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시] 불길 / 김주완 [2011.12.20.]

김주완 2011. 12. 20. 18:16


 

 [월간 한국시 2012.3월호(통권275호) 43쪽 발표]

 

 

[시]


  불길 / 김주완


사루비아꽃처럼

타오를 수 있을 때 타올라라

살아있으니까 불타는 것이다

마당에서도 훨훨 타오르고

부엌에서도 화르륵 타올라라

밤의 상수리나무 밑에서도 불길은 인다

한적한 도로변 자동차 안에서도

불길 반짝 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불똥이 튀어 올라 허공을 나르면 고추잠자리가 된다

하늘 높이 올라 머무는 가장 가벼운 눈물이 된다

하느님은 자상하시다

너무 거센 불길이 일면 물을 뿌리시는 하느님

숨 돌릴 틈새가 세상에는 있다

불타다 지치면 해바라기처럼 고개 숙이면 된다

타오를 수 있을 때 타올라라

초록의 바다에서 불타고 있는 석류꽃처럼

맹렬하게, 망설임 없이 타올라라

살아있으니까 불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불탈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