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시인동네 2014년 가을호(통권 34호) 52~53쪽 발표>
[제6시집]
말을 뒤집다 / 김주완
감꽃 하얗게 떨어지는 계림이용소 뒷마당, 그늘 여린 평상에서 장기를 둔다, 대진이 끝나고 이발사 김 씨가 옆으로 졸을 밀어 길을 틔운다, 기름집 박 씨는 궁을 뒤로 빼고 내성을 쌓는다, 차가 달리고 포가 날고 졸들이 한 걸음씩 전진하는데, 몰리던 김 씨가 사선으로 두 칸을 뛴다, 바람같이 말(馬)을 뒤집어 따닥 장군을 부른다, 외통수가 된다
말에는 계책이 없지만 계책이 말을 움직인다
이것저것 하겠다고 큰소리 쳐서 이장이 된 허 여사, 쓰윽 입 닦고 딴청 부린다,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쉬운 말(言) 뒤집기의 묘미, 담장 높은 집안에 들앉아 안개구름 화법을 쓰는 그녀,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빙벽 같은 원칙주의의 공허한 민낯, 사통팔달 행보가 난보(亂步)이다
말에는 계략이 없어도 계략이 말을 뒤집는다
죄 없는 사람이 엎드려 애원하고 죄인은 서서 내려다본다, 종이 주인 되듯 말(末)을 뒤집으면 본(本)이 된다, 본말이 전도되는 이상한 동네, 난세를 사는 감꽃 같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보여 주는 것만 보는 사람은 외통수를 두지 않는다, 일어설 줄 모르는 앉은뱅이 낮은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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