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48)>
풀잎 2
풀잎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가는 풀잎의 끝에서 끝으로 옮겨가며
내 어두운 귓전까지 다다른
곱고 가늘고 부드러운 음성,
질기지도 거칠지도 높지도 않게
나지막이 소곤대며 사실이냐고 했다
정말 사실이냐며
칭칭 나를 동여매던 여린 음성,
풀물 줄줄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 졸시, <풀잎 2> 전문
♧ 바람이 지날 때면 풀잎의 목소리가 들린다. 곱고 가늘고 부드러운 음성이다. 자세히 보면 소리의 이동경로도 보인다. 연기처럼 피어나 다가오는 소리의 행로가 보이는 것이다. 나지막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겁에 질려 있다. 그 소리를 한참 동안 듣다 보면 소리가 아닌 푸른 풀물이 몸속으로 흘러든다. 소리 속에 담긴 색소와 액즙의 흐름이다. 종내는 풀잎마저 슬그머니 내 속으로 들어선다. 아니다. 내가 풀 속으로 들어가 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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