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6시집 주역 서문을 읽다[2016]

[시] 주역 서문을 읽다-경당일기** 을묘년乙卯年(1615년) 7월 병오丙午(1일) / 김주완[2015.03.24.]

김주완 2015. 3. 2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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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집]

           <2015.09.07. 동해남부시 제39호 기고>

          <2015.09.20. 경북문단 제32호 기고>

전북문학 제274호(2016.04.29.) 수록

<표현>문학 68호(2018.03.12. 기고)

      <外地> 2018 28(2018.07.31. 기고)


 

주역 서문을 읽다*

경당일기** 을묘년乙卯年(1615) 7월 병오丙午(1)

 

김주완

 

400세 조선 경당敬堂900세 송나라 정이程頤를 만나는 아침,

 

어제는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굵은 비의 혀가 만 가지 단서를 일으켜 참과 거짓의 경계를 가르니 지극히 큰 밝음이 어둠을 밀어냈다, 꿈속에서 서애 류 선생을 뵈었다

 

닭이 울어 새벽에 깨었다, 다시 잠들 수 없어 주역 서문을 읽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걸어 묻는다, 선생의 선생은 말을 콩처럼 골라서 답변을 하는데 분별이 어렵다, 하늘과 땅의 정적이 둥글게 부풀어 일어서고 있다

 

오래도록 가물다가 비가 내리니 모든 백성이 모를 옮겨 심는데 검은 머리 아이와 흰머리 늙은이가 논길에서 기뻐하며 함께 손뼉을 쳤다, 지난봄의 일이다

 

마음은 계란과 같으므로 인은 곧 생하는 성이다, 마음이 살면 길과 흉이 한 몸 안에 있어 천하의 걱정이 앞을 향하니

 

주역 서문을 삼독三讀하면 둔갑을 한다고 미욱한 자들이 믿고 있다, 싸리 울타리 너머가 숲이고 어둠이다, 아 두려운지고 깜깜한 내일이여, 대업을 내는 사람이여

 

머리를 빗지 않았다, 마음만 가지런히 빗고 족인族人의 초대에 갔다가 날이 저물어 취해서 돌아왔다, 일전의 일이다, 때는 처음부터 하나만 있지 않으니

 

주역의 말은 질문이고 대답이다, 만물은 변하기에 변하지 않음에 붙어 있다, 변화의 근본은 간단하다, 다음인 지금이 변화이다, 앞과 뒤가 없어야 불변이다

 

듣고 말하는 서책書冊은 사람이다, 소리가 없는 데서도 듣는 듯이 하며 얼굴이 없는 데서도 보는 듯이 해야 하느니, 삼천 년이 지나도 하늘에서 비 오고 해 진다, 달 뜨고 새 난다, 뿌리 있는 자만이 꽃을 피우느니, 피지 않은 꽃은 꽃이 아닌지라

 

 

* 경당일기을묘년乙卯年(1615) 7월 병오丙午(1) “주역 서문을 읽다 讀易序의 기록을 전후하여 재구성하였음.

** 경당일기: 17세기 안동지역의 대표적 산림처사이자 도학자인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1564~1633) 선생의 일기.(장흥효 지음, 국역 경당일기, 강정서 외 옮김, 장윤수 해제, 한국국학진흥원, 2012.9)


[시작 노트]

경당일기를 펼친다. 대중없이 열리는 날이 을묘년(乙卯年) 71(丙午)이다. 변환하여 양력 1615726일 일요일이다. 농경사회에 요일 개념은 없었을 터, 잔글씨로 쓰인 일기는 날짜와 일진만 적혀 있는 날도 더러 있고 두 줄이 넘는 긴 글로 기록된 날도 어쩌다 있는데 이날은 딱 세 자로 요약되어 있다. ‘독역서(讀易序)’, ‘주역 서문을 읽은날이다.

경당(敬堂)400년 전 조선의 산림처사이며 그가 읽는 주역 서문은 900년 전에 송나라 정이(程頤)가 쓴 글이다. 주역의 정신과 의의를 가장 잘 피력한 명문, 주역 서문이 있어 400세 조선 경당과 900세 송나라 정이가 만나는 아침이 열린다. 초야에 묻힌 학자의 청빈한 모습과 학구생활의 고뇌가 짐작되고 향촌사회의 생활상이 떠오른다. 밤새도록 비가 내리는데 학자는 참과 거짓의 경계를 궁구한다. 정신은 잠들지 않는다. 꿈에서도 원리와 수리를 찾아 논구하고 스승인 서애 류성룡을 만나 학문에 천착함으로써 어둠을 밀어내는 지극히 큰 밝음을 맞이한다. 앞 사람과 뒤의 사람이 서로 다른 강물에 발 담그고 선 채로 주고받는 정신으로 이어져 진리가 온축된다.

주역(周易)은 글자의 뜻과 같이 끊임없이 변화하는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는 책이다. 주역에서는 자연법칙의 네 가지 근본원리로 원(), (), (), ()을 내세운다. 이는 봄에 태어나고(春生) 여름에 성장하고(夏長) 가을에 거두어들이며(秋收) 겨울에 저장한다(冬藏)고 하는 농경사회의 계절적 순환질서가 된다. 이러한 자연법칙을 천명(天命)이라고 한다. 중용 1장에는 천명을 성이라 이른다(天命之謂性)”고 한다. 그러니까 천명의 다른 이름이 성이다. 천명인 성이 사물 속에 들어가면 물성(物性)이 되고 인간 속에 들어오면 인성(人性)이 된다. ‘사람이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고 한다(率性之謂道)’. 여기서의 도()는 도덕법칙으로서 맹자가 말한 인(), (), (), ()이다. 자연법칙인 원형이정이 사람 속에 들어와 인의예지라는 도덕법칙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은 곧 생()하는 성()이다. 인의 거처인 마음은 계란과 같다. 마음은 눌러 닦아야 한다. 마음이 살면 길()과 흉()이 한 몸 안에 있어 천하의 걱정이 앞을 향하게 되어 미욱한 지경에 들게 된다.

모든 것은 태극에서 나왔지만 태극에 붙들려 있지 않고 천변만화의 조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때는 처음부터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역의 말은 질문이고 대답이다, 만물은 변하기에 변하지 않음에 붙어 있다, 변화의 근본은 간단하다, 다음인 지금이 변화이다, 앞과 뒤가 없어야 불변이다.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 시공을 넘어선 불변의 것(가치, 본질, 수학적 법칙, 논리적 법칙)이 변화하는 시공에 붙어 현상한다. 하나가 둘인 이유이고 둘이 하나인 이유이다.

선경의 복숭아(반도:蟠桃)는 삼천 년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 삼천 년이 지나도 하늘에서 비 오고 해 지기에 가능한 일이다. 달 뜨고 새 날기에 가능한 일이다. 뿌리 있는 자만이 꽃을 피우느니, 피지 않은 꽃은 꽃이 아닌지라. 400세 경당이 900세 정이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