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제6시집]
울 / 김주완
벽도 담도 아닌
낮은 울 하나
우리 사이에 세울 수 있다면
저 집은 이 집의 울이 되고
이 집 또한 저 집의 울로 설 것인데
울타리 가운데 샘 하나 파서
같은 물 같은 날에 먹고
누렁이
싸릿대 아래 개구멍으로 드나들며
꽃고무신 이쪽으로 물어 오고
검정 고무신 저쪽으로 끌어갈 것인데
이쪽으로 늘어진 저쪽 감나무의 홍시
이쪽에서 따고
저쪽으로 넘어간 이쪽 고구마 넝쿨
저쪽에서 걷어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같은 열매, 같은 뿌리 편하게 거둘 것인데
이 집 마당에 떨어진 저 집 빨래
이 집에서 곱게 개어 놓고
저 집 마당으로 날아간 이 집 봉숭아 꽃잎
저 집 아낙의 손톱 발갛게 물들일 것인데
우리가 세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허물지 못하는
벽과 담, 저 단단한 철옹성의 경계
형제는 서로서로 울이라 했는데
하루하루
우리는 자꾸 멀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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