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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회] 2012.01.28. 내 블로그 1,500 번째 글(회상의 글) / 김주완

김주완 2012. 1. 28. 08:00

 

[소회] 2012.01.28. 내 블로그 1,500 번째 글(회상의 글) / 김주완 


2012년 1월 28일에 내 블로그 1,500 번째 글을 올린다.


블로그 개설 1,731일이다. 그러니까 블로그를 개설한 것이 4년 9 개월쯤 된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1년 남짓 된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내 글들을 한데 모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2011년 3~4월쯤부터 블로그를 다시 꾸미고 글을 탑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블로그의 소제목을 ‘보관용 서고’로 했다.


내 블로그 1,500 번째 글을 무엇으로 올릴까 고심하다가 <회상의 글>을 올리기로 했다. 블로그 개설 이후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까지 살아온 내 생애를 회상하고 싶었던 것이다.


1월 28일은 내게 있어서 참으로 의미 있는 날이다.


1965년 1월 28일 나는 순심중학교를 졸업했다. 왜관 삼성극장에서 졸업식을 치르고 그날 밤 가까운 친구들이 여학생들과 어울려 밤을 새워 놀았다. 같은 학교였지만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누어져 있었다. 서로 다른 학교처럼 1km쯤 떨어진 거리에 교정이 있었던지라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학교생활을 함께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저 길거리를 지나다니며 다른 학교 여학생들을 보듯이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스쳐 다녔다. 그러면서도 워낙 좁은 지역인 왜관읍에 있는 학교였던지라 남학생, 여학생들이 서로 동학년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보는 처지였다. 졸업식이 있던 날 오후에 한 친구가 여학생들과 부킹을 성사시켰다. 그날 밤 우리는 친구네의 과수원 가운데 있는 빈 양옥건물의 거실에서 밤을 새워 놀았다. 자정이 지나면서 폭설이 내려 밖으로 몰려나와 설원에서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막 사춘기에 들어선 우리들은 참으로 즐거웠고 영육이 매우 순수했다. 그때 한 사람의 여학생이었던 지금의 집사람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함께 놀았던 친구들 중에서 나를 포함하여 두 커플이 탄생하여 결혼하였고 육십을 훨씬 넘은 나이인 지금까지 두 부부 모두 무탈하게 살고 있다.


그 후 고등학교 시절에 집사람과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한두 번 만난 일이 있지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대학을 들어가 기차통학을 하면서 사귀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반이던 1971년 7월 17일에 우리는 약혼을 했고 같은 해 12월 25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단발머리 여학생이었던 집사람을 처음 만난 뒤 4년 만에 연애를 시작했고 7년 만에 결혼을 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린 부부로 살았고 딸 셋을 낳았다. 첫째와 둘째는 이미 출가하여 외손자녀가 무려 다섯 명이다.


이제 2012년 1월 28일, 막내 딸 혜현이가 시집을 간다. 사법연수원 소강당에서 식을 올린다. 1965년 1월 28일, 집사람을 처음 만난 지 47년째 되는 날이다. 결혼식을 올린 날로부터는 40년 1개월이 며칠 넘는 날이다. 돌아보면 어제인 것 같은데 참으로 긴 세월이 흘렀다. 이제 막내딸 혜현을 결혼시키고 나면 공식적인 나의 숙제는 끝이 난다. 딸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집사람과 함께 보낸 47년간의 한 생애, 나는 대학교수직에서 명예퇴직을 하였고 집사람은 초등학교 교사로서 정년퇴직이 1년 정도 남았다. 큰 딸은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고 둘째 딸은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재직한다. 이번에 결혼하는 막내딸은 법조인으로 살아가거나 대학 강단에 설 것이다.


오늘 아침, 지나온 한 생을 돌아보면 나로 인해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 47년 전, 순진무구하기만 했던 그때, 꿈꾸었던 생을 꿈꾸었던 그대로 살지는 못했다. 누구든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제 2012년 1월 28일 아침 8시에 친구와 지인, 친인척과 하객들과 함께 전세버스를 타고 결혼식장인 사법연수원으로 출발한다. 마지막 숙제를 하러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