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6시집 주역 서문을 읽다[2016]

[시] 겨울 깊은 밤 1 / 김주완 [2013.12.31.]

김주완 2014. 1. 9. 16:20

 

[시]

[제6시집]

[2016.10.15. 청송문학 24집 기고]

 

겨울 깊은 밤 1 / 김주완

 

 

지리산 반달가슴곰,

 

 

지난여름, 남자 2호와 여자 1호가 숲 속 깊이 들어갔다, 발신기가 보내오는 신호는 눈밭의 토끼눈처럼 빨간 점으로, 나란히 좌표계를 이동하였다, 파상형의 행로가 모니터에 출렁거렸다, 종복원기술원에서는 푸른 그늘 아래 분홍빛 짝짓기를 확신했다, 땡볕 내리쬐는 번식기라

 

 

여자 1호가 겨울잠을 잔다, 억새풀로 은폐된 바위 굴에 누가 자꾸 하얀 담요를 덮어 주는 겨울, 깊은 밤, 잠자는 여자 1호가 자면서 두어 마리 새끼를 낳는다, 이백 그램이면 어른 쥐만 한 크기도 못 되지, 어미는 겨우내 잠을 자고 새끼는 깜깜한 품에서 어미젖을 빠는데, 그렇지, 먹는 것이 없이도 어미는 젖을 내주고 어둠 속에서도 새끼는 젖을 찾을 줄 알지

 

 

산마루를 내달리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툭툭 부러지고 산이 통째로 찢어지는 소리를 낸다, 동굴 앞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롭게 날선 겨울 깊은 밤, 폭설이 퍼붓고 계곡이 쭈빗쭈빗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도 여자 1호가 깔고 누운 가랑잎에는 온기가 있다, 새끼를 품은 세상의 어미는 방어막을 가지는 법, 추위와 바람과 어둠을 막는 치마폭을 두르는 법

 

 

늙은 할미가 치성을 드리는 사월이 오면 사 킬로그램이 된 반달가슴곰 새끼가 어미를 따라 기어나올 것이다, 깊은 겨울밤 먹빛 물이 들며 자란, 몽실몽실한 이른 봄을 만날 것이다, 작은 앞발을 치켜들고 불쑥 일어서는 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