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2014.06.10. 『대구문학』 2014-여름호(통권 108호), 43쪽. 발표>
[제6시집]
술맛, 물맛 / 김주완
친구는 고량주를 마시고 나는 물을 먹는다, 술잔에 불을 붙이면 훨훨 불길이 타오르고 물 잔을 흔들면 모래톱 같은 물결이 인다, 그는 불을 마시고 나는 물결을 씹는다, 그의 입은 화구이고 나의 입은 물 먹는 데 이력이 난 물고기 입이다, 시국에 열 받는 친구의 뇌는 48도를 넘고 멀거니 하늘만 쳐다보는 나의 몸은 36.5도에 머문다, 나는 술맛을 모르고 친구는 물맛을 모른다, 친구는 내가 답답하고 나는 친구가 가련하다, 술도 물도 이념이 아니지만 이념이 이들을 지배한다, 술맛은 진보가 아니고 물맛도 보수는 아니다, 그냥 맛이다, 술맛은 술이 내는 술내 나는 맛, 물맛은 물이 내는 물내 나지 않는 맛이다. 섞인 물과 맹물이 내는 조금 다른 맛, 그러나 둘 다 혀에 착 감기는 구름이며 파도이다, 섞이지 않아야 제맛을 내는 우리는 따로따로 담겨 있다, 서로 다른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그래도 우리가 친구인 것은 외로움을 지병으로 지녔기 때문이다, 그도 나도 선택권이 없어 친구는 고량주를 마시고 나는 물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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