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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44] 아카시아 [칠곡인터넷뉴스]

김주완 2009. 5. 16. 16:09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44)>


아카시아


아카시아 나무껍질은 할머니 손등 같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멀건 언덕에서

땅 밑으로 질기게 뿌리 벋으며

모진 생명, 바람 앞에 마주 서는 강단剛斷,


홈실할매는 나이 스물다섯에 홀로 되었다, 무오년戊午年을 휩쓴 스페인 독감으로 남편과 시어머니를 하루 사이로 먼저 보내고 4대 독자 한 살배기 외아들과 시아버지, 달랑 세 식구만 남아 쇠락하는 가문을 붙들고 버텼다, 장하게도 꼬장꼬장 일으켜 세웠다, 여든 해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시신을 염습할 때 꼬부라진 등뼈에서는 뚜둑뚜둑 소리가 났다. 결빙된 고초가 구슬처럼 부서지는 소리였다


힘이 들었는가, 무겁게 늘어져 있는 아카시아 꽃 주저리, 그러나 무성한 밀원 이루고 있다, 줄기 벌고 가지 벋는 자손들, 할머니의 결기와 노고가 저리 새하얀 꽃초롱 향초롱으로 오목조목 달린 것이다, 멀리 가는 향 자욱하게 쏟아 놓는 것이다


                             ― 졸시, <아카시아꽃 1> 전문

 


♧ 역사의 길목에는 영웅들이 있다. 영웅은 국가나 민족의 꺼져 가는 불씨를 되살려낸다. 이러한 일은 가족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집이든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이 대를 이어가는 사이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이 행한 고된 노역의 결과가 번성으로 이어진다. 나의 가족사에도 그런 분이 있다.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역사이면서 동시에 역사의 단절을 막아낸 이음매이다. 이음매는 질기고 강인하다. 끊어질 듯 이어진 이음매에는 단호한 결기가 서려 있다. 아카시아의 강인한 생명력과 풍성한 꽃주저리를 보면 할머니의 노고와 결기가 문득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