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시] 목도리 6 / 김주완 [2011.12.06.]

김주완 2011. 12. 7. 16:44

 

<2012.06.01. 해동문학 2012-여름호(통권 78호) 발표>

 

[시]


목도리 6 / 김주완


캐시미어 목도리는 초원의 풀숲에서 왔다

백악기의 몽골, 티라노사우루스의 꼬리가 일으키는 바람이

음침한 동굴의 횃불이 되었다가

강변의 가로등 불빛으로 숙성되어 어른거리는 보푸라기로 일어선 것이다

몽롱한 산허리에 한 자락 길게 걸렸던 구름이

문득 풀어져 안개로 내린 것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솜털 끝으로 이슬방울이 매달린다

목이 굵은 장수하늘소는 목도리도 없이 사막으로 갔다

거멓게 탄 장판 구들목의 기억이 찻잔 위에서 구물거린다

어디선가 제설차가 와서 무작정 캐시미어를 걷어내지만

은하는 밤에도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폭설이 내리는 산간 고지대의 고속도로에서

자동차의 라디에이터가 터진다, 보닛에서 하얀 목도리가 솟아오른다

절박하게 기다리는 견인차는 언제나 때늦게 온다

저녁상에 오른 고양이 고기에서 노린내가 났다

고지혈증과 복부비만의 진단을 받은 지 한참인데

허기진 서가의 책들은 해독이 어렵다

둘둘 감겨진 캐시미어 목도리 속이 궁금하지만 방법이 없다

언 강에서 월동하는 왜가리의 외로운 목은 목도리를 어디에다 풀어 두고 왔을까, 지난여름은

장독에 띄워진 숯이 구토를 느끼는지 울렁거렸다

으스스한 추위에는 계절이 없다

돌돌 만 캐시미어 목도리 속에서 뛰쳐나온 온기가 벌판 끝으로 날아가고 있다

죽은 겨울의 시신들이 삭은 나뭇가지 끝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겨울을 하늘이 조금씩 회수하는 것이다

나는 목도리를 가슴에 두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