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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4] 시장 골목-김옥숙 시인[칠곡인터넷뉴스]

김주완 2008. 8. 9. 14:01

2008-08-09 오전 9:09:24 입력 뉴스 > 문화&영화소개

‘시장 골목’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김주완 교수의 아침산필 (4)>

 

 

 

시장 골목

 

 


시장 골목은 역동적이다. 서민들의 삶이 있고 인정이 있다. 가게도 있고 난전도 있다. 가게는 시장 안에서 고정된 위치와 건물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상설적인 곳이며 난전은 장날에만 전을 펼치는 비상설적인 곳이다. 가게나 난전이나 대개는 같은 부류들끼리 모여 있다. 나무전, 옹기전, 사기전, 채소전, 과일전, 어물전, 소전, 포목전 등의 이름이 붙여진 곳에는 으레 같은 장사들이 줄 지어 모여 있다. 일정한 구역을 차지하는 섹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공간구분이지만 요즘 말로는 고객 중심, 효율성 추구의 공간배분이라 할 수 있다. 음식점, 자전거포, 농방 등과 같이 ~점, ~포, ~방으로 불리는 곳들은 고정된 가게를 지칭한다.


가게는 상시로 문을 열지만 제대로 된 시장 골목의 분위기는 장날이 되어야 살아난다. 장날 아침은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된다. 멀리서 가까이서 장꾼들이 속속 모여든다. 한낮이 되면 소란으로 이어지다가 파장 무렵이 되면 모두들 돌아가기 시작하고 시장 골목은 설렁해진다. 더러 술 취한 장꾼들의 주정이나 드잡이가 파장을 장식한다. 장날의 풍경은 정경마다 살갑고 아련하다. 싱싱하게 살아있는 더운 숨결이 느껴진다. 오죽했으면 건너 마을 사돈끼리 우연히 마주쳐서 해장국을 함께 먹는 날이었겠는가. 전통적인 재래시장의 장날 풍경이 그러하다. 잘 꾸며진 오늘날의 대형 마트나 백화점 같은 곳에선 맛볼 수 없는 분위기가 재래시장 골목에는 있다. 이러한 시장 골목들이 사라지고 있다. 곳곳에 들어서는 대형할인점의 위력에 고사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 가는 시장 골목,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힘들고 내면의식은 암울하다. 연약한 자를 사랑하고 소외된 곳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가 시인이다. 생래적으로 투시적 눈을 가진 시인은 그와 같이 힘들고 찌들려 있는 어두운 구석을 사랑의 눈으로 보아낸다. 난설독서회장 김옥숙 시인은 시장 골목의 명암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시장 골목 모퉁이에 작고 침침한 백금당이 있어요

시간을 떠난 시계바늘은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요

진열장 위에는 라디오 한 대가

성능 다한 자전거 마냥 끼-익 대고 있어요

어쩌다 한 번씩 죽은 생선을 입에 문 고양이가

힐끔거릴 때도 있어요

석양에 도시가 온 몸을 적실 때쯤

힘겹게 출입구가 열렸어요

툭 붉혀진 입 언저리

깊어서 힘겨워 보이는 눈

몸에선 녹슨 바람소리가 났어요

슬펐어요

길고 긴 터널을 막 빠져나온 듯한 사내가

이제 곧 히말라야를 잡으려나 봐요

한 때 최고의 시계 기능공을 꿈꾸었던 백금당 김씨

드라이버로 세상의 귀퉁이를 풀었어요

예리한 핀셋으로 카오스(chaos)를 제거하는 기술을 썼어요

팔목에서 콸콸 물소리가 나요

산맥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인가 봐요

네팔의 태양과 히말라야를 시계 속에 꼭 집어넣었나 봐요

아름다운 눈을 가져 슬픈 그

밤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꿈을 꿔요.


         ― 김옥숙, <나마스테> 전문


시장 골목 모퉁이에는 시계와 금은붙이를 팔거나 수리하는 점포인 백금당이 있다. 백금당은 크지 않고 내부가 화려하지도 않다. 폐기된 시계에서 나온 재생용 시계바늘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그 모양만을 유지하고 있다. 기능이 중단된 채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힘겹게 피동적으로 살아가는 시장 상인들의 실존일 수 있다. 진열장 위에서는 고물 라디오가 목쉰 소리를 내고 있다. ‘죽은 생선을 입에 문 고양이가’ 힐끔거리며 백금당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신선한 먹잇감을 찾는 고양이도 먹을 것이 없으면 죽은 생선이라도 훔칠 수밖에 없다. 도둑고양이가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 점포 밖도 음산하다. 화자가 도입부에서 진술하는 분위기는 이와 같이 밝지 않다. 시인은 화자를 통해서 시장 골목의 어두운 부분을 목탄화처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현대라는 시대적 상황을, 백금당은 현대 소시민들의 일터를 상징한다. ‘한 때 최고의 시계 기능공을 꿈꾸었던’ 김씨가 여기 백금당에서 일하고 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우리는 김씨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직감한다. 김씨의 꿈은 완전하고 철저하게 소멸된 것일까?


누구든 한때 꿈을 가진다. 어린 때일수록 그 꿈은 화려하고 장대하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세파에 부대끼다보면 꿈은 조각나고 마침내 마모되어 실종된다. 꿈을 온전히 이루어내는 자는 실로 많지 않다. 사람들은 능력의 한계와 환경의 구속성을 인정하면서 이룰 수 없는 꿈을 끝내 포기한 채 현실 속에 씁쓸하게 안주한다. 그러나 백금당 김씨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석양 무렵이 되면 출입문마저 힘겹게 열어야 하는 김씨는 피로에 찌들려 있다. 이러한 김씨의 ‘몸에선 녹슨 바람소리가’ 나지만 그는 시계를 고치면서 시계 속에 ‘네팔의 태양과 히말라야’를 집어넣는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은 김씨의 꿈이자 곧 시인의 꿈이기도 하다. 히말라야는 높고 푸르며 장엄하다. 지상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곳이다. 그러므로 히말라야는 꿈의 상징이다. 시계 속에 히말라야를 집어넣는 김씨의 행위는 그러니까 세상의 톱니바퀴 속에서 으깨어지는 그의 꿈을 그래도 끊임없이 다시 만드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꿈속에서만 꿈을 이루는 김씨는 ‘산맥을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를 만나 콸콸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흐름과 소통의 시원한 물소리는 팔목으로 흘러 노동의 근원에 활력을 준다.


소멸되어 가는 꿈을 다시 살려서 간직하는 자는 아름답다. 설령 그의 삶이 피로하고 혼곤하더라도 꿈을 꾸고 있는 한에 있어서 그의 눈은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그러므로 시인은 그의 영혼에 경의를 표한다. ‘나마스테’라는 시제가 이를 입증한다. ‘나마스테’는 인도의 정통 인사법으로서 합장하면서 건네는 말이다. ‘당신과 나에게 인사한다’, ‘내가 당신에게 인사한다’가 가장 정확한 직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이 함의하고 있는 본질적 의미는 '당신의 영혼에 경의를 표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꿈꾸는 노역자의 영혼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삶에 대한 외경이며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리얼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퓨전한 시적 분위기가 전반적 기조를 이루는 이 시는 회색의 도화지에서 푸른 생명이 솟구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탁월하다. 시계와 세상의 유비나 톱니바퀴와 사회적 작동 구조의 유비가 참신하다. 감정의 절제도 돋보인다. 김씨는 ‘카오스의 제거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화자의 진술을 통해서 드러나는 시인의 시각이 그러하다. 그러나 ‘카오스의 제거 기술’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라 신의 몫이다. 창조라는 측면에서 보면 시인은 물론 신적인 존재이다. 시인과 신은 버금간다. 그러나 보다 잔잔하고 담담하며 진솔한 시적 진술이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법이다. 신처럼 전지전능한 힘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자가 시인인 것이다.


칠곡군이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왜관시장의 일부 구간에 대해 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기로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 골목을 되살리는 일은 백 번 지당하다. 재래시장이 활성화됨으로써 아무쪼록 장꾼들이 다시 모이는 시장 골목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전통적 장날이 부활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시계 수리공 김씨의 ‘힘겨워 보이는 눈’에 생기가 되돌아오기를 염원해 본다.

 

 

 

 

<약력>

 

칠곡 왜관 출생

왜관초등(47회) / 순심중(17회)

시인(구상 선생 추천으로 1984『현대시학』등단)

철학박사 / 대구한의대 교수(현)

구상문학관 시창작교실 지도강사(현)

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 지도교수(현)

대한철학회장 / 한국동서철학회장/새한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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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덕 기자(cgi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