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머리 빗는 날 / 김주완
올과 올 사이에 남루한 그늘을 숨기는 거야
강쇠바람 돌풍으로 지나간 땡감나무 밭 비질하듯
세 갈래를 하나로 엮어 동아줄처럼 땋는 것은 안 돼
대롱대롱 댕기치레도 하는 것이 아니야
풀어 헤쳐야 해, 빗는 것이 곧 푸는 것이거든
얽히고 설킨 이승을 푸는 거야
영결종천은 전쟁이잖아
풀밭에 앉은 하얀 나비에 손대는 것은 금기야, 나비가 날면 그늘이 새어 나가거든, 결기가 무너지거든
어젯밤의 둑마루 길엔 겨울바람이 몰려와 마른 풀숲을 밤새 헤적여 놓았다 강물에 감은 보랏빛 머릿결 반짝이던 청둥오리가 무겁게 울었다 중천엔 누가 달을 갉아먹고 있는데 기슭의 어둠, 굵은 웨이브가 물결무늬로 출렁였다 가로등 불 꺼져 있었다
염습실 스테인리스 침상에 누워 있는 남자, 남이면서 나였던 사람, 마른 자작나무처럼 하얀 얼굴을 수석 염사가 씻기고 성긴 빗으로 머리를 빗긴다 꼬장꼬장했던 한 생의 사이사이 헝클어졌던 날들이 가지런히 눕는다 댕기머리물떼새 곧은 장식깃이 뒤로 눕자 멱목과 과두로 얼굴을 덮어 싼다 어느새 사륵사륵 염포 동여 묶는 소리, 한 순간에 통과하는 지근거리의 아득한 단절, 무심한 남자는 입관되고 나는 망각되었다 귓전으로 정체 모를 소리들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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