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 시집 수록 시편/제4시집 오르는 길이 내리는 길이다[2013]

[시] 시계의 방 7 / 김주완 [2011.07.12.]

김주완 2011. 7. 13. 07:54

 

<포항시인협회, 경북시학 제2집, 2011.12.15.발표>

 

[시]

시계의 방 7 / 김주완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똑 똑, 베란다 창문을 비스듬히 뚫고 들어온 빛살이 소리 없이 왼쪽으로 조금 이동하였다 그 사이사이로 강물이 흘러간다 쉬지 않고 이어져 흘러간다 시계의 초침은 책상 위에서 또박또박 움직이고 시간은 옆에서 흐르고 있다 시계가 힘들게 시간을 끌고 가는 듯한 착각, 거실장에는 한때의 기념으로 만들어진 탁상시계가 오래된 도기 앞에 동그마니 앉아 있다 할아버지가 쓰는 작은 방에선 뻐꾸기시계가 울다 말다 계절을 벗어난 채 걸려 있다 고장 난 시계가 여기저기 정지해 있어도 시간은 그것들을 외면하며 흐른다 그나마 쉬지 않고 가는 디지털시계가 휴대전화 액정과 티브이 수신기, 혹은 자동차 계기판과 내비게이션에 숫자로 깜박인다 저만큼 앞서가는 아버지와 이쯤에서 다소곳이 뒤따라가는 어머니의 나들이, 그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의 거리만큼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서 가는 시차, 그러나 가는 길은 같은 방향의 같은 길이다 시간의 계단은 평면이다 찰랑거리는 강물의 푸른빛이다 바람은 잠들 때도 있고 수시로 방향을 바꾸어 불 때도 있지만 시간에는 수면도 후진 기어도 없다 다만 앞으로만 나가는 흐름 위에서 어쩌다 고개 꺾으며 잠든 것의 시간이 있기는 하다 책장의 플라톤 전집, 공화국의 책갈피 속에서는 원시공산사회의 원형이 수면 중이다 이천 사백년, 긴 잠을 자고 있다 두텁게 쌓인 먼지 속의 잠, 잠 속의 꿈은 먼지를 뚫고 나오느라 때로 숨 막힌다 수면 중에도 꿈 속의 시간과 꿈 밖의 시간은 침묵한 채 서로 발걸음을 달리하여 흐른다 흐름 위에서 생긴 현기증으로 잠시 외면해야 하는 삶, 시간의 물결에 떠서 새들은 새들의 삶을 살고 나무는 나무의 삶을 산다 산다는 것은 물결 같은 시간 위에 올라 잠시 흘러가는 일이다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시간을 재고 있는 시계, 시계를 보면서 시계 밖에서 흘러가는 시간


시계가 가득 찬 시계방 벽에는

제각각의 시계에서 제각기 달리 흐르는 서로 다른 시각들이 분주하지만


색깔 없이 무심한 시간의 방에는 벽이 없다  


타거나 내리는 시각이 따로따로인 것들 아래

흐름 하나만 있는 시방時方