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3. 2011년 연간작품집『대구의 詩』(대구시인협회) 발표]
[시]
가을밤에 찍는 느낌표 3 / 김주완
어둠 속으로 들어간 상수리나무 숲은 얼마를 걸었을까
주머니 속에 넣어온 풀벌레 소리들을 주섬주섬 꺼내고 있다.
봄에 태어난 나는 오는 길도 모르면서
여기까지 와 버렸다
후회하지 마, 부질없어
오래 전에 겨울로 들어간 어머니, 창백한 미소가
부시지 않는 달빛에 걸려 있다
낙엽은 굴러서 마침내 별이 되는 것일까
어스름 허공에 만장처럼 걸려있는 그리운 얼굴들,
무대막처럼 흐르는 구름 뒤에는 부끄러운 것들이 숨어 있지
정말 면구스러워
그래도 가을밤의 푸른 하늘은 볼만 해
눈이 시원해지거든, 가슴이 뻥 뚫려서
마른 풀잎 같은 편지를 쓰는 사람은 이제 없어
그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SNS로 보내지
가을밤이 웹으로 들어가 숙성되고 있는 거야
쇄골을 드러낸 젊은 여인의 걸음걸이는 단정하답니다
맑은 목소리가 여린 바람에 실려 간다
아직 사랑할 수 있어 외로운 거야
숨을 쉬어 봐, 가슴에서 슬픈 피리 소리가 날 거야
오래된 서가의 시집에서 잠자던 말들이 걸어 나와
도열하는 느낌표처럼 상수리나무 숲이 된 거야
당분간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예보가 나왔어
가을비가 밤의 상수리나무 숲에 내려도 좋은데,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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