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적요의 빛깔 1 / 김주완
고요는 하얗고 쓸쓸함은 잿빛이라 생각했다
갈대숲이 제 자리에 있다 거기 그렇게 있다 햇살을 헤집고 날아오르는 물새 한 마리 푸른 하늘에 투명한 아지랑이 한 줌 빛살 가루로 뿌리는데 수양버들 가지 끝이 잠시 휘어지며 허공을 받쳐 든다 개울의 여울목엔 하얀 물살이 내달리지만 풍만한 품새를 풀지 않는다 물소리에 묻어 있는 고요의 빛깔이 허공처럼 쓸쓸하다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한낮의 여름 답답하게 길다 물위를 달리는 소금쟁이 떼도 그 답답 걷어가지 못한다 쌀알 만 한 풀꽃이 사방으로 피어 분주한 생의 한 가운데 아무도 딴전을 피우지 않는데 들판 끝에 쓸쓸하게 나앉은 사람만 외로이 고요를 본다
빛깔과 빛깔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에서 홀로 돌아앉은
적요의 빛깔은 버려진 자의 탈색, 혹은 텅 빈 무색이다
시간이 정지한 지대에서 말없이 바라보는 허공의 빛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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