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6시집 주역 서문을 읽다[2016]

[시] 겨울 갈대를 설시하다 / 김주완 [2013.12.10.]

김주완 2013. 12. 11. 08:06

(2014.09.26.까지 낙강시제 2014 낙동강기고)

<계간 한국시학 2014년 겨울호(2014.12.01.) 115쪽 발표>

[제6시집]

 

   겨울 갈대를 설시하다 / 김주완

 

 

청둥오리가 와서 몸을 덥히고 갔다

스스로 열을 내지 못하는

마른 몸에서 온기를 가져가는 것은 절도가 아니다

캄챠카반도의 냉기를 푸득푸득 털어놓는

반짝이는 깃털에서 바스라진 극지의 별들이 은행알처럼 떨어졌다

아득한 현기증, 현기증

얼음장에 묶인 정강이가 산만한 갈등을 붙들어 주지만

바람을 만난 하얀 머릿결은 끊임없이 나부꼈다

아직도 남은 내일이 있는지 못난 미련이 흔들렸다

하염없는 설렘을 꿈이라 하자

꿈은 죽어서도 춤추는 법이지, 어지럽게

마른 몸에 들어와 체온을 덥히는 새들 탓이지

생명이 빠져나간 허공은 창백한 기억의 구석방이야

바람을 유폐시키면 굳은 살, 굳어 떨리는 마디가 생기지

깜깜한 침묵의 절벽이 마주 서는 거야

겨울도 한겨울 부서지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흔들리는 일 뿐이라,

싱싱했던 어제는 무사히 가출했다, 지금껏 집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수직으로 쌓은 블록처럼 빈 집, 우두둑거리는 관절을 어쩌지 못해

흔들리며 한 생을 작별하는

겨울 갈대는 그래서 무죄이다

얼어붙은 하늘에 낡은 추파를 날리며 유영하는

하얗게 여윈 손길의 애무는 무죄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