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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해동문학) / 김주완

김주완 2012. 3. 30. 12:00

詩作노트(해동문학) / 김주완


오랫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 1994년에 제3시집 『엘리베이터 안의 20초』를 출간한 후 아직까지 새 시집을 못 내었으니 거의 절필하다시피 한 셈이 된다. 그동안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강의와 논문 집필, 전공서적 출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학회 일은 물론 대학의  여러 행정보직을 맡아 시간을 소진해 버린 것이다. 2007년부터 고향인 경북 칠곡 왜관에 있는 구상문학관에서 시 창작 강좌를 맡으면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매주 수강생들에게 부과하는 습작 시제를 가지고 나 또한 배우면서 쓰고 있는 것이다. 2009년에 퇴직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거의 시에만 전념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편을 쓸 때도 있고 십여 편을 쓸 때도 있다. 덕분에 지금은 500여 편의 시를 재고로 가지고 있다. 시집 여섯, 일곱 권은 족히 될 분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집은 아직 못 내고 있다. 기획출판은 해 주려는 데가 없고 자비 출판은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시보다 시인의 자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세속의 명리에 연연하지 않고 염치와 도리를 알면서 사는 일, 일반인들이 시인에게 기대하고 있는 바와 같이 맑고 고결한 정신을 지켜가는 삶을 고민한다. 세련된 시를 쓰는 것에 못지않게 다른 문인들을 욕되게 하지 않고 문단을 오염시키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시적 자존은 작품과 삶이 함께 견지해 줄 때 유지된다. 속물이나 사이비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