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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7] 선택-이연주 시인[칠곡인터넷뉴스]

김주완 2008. 8. 30. 14:10

2008-08-30 오전 9:42:10 입력 뉴스 > 문화&영화소개

‘선 택’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7)>

 

 

 

선택

 

 

 

우리는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선택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이루어진다. 시장에서 갈치를 살 것인지 고등어를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고 갈치를 사기로 했다면 어느 놈이 더 싱싱한지를 살펴서 다시 또 골라야 한다. 사 온 갈치를 가지고 조리를 할 때도 조림을 할 것인지 구이를 할 것인지 찌개를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사 온 갈치 중에서 몇 마리는 조림을 하고 몇 마리는 구이를 할 것인지도 또한 결정해야 하고 조리가 다 된 갈치를 남편의 밥상에만 올릴 것인지 시어머니의 밥상에만 올릴 것인지 아니면 온 가족의 밥상에 모두 올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니까 선택은 결정의 전제조건이지만 양자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갈치의 예는 일상적이며 작은 선택에 해당한다. 자동차나 집을 사는 것은 보다 큰 선택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배우자나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아주 큰 선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선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우리는 이것을 선택하거나 저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쉼 없이 선택하면서 살아간다. 매 순간 선택하지 않고는 삶이 이어질 수 없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선택을 반복하면서 하루가 지나간다. 한 달, 일 년, 십 년, 나아가 우리의 일생이 선택의 반복 속에서 영위된다. 살아있는 한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선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내용에 있어서는 자유이지만 선택 그 자체는 부자유이며 필수인 것이다.

 

선택을 우리가 하였으므로 그 결과도 우리가 책임을 진다. 아니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닌 것을 내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 아니 그러할 일은 애초에 없다. 많든 적든 간에 선택에 관여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진다’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개의 십자가를 자기 몫으로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중에는 가벼운 십자가도 있을 것이고 무거운 십자가도 있을 것이다. 작은 선택의 책임은 작게 돌아오고 큰 선택의 책임은 크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도덕적 행위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그가 가진 인격에 따라 짊어질 수도 있고 벗어버릴 수도 있다. 자기가 한 도덕적 행위에 대하여 높은 인격자는 통렬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낮은 인격자는 스스로 책임을 부정하면서 살아간다. 도덕적 감각이 마비된 사람은 책임질 줄도 모르고 책임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도덕적 영역을 넘어서는 삶의 보다 큰 행로에서 우리가 행한 선택의 결과는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우리를 엄습한다. 열심히 일한 농부는 풍성한 수확을 맛볼 것이고 나태한 농부는 궁핍을 겪을 수밖에 없다. ‘뿌린 만큼 거둔다’거나 ‘인과응보’라는 말이 이러한 경우를 가리킨다. 극단화 한다면 선택을 잘한 사람은 흥하고 잘못한 사람은 망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택을 할 뿐만이 아니라 선택을 당하기도 한다. 대부분 자기의 의사에 의해 선택의 장으로 나서지만 선택 당하는 것은 자기의 의사와 무관하다. 맞선을 보고 혼사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퇴짜를 맞기도 한다. 취업을 위한 면접에서 선택 당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에 불과하다. 승진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공정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하더라도 소수가 선택되고 다수는 탈락된다. 선택 당하는 것은 선택 당할 자의 의사나 소망과는 무관하게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바로 이 점에 비애가 있다. 선택 당하고 싶은데 선택 당하지 못하는 비애가 그것이다. 선택의 장에는 스스로 나갔지만 그 이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떻게도 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비애인 것이다. 이와는 달리 선택하는 자라고 하여 기쁨과 만족만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맞선에서 퇴짜를 놓는 사람은 실망감을 맛보아야 할 것이고 승진심사를 하는 심사위원은 누구를 뽑아야 할지 고뇌해야 할 것이다.

 

선택하고 선택 당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한 평생이 흘러간다. 선택의 결과가 부메랑처럼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듯이 선택 당한 결과 또한 스스로에게 되돌아온다. 선택하는 것도 선택 당하는 것도 모험이다. 그러나 그 모험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이연주 시인은 삶에 있어서 선택의 필수성과 비애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물때처럼 자욱이 안개 밀려와

새벽은 비비빅 무거운 셔터소리로 열린다

잠 덜 깬 눈 비비며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 들어서자

갑자기 흥분하는 철물들

구석구석에서 푸르르 몸을 떤다

꽝꽝 못 박고 싶은 망치

때려 주는 만큼 깊이깊이 파고들고 싶은

못 옆에서

흩어지는 허섭스레기들 칭칭 동여매고 싶은

철사가 몸을 비틀고 있다

집어 주기를, 쓰여지기를, 선택을

기다리는 저 아득한 눈길

 

 

― 이연주, <철물점의 새벽> 전문

 

이 시의 원관념은 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실존적 비애이다. 시인은 원관념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인부들’과 ‘철물들’을 보조관념으로 동원하고 있다. ‘삶에 있어서 선택의 필수성과 비애’라는 관념적 주제를 ‘인부와 철물’이라는 객관적 대상을 통해서 시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는 것이다.

 

안개가 자욱이 밀려오는 새벽 철물점의 셔터가 무겁게 올라간다. 아침을 여는 것이다. 여기서 철물점은 우리들 삶의 현장이 되고 셔터의 개방은 일과의 시작이 된다.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은 선택 당한 자이면서 동시에 선택하는 자이다. 그들은 하루의 일거리를 얻었다는 점에서 선택 당한 사람이며 그 일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 하는 점에서 선택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선택을 기다리는 철물들이 흥분하여 몸을 푸르르 떤다. 선택 당하고 싶은 열망들이 끓어오르는 것이다. 망치와 못과 철사가 선택 당하고 싶어 한다. 선택 당하여 그들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득한 눈길’로 ‘집어 주기를, 쓰여지기를,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다. 여기서 망치와 못과 철사들은 소시민의 실존이다. 이른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와 있는 인부들 쯤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그들 중 선택 당하는 자는 과연 몇이나 될까? 선택 당한 입장에서 다시 선택해야 하는 인부들은 그들이 도구들을 선택함에 있어서 면밀히 살펴보면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다시 고뇌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의 일꾼으로 발탁되지 못해 허탕 치고 돌아서야 하는 일용인부들의 비애는 어떠할까? 그들이 끌고 가야 할 하루의 십자가는 그 무게가 얼마나 될까?

 

선택의 본질을 꿰뚫어 본 시인은 연민한다. 선택 당하면서 그리고 또한 선택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적 삶을 가련하게 본다.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선택의 책임을 자신의 십자가로 짊어지고 가야 할 사람들의 삶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시인은 철물점 구석의 도구들에게도 생명을 불어 넣어 그들이 겪을 선택의 비애를 연민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바로 삶을 연민하는 자이다. 연민은 본질적으로 시인의 자기굴레이기도 하다.

 

 

<약력>

 

칠곡 왜관 출생

왜관초등(47회) / 순심중(17회)

시인(구상 선생 추천으로 1984『현대시학』등단)

철학박사 / 대구한의대 교수(현)

구상문학관 시창작교실 지도강사(현)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지도교수(현)

대한철학회장 / 한국동서철학회장/새한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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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덕 기자(cg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