 그러나 막상 해가 뜨면, 마침내 태양이 뜨거운 불덩이로 펄펄 끓기 시작하면 나팔꽃은 열린 꽃잎을 배배 꼬아 닫으며 시들고 만다. 부끄러움이나 수줍음 같은 것일까. 그러나 자기 자신은 초라한 몰골에 대한 자기혐오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기다림의 끝에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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