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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 속살을 보이다(시:구재기/낭송:김동영)

김주완 2020. 10. 6. 23:31

 

으름, 속살을 보이다

 

                                구재기

 

똑바로 몸을 돌려

맨 처음 태어난 자리 그대로

바로 바라볼 수 있으랴

이름과 모양에 마음하는 일

한지韓紙에 물이 스며들듯

아무려면 말할 것 하나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면, 온갖

작은 바람결에도 쫓기지 않는다

무얼 그리도 잇달아

간직하려고 애를 쓸 것인가

저 음흉한 담자색 꽃숭어리

찐득한 기름에 절여들 듯

본디 지니고 있는 생김이 저러하련가

꽃의 향기는

지나는 바람을 잡으려 하지만

빛 좋은 꽃숭어리,

그림자를 멀리 두려하지 않는다

그렇다, 향기 없다 하여도

꽃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깊고 그윽하더니

이리 사랑스럽고, 저리 곱살스러운

곱다란 꽃숭어리

이미 구속 되지 아니하고

한 번 더 눈을 돌리고 보면

푸른 가을하늘 밑의 시공에는

촉촉하니 혀끝으로 젖어드는

잘 익은 으름 하나

청초하고 해맑은 속살을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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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충남 서천 출생,현대시학1978년 천료. 시집모시올 사이로 바람이』『목마르다』『제일로 작은 집과 시선집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20여 권. 충남문인협회장 및 충남시인협회장 역임. 신석초문학상 등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