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6시집 주역 서문을 읽다[2016]

[시] 울 / 김주완 [2014.02.25.]

김주완 2014. 2. 28. 23:00

[시]

 

[6시집]


   울 / 김주완

 

벽도 담도 아닌

낮은 울 하나

우리 사이에 세울 수 있다면

저 집은 이 집의 울이 되고

이 집 또한 저 집의 울로 설 것인데

 

울타리 가운데 샘 하나 파서

같은 물 같은 날에 먹고

누렁이

싸릿대 아래 개구멍으로 드나들며

꽃고무신 이쪽으로 물어 오고

검정 고무신 저쪽으로 끌어갈 것인데

 

이쪽으로 늘어진 저쪽 감나무의 홍시

이쪽에서 따고

저쪽으로 넘어간 이쪽 고구마 넝쿨

저쪽에서 걷어

네 것 내 것 가리지 않고

같은 열매, 같은 뿌리 편하게 거둘 것인데

 

이 집 마당에 떨어진 저 집 빨래

이 집에서 곱게 개어 놓고

저 집 마당으로 날아간 이 집 봉숭아 꽃잎

저 집 아낙의 손톱 발갛게 물들일 것인데

 

우리가 세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허물지 못하는

벽과 담, 저 단단한 철옹성의 경계

 

형제는 서로서로 울이라 했는데

하루하루

우리는 자꾸 멀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